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주 오래 전 인류는 두발로 서고, 불을 다루고, 도구를 만들며 서서히 사람이 되어갔다. 사람을 사람 답게 만드는 여러 요소 중 하나는 음식이다. 날 것을 익혀먹고, 동물성 단백질을 더 많이 섭취하면서 인간의 두뇌는 커지고 복잡한 사고가 가능해졌다.

인류의 발전사에서 ‘식食’이 끼치는 영향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생존의 3대 요소인 의식주 가운데 ‘식’은 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 본능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먹는 것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를 넘어 문화를 꽃피우는 근간이 되었다. 때문에 과거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는가는 학자들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초기의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자란 식물을 채취하고 동물을 사냥하는 수렵채집으로 먹을거리를 구하였다. 농경은 수천년 전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사전적으로 농경은 생활에 필요한 식물을 가꾸거나 유용한 동물을 기르는 행위를 의미하지만, 역사·문화적으로 그것이 가진 의미는 남다르다. 때문에 영국의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V. Gordon Childe)는 인류가 농경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는 의미에서 이를 ‘신석기혁명’이라 표현하기도 하였다.

농경에 관한 연구가 시작된 초기만해도 농경은 인류문화 발달 과정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사람이 생존방식으로 농경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당연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농경이 수렵채집 보다 우월하고 발전되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농사를 짓는 것이 사냥보다 효율적일까? 하루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서너시간만 투자하면 된다고 한다면, 굳이 일년 내내 농사에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초기에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고 수확때까지 꾸준히 노동력을 투입해야 한다. 또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확량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아마 처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상황에서 농경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농경에 대한 지식이 쌓이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커지자 더 많은 사회가 농경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이다.

‘식’의 변화는 인류 문화의 변천사와 흐름을 같이 하지만 이를 복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땅 속에 묻힌 유기물은 쉽게 썩기 때문에 불에 타 숯이 되거나 아주 건조된 상태 등 특수한 경우에만 발견될 뿐이다. 최근에는 과학적 조사 방법이 발달하면서 그릇이나 도구에 남은 흔적을 분석해 무엇을 조리하고 담았는지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사람의 뼈를 분석하여 어떤 종류의 음식을 섭취하였는지도 알 수 있다. 나아가 주변 환경을 복원하여 계절별로 어떤 것을 섭취하고 재배하였는지도 분석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의 식문화에 대한 연구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도토리나 조, 기장 등의 식물이 발견되었고, 조개무지에서 확인된 조개껍질이나 동물 뼈 등을 통해 무엇을, 언제, 어떻게 먹었는지가 밝혀지고 있다. 본격적인 농경이 이루어진 청동기시대에는 집자리에서 각종 곡물이 확인되었고, 당시 경작한 논밭도 조사되었다. 사람들이 경작에 이용한 도구나 음식을 조리한 화덕 등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호남지역은 과거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곡창지대로 농경과 관련된 여러 유적이 곳곳에서 확인되었다. 볍씨를 비롯한 각종 씨앗과 농기구가 확인된 광주 신창동 유적, 일찍부터 물을 다스린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김제 벽골제는 호남을 대표하는 유적이라 하겠다.

호남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식문화에 대한 전시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국립광주박물관은 30여년간 광주 신창동 유적을 조사해 왔고, 호남의 과거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축적해 왔다. 지금까지의 전시가 시대별 유적과 유물에 집중하였다면, 2026년 새롭게 선보일 전시에서는 사람들의 먹을거리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과거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생존이 문화가 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