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보이지 않는 손
김명화 교육학박사
입력 : 2025. 06. 25(수) 16:59

김명화 교육학박사
오랜만에 마을 뒷산 등산을 했다. 산길을 오르는데 길이 깨끗했다.
누가 이른 아침에 등산로를 쓸었을까? 생각하니 감사의 마음이 든다. 선한 마음이 있는 자에게 복된 날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숲속에 전달했다.
다음 날에도 산을 오르는데 대 빗자루로 쓸어서 깨끗했다. 산을 오르며 등산길을 청소하는 이는 꼭 복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보상을 바라는 행동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삶은 공동체를 위한 일이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을 위한 배려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설화 북두칠성 이야기는 배려의 얘기다. 어느 마을에 홀어머니는 일곱 아들과 살았다. 어머니는 일곱 아들을 위해 항상 성실하게 일했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에도 어머니는 강을 건너 이웃 마을에 가셨다.
어느 날 큰아들은 마실가는 어머니를 따라가 봤다. 그런데 어머니는 외로워서 이웃 마을 벗에게 밤이면 마실간 것이었다.
그제야 아들은 외로운 어머니의 삶을 알고 어머니가 편하게 강을 건너도록 힘을 모아 다리를 만들었다.
다음날 벗에게 가려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누가 징검다리를 놓았을까?”라고 생각하던 어머니는 징검다리를 건너며 하늘을 향해 “징검다리를 놓아준 사람이 죽게 되면 하늘의 별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죽게 되자 일곱 개의 별이 됐다. 사람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일곱 형제의 아름다운 얘기를 담은 별자리를 북두칠성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 설화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다는 얘기로 문화권마다 신화적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흔히 쓰는 말 중에 ‘계산기 두드린다’는 말이 있다. 아니면 ‘더하기 빼기’라는 말도 많이 사용한다.
이러한 언어는 자신에게 이익이 돼야 움직인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대인들은 서로에게 이해타산적이며 이기적이라는 말한다.
새로 들어온 직장 후배는 타인을 위한 배려는 손해 막심이라며 선배가 도움을 요청하면 못 들은 척하는 것이 상책이라며 합리적인 삶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는 언어로 자신을 포장한다.
최근 ‘소년이 온다’의 작가 한강은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몸이 조금 아프면 되는 정도라는 얘기로 글쓰기를 표현했다.
한강의 책은 폭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삶을 통해 빛의 세계로 이끈다. 작가는 작업의 고통을 인내하면서 개인, 공동체, 국가의 폭력에 저항하는 우리의 얘기를 대변해 주는 글쓰기는 고통의 삶이다.
글쓰기로 고통을 참고 희망을 기하는 한강의 책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손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우리 삶에서 자신과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른 아침에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 길을 가다가 돌멩이를 옆으로 치우는 사람, 나뭇가지가 길에 버려져 있으니 한쪽으로 치우는 사람 등 보이지 않는 손은 일상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삶이다.
경제학자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안 사회 전체의 자원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작용하는 시장 기능’을 일컫는 말이다.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언어는 경제를 넘어 사회적인 현상도 마찬가지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길을 청소하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청소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사람의 노력이 산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행복한 시간을 줬다면 그 기쁨과 행복은 효율적인 시간인 것이다.
한 해의 허리가 접히는 6월에 등반길에 동행하는 벗도 산행길 청소했던 이의 마음을 알아준다.
산행하는 이도 “참 고마운 사람이다”며 혼잣말로 한다. 살다가 힘이 들더라도 세상이 야속하고 사람의 정이 떨어져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있기에 살만한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
감나무 꽃도 진 자리에 알밤 정도 감이 자리를 잡았다. 노란 꽃이 떨어지고 연두 감이 성장할 때까지 바람 한 줄기, 햇살 한 줌이 베여 감이 익어가고 있다.
본격적인 장맛비가 시작되는 여름의 길목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누가 이른 아침에 등산로를 쓸었을까? 생각하니 감사의 마음이 든다. 선한 마음이 있는 자에게 복된 날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숲속에 전달했다.
다음 날에도 산을 오르는데 대 빗자루로 쓸어서 깨끗했다. 산을 오르며 등산길을 청소하는 이는 꼭 복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보상을 바라는 행동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삶은 공동체를 위한 일이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을 위한 배려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설화 북두칠성 이야기는 배려의 얘기다. 어느 마을에 홀어머니는 일곱 아들과 살았다. 어머니는 일곱 아들을 위해 항상 성실하게 일했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에도 어머니는 강을 건너 이웃 마을에 가셨다.
어느 날 큰아들은 마실가는 어머니를 따라가 봤다. 그런데 어머니는 외로워서 이웃 마을 벗에게 밤이면 마실간 것이었다.
그제야 아들은 외로운 어머니의 삶을 알고 어머니가 편하게 강을 건너도록 힘을 모아 다리를 만들었다.
다음날 벗에게 가려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누가 징검다리를 놓았을까?”라고 생각하던 어머니는 징검다리를 건너며 하늘을 향해 “징검다리를 놓아준 사람이 죽게 되면 하늘의 별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죽게 되자 일곱 개의 별이 됐다. 사람들은 하늘의 별을 보고 일곱 형제의 아름다운 얘기를 담은 별자리를 북두칠성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 설화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다는 얘기로 문화권마다 신화적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흔히 쓰는 말 중에 ‘계산기 두드린다’는 말이 있다. 아니면 ‘더하기 빼기’라는 말도 많이 사용한다.
이러한 언어는 자신에게 이익이 돼야 움직인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대인들은 서로에게 이해타산적이며 이기적이라는 말한다.
새로 들어온 직장 후배는 타인을 위한 배려는 손해 막심이라며 선배가 도움을 요청하면 못 들은 척하는 것이 상책이라며 합리적인 삶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는 언어로 자신을 포장한다.
최근 ‘소년이 온다’의 작가 한강은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몸이 조금 아프면 되는 정도라는 얘기로 글쓰기를 표현했다.
한강의 책은 폭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삶을 통해 빛의 세계로 이끈다. 작가는 작업의 고통을 인내하면서 개인, 공동체, 국가의 폭력에 저항하는 우리의 얘기를 대변해 주는 글쓰기는 고통의 삶이다.
글쓰기로 고통을 참고 희망을 기하는 한강의 책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손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우리 삶에서 자신과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른 아침에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 길을 가다가 돌멩이를 옆으로 치우는 사람, 나뭇가지가 길에 버려져 있으니 한쪽으로 치우는 사람 등 보이지 않는 손은 일상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삶이다.
경제학자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안 사회 전체의 자원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작용하는 시장 기능’을 일컫는 말이다.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언어는 경제를 넘어 사회적인 현상도 마찬가지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길을 청소하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청소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사람의 노력이 산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행복한 시간을 줬다면 그 기쁨과 행복은 효율적인 시간인 것이다.
한 해의 허리가 접히는 6월에 등반길에 동행하는 벗도 산행길 청소했던 이의 마음을 알아준다.
산행하는 이도 “참 고마운 사람이다”며 혼잣말로 한다. 살다가 힘이 들더라도 세상이 야속하고 사람의 정이 떨어져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있기에 살만한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
감나무 꽃도 진 자리에 알밤 정도 감이 자리를 잡았다. 노란 꽃이 떨어지고 연두 감이 성장할 때까지 바람 한 줄기, 햇살 한 줌이 베여 감이 익어가고 있다.
본격적인 장맛비가 시작되는 여름의 길목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광남일보@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