[기고] 쪽지예산을 위한 변명, 직소예산
조석호 광주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입력 : 2025. 08. 26(화)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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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호 광주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벌써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할 시기다. 예산 철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쪽지예산’이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이 지역구 사업을 예산에 반영하려 하면 곧바로 이 낙인이 찍힌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의원들이 주민의 민원과 숙원사업을 예산에 반영하려는 노력은 음성적 ‘쪽지’가 아니라, 정당한 절차 속에서 이루어지는 ‘직소예산(直訴豫算)’이라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주민 요구를 제도 속에 담기 위해 의원들이 거쳐야 할 과정은 분명하다. 사업조서를 집행부에 제출하고, 필요할 경우 서면 질의서를 통해 정식으로 반영을 요구한다. 이러한 절차를 지킬 때 의원들의 활동은 법과 규칙이 보장한 의정활동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과정이 무시되거나 사후에 형식적으로 끼워 맞추는 관행이 반복되면서 ‘쪽지예산’이라는 비판이 생겨났다. 오히려 절차를 투명하게 준수하며 이루어지는 활동은 ‘의원이 직접 호소해 확보한 예산’ 즉, 직소예산이라 불러야 한다.

의회의 증액 권한은 헌법과 법률에 명확한 근거를 두고 있다. 헌법 제57조는 국회가 정부 동의 없이 지출예산을 증액하거나 새로운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지방자치법 제142조 제3항 역시 지방의회가 단체장 동의 없이는 증액이나 신설을 할 수 없음을 명시한다. 이는 증액 권한 자체를 인정하되, 집행부 동의를 견제 장치로 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의원들의 증액 요구는 편법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한이며, 주민의 목소리를 예산에 반영하는 민주적 과정이다.

더구나 예산편성권을 가진 집행부가 완전무결한 예산안을 편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산 편성은 한정된 재원을 배분하는 일이기에 필연적으로 정책적 판단과 우선순위 설정이 개입된다. 이때 행정 효율성과 관료적 논리가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를 가리기도 한다. 때로 행정은 특정 지역이나 계층의 미세한 불편함과 절실함을 놓치곤 한다. 예산안은 이처럼 편성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나 한계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민의 삶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방의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방의원들은 행정이 놓친 사각지대와 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최전선에 있다. 예산 편성의 오류를 바로잡고, 주민의 실제 삶을 개선하는 것도 의회의 역할이다. 주민 생활에 밀접한 소규모 사업이나 복지 수요는 종종 행정의 대형 사업 목록에서 누락되기 쉽다. 의원들은 매일 지역을 누비며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를 예산에 반영함으로써 행정의 사각지대를 보완한다. 이 과정은 단순히 특정 지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시민이 삶의 질 향상을 체감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의회의 무분별한 예산 증액을 옹호하기 위함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산 편성의 민주성과 투명성이다.

의원들의 증액 요구 사업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를 통해 그 필요성과 타당성을 철저히 검증받아야 한다. 집행부 또한 단순히 ‘쪽지’라는 이름으로 모든 증액 요구를 폄하할 것이 아니라, 사업 실효성을 꼼꼼히 따지고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며 협의에 임해야 한다. 이러한 공론의 장을 통해 비로소 정당성을 확보하고, 예산의 효율성 역시 담보될 수 있다.

정치와 행정은 결국 타협과 조정의 예술이다. 의회가 모든 증액을 강행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집행부가 무조건 거부하는 것도 옳지 않다. 주민의 목소리를 제도 속에서 직접 호소하고, 집행부는 이를 일정 부분 수용하며 조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민주주의는 살아 움직인다.

따라서 이제는 ‘쪽지예산’이라는 낙인을 벗겨내야 한다. 의원들이 주민 민원과 숙원사업을 직접 호소해 반영하는 ‘직소예산’은 부끄러운 꼼수가 아니라 지방의회의 존재 이유이며, 주민자치의 본질이다. 이름을 바꾸는 순간, 활동의 성격도 달라진다. 쪽지예산이 아니라 직소예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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