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 정서 전하는 '운 좋은 전달자'"
[남도예술인] 세계정원디자이너·환경미술가 황지해
곡성 출신 작가 지리산 정원 출품 英 첼시 플라워쇼 금상
'12년간 3관왕' 중국 그레이터베이 플라워 박람회 수상
입력 : 2023. 07. 26(수) 17:17
황지해 세계정원디자이너·환경미술가는 “한국인으로서 자라온 환경 속 익숙한 재료와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었을 뿐인데 그게 해외에서 매력적으로 느끼는 요소가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스스로를 ‘식물을 노래하는 사람’이라 소개한다. 가슴 속에 ‘녹색으로 시를 쓰고, 고전을 쓰며, 명곡을 남기고 싶다’는 바람을 늘 간직한다.

단순히 식물을 기르고 정원을 조성하는 것을 넘어 그는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산다. 꽃밭에서 새, 나비와 평생 살고 싶다는 정원디자이너이자 환경미술가 황지해씨의 이야기다.

한국식 뒷간을 정원으로 승화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그가 이번에는 지리산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약초군락을 선보여 해외에 우리 정원을 알렸다. 세계 최대 정원박람회이자 영국왕립원예학교(RHS)가 주관하는 영국 대표 정원·원예 박람회 ‘2023 영국 첼시 플라워쇼’ 주요 경쟁 부문 쇼가든에서 지리산 한국 정원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로 12개 팀 중 금상을 수상했다. 지난 2011년 영국 첼시 플라워쇼 아티즈 가든 부문에서 전통 화장실을 정원으로 승화한 ‘해우소’를 처음으로 출품해 금상과 최고상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DMZ:금지된 정원’으로 쇼 가든 부문 전체 최고상과 금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으니, 이번은 11년 만에 그가 받은 세 번째 금상이다. 올해 유일한 아시아인으로 이름을 올린 점도 주목할만 하다.

최근 전시 준비와 진행으로 한동안 휘몰아치던 스케줄을 소화하다 잠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는 그는 이번 수상에 대해 “11년 만의 재도전이어서 불안한 감정은 있었지만 오히려 이 불안함이 용기를 내 도전하도록 부추겼다”며 “한국 산야의 잠재된 가치, 즉 우리 산야의 원시성이 지닌 힘과 저력을 인정 받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DMZ로 수상한 뒤 자연주의 정원으로 흐름이 바뀌는 계기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앞으로 원시 정원의 가치가 더 조명받을 거라 예상한다는 반응이다.

‘2023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찰스 3세 국왕이 황지해 작가의 정원을 둘러본 뒤 포옹하고 있다.
‘2023 영국 첼시 플라워쇼’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는 생명과 건강, 삶의 질을 담당했던 산이 예로부터 병원이자 약국이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자연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든 문제는 자연으로부터 멀어졌기에 생긴 문제라 생각해요. 미학과 예술을 논하기 전 기후환경과 지구의 환경에 대응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실질적인 행동이 우리의 작업 과정이길 바랍니다. 우리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너무 많은 걸 누리고 살았으니까요.”

작품은 지리산 동쪽 이른 아침 햇살을 먹고 자라는 산약초 군락지를 가로 10m, 세로 20m 크기로 재현했다. 지리산에서만 자라는 지리바꽃, 멸종위기종인 나도승마와 산삼, 더덕 등 토종 식물 300여 종을 식재하고, 바위 200t을 들였다. 바위 사이로는 지리산 젖줄을 연상케 하는 개울이 흐르고 중심에는 약초 건조장을 참고한 5m 높이 탑을 선보여 황 작가가 오마주한 여전히 이름없는 계곡, 마지막 원시림으로 남아 있는 지리산 동남쪽 약초군락모습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본래 있던 것을 되돌려줌으로써 원시로 돌아가고자 하는 식물의 관성을 존중해주는 것이 결국 원시성의 회복이자 인간과 자연의 공생의 본질이라는 게 작품의 핵심이다. 작품은 공개되자마자 찰스 3세 국왕을 비롯해 여러 정원 전문가 등으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그는 앞서 지난 4월 중국 그레이터베이 플라워쇼에서 안성연 작가와 협업한 ‘나비춤’으로 금메달을 받기도 했다. 나비의 춤사위를 시각화하고, 철새 도래지이자 내륙 생태계의 연결 고리인 선전의 강줄기를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이같은 작품을 선보이는 영감의 원천으로 모든 일상을 꼽았다. 집을 나서는 길에 만난 작은 야생초 하나 허투루 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2023 영국 첼시 플라워쇼’ 당시 모습.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숲이 가르쳐준다고 한다. 작업의 근간이 되는 ‘본질 묻기’는 일상을 통해 이렇게 발전해 그의 손끝에서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곡성 출신인 그는 목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환경미술가 그룹 뮴에서 여러 경험을 쌓은 게 계기가 돼 정원디자인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됐다. 생애 최초 정원이었던 어렸을 적 어머니가 일구던 텃밭에서의 경험이 그의 작업적 토양이다. 그 텃밭에서 식재료를 길러 먹고 뒹굴며 자란 경험이 활동 배경이자 원동력이 된 셈이다. 이같은 경험은 식물과 자연, 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이후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면서 식물 하나 하나 소중하게 접근하는 관점과 만나 현재의 그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자연스레 한국적 이야기와 아름다움을 작품에 담게 된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자라온 환경 속 익숙한 재료와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었을 뿐인데 그게 해외에서 매력적으로 느끼는 요소가 되는 것 같아요. 일부러 우리 고유 정서를 고집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묻어나는, 전 ‘운 좋은 전달자’죠.”

잠시 숨을 돌린 그는 다시 바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첼시 플라워쇼에서 선보인 작품 가운데 일부 한국 식물은 노팅엄 매기재단으로 옮겨 암 환자들을 위한 정원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 전시됐던 바위와 큰 나무들은 써리의 개인정원으로 이동, 약 20배 큰 규모로 재현한다. 개인이 사들인 정원의 전액은 영국 27개의 암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매기재단에 기증돼 수천 명의 암 환자를 돕는데 쓰인다.

“기부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국사회에서 이번 기부를 계기로 한국정원을 후원했던 스폰서들의 자리를 만들어 줄 거라 생각하죠. 다음 한국 전시자들에 대한 태도와 예우가 더욱 달라질 것이라 기대해요.”

그의 앞으로도 자연과 함께 한다. 새와 나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연에서 체득한 초록빛 이야기를 작품으로 선사한다.

“제 인터뷰를 본 사람들이 오늘 집을 나서는 길가에 작은 풀 하나 눈 여겨 보고 발 아래 작은 야생화가 가진 잠재된 가치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있다는 생각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유연한 사람이고 싶고, 겸손하며 창작에의 갈증이 무궁무진한 작가로 살고 싶습니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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