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성별 갈등, 공존을 찾아가야 할 때
김유빈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위원
입력 : 2025. 03. 09(일) 16:34
김유빈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위원
2024년 12월 3일, 45년 만의 비상계엄으로 겨울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나라가 혼란스럽다. ‘이게 나라냐’라고 외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과연 우리가 바라는 봄이 올 수는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요즘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당일 시민들은 국회 앞에 모여 장갑차를 막아내고 실시간 영상을 송출해 전 국민이 이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즉각적으로 불법 계엄 반대 집회가 열렸고 ‘응원봉’ 집회 시위 문화와 이를 주도하는 청년층의 부상이 매스컴을 뜨겁게 달궜다.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는 응원봉 집회의 OST가 돼 전국에 울려 퍼졌다. 나는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이것이 새로운가?

비단 매스컴뿐만이 아니다. 부상하는 2030 청년의 새로운 활동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학자도 보았다. 그분을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밝히며, 나는 이를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모두가 주목하는 2030 여성은 언제나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2018년 혜화역 시위가 그랬고 몇 년간의 낙태죄 폐지 운동이 그랬다. 대통령 탄핵 집회 건만 비교해 보더라도 2016~2017년 광화문에는 ‘강남역 10번 출구’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새겨진 깃발이 군중 속에 함께했었다.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면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부르며 춤추고 행진했다. 광장의 응원봉이, 남태령의 연대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충분한 사유가 될 것이다. 그간 듣지 않고 보지 않던 이들의 목소리와 저력을 이제야 확인한 것뿐이다. 나와 같이 여성의 서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다양한 곳에 칼럼을 냈으니 확인해 보길 권한다.

이와 반대의 상황도 존재한다. ‘그들’이 지속해서 애국 보수 청년이라고 칭하는 이들의 폭력적인 행보이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정치적 사유와 주장은 충분히 가능하나 이가 법원 난동, 백골단의 부활 등의 방법으로 표출되고 있다. 덧붙여 불법 계엄 반대 의견을 밝힌 여고생의 개인 인스타그램을 뒤져 외모 품평을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것 역시 놀랍거나 새롭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여성 혐오를 표심의 전략으로 활용하며 이를 유효하게 만들었다. 2024년 ‘숏컷’ 여성이라는 사유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건도 있었고, SNS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성착취 카르텔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고 임시방편의 정책 토론회만 개최됐다. 사회는 이미 ‘애국 보수 청년’의 폭력성을 묵인하고 방조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매스컴은 ‘응원봉을 든 여성 청년’과 ‘하얀 헬멧을 쓴 남성 청년’의 이분법적 대결 구도를 강화한다. 갈등은 끝없이 심화되고 해결책을 찾기 요원해 보이기도 하다. 해서 여당 주요 인사들도 출마 선언만 안 했을 뿐이지 조기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판국에 앞으로 모든 당의 후보자들은 성별 갈라치기를 조장하는 정책이나 발언을 삼가야 할 것이다.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인 ‘양성’의 대결 구도가 지속된다면 누가 대통령이 돼도 세 번째 탄핵 사태를 맞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사실 선명하다. 다양한 색과 모양의 응원봉처럼 다양성이 보장되는 성평등한 사회가 그것이다. 이 글에서도 호명되는 ‘양성’을 중심으로 기재했으나 성평등한 사회는 더 넓은 스펙트럼이 보장돼야 하며, 성평등하지 못한 사회는 그 어떤 누구에게도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이해돼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3·8여성의 날에 또 외치며,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라는 ‘다시 만난 세계’의 노랫말처럼 폭력적인 상황을 마주하면서도 추운 겨울 차가운 아스팔트를 떠나지 않았던 모든 동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짧은 글을 마친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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