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같은 피아노 ‘지역 클래식음악’ 활성화" 희망
[남도예술인]신수경 전남대 음악학과 교수
‘아미치 디 피아노’ 창단 라흐마니노프 탄생 기념 음악회 성료
일리노이대 석사 인디애나대 박사 졸업…50여 회 독주회 선봬
‘피아노 교수 음악회’ 등 기획 및 아동정서발달지원서비스 추진
입력 : 2023. 05. 11(목) 17:50
신수경 교수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무대에 서는 것은 힘들고 고달픈 일이지만 그럼에도 독주회를 열고 연주무대에 서는 것은 그것이 ‘해야 할 일’이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의 손끝은 갈라지고 손가락 마디는 조금씩 휘어있다. 공연을 앞두고 피아노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서 오는 직업병이다. 지금껏 50여 회 가까이 독주회를 열어왔지만 무대에 서기 전 느끼는 긴장감은 예나 다름없다. 이제는 조금 지칠만도 한데 피아노를 향한 그의 열정은 여전히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광주 지역을 기반으로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연주활동을 펼쳐온 피아니스트 신수경 교수(전남대 음악학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신 교수는 올해 초부터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4월25일부터 27일까지 피아노 전문 연주단체 ‘아미치 디 피아노’(Amici di Piano)의 창단음악회이자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 공연을 열어서다.

사흘 동안 협주곡을 제외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가 포함된 주요 피아노곡들을 거의 대부분 선보인 대규모 음악회였다. 신수경·나윤주·박은식 교수(전남대 음악학과)를 비롯해 광주·전남 출신 또는 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전문 연주자 16명이 한 자리에 모여 성황리에 공연을 펼쳤다.

신 교수는 ‘챔버 라흐마니노프’라는 부제가 붙은 첫째날 백계준 연주자와 함께 ‘네 손을 위한 6개의 소품’을, 나윤주 교수는 최현호의 반주로 첼로 소나타를 연주했다. 천민경·김민수·김형건이 피아노 트리오 1번을, 소프라노 윤한나가 이지은의 반주로 보칼리제 등 가곡을 연주해 피아노가 포함된 풍성한 실내악곡들을 선사했다.

박은식 교수는 둘째 날 ‘전주곡 OP. 32’ 전곡을, 김동준·김민준은 ‘전주곡 Op. 23’을 나눠 연주해 눈길을 끌었다. ‘Virtuosic Rachmaninoff’ 부제의 마지막 날 피아니스트 김유상 정승훈이 ‘6개의 악흥의 순간’, 이철민이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최현호가 ‘피아노소나타 No. 2, Op. 36’을 연주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전국에서 라흐마니노프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은 많겠지만 이렇게 피아노가 포함된 주요 곡 대부분을 마라톤 연주회로 개최하는 대규모 공연은 아마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광주지역에서 이러한 연주회가 열렸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었죠.”

신 교수와 박은식 교수가 결성한 아미치 디 피아노는 ‘피아노의 친구들’이라는 뜻의 이태리어다. 두 사람은 그동안 전문적이고 학구적인 연주회 활성화의 필요성을 느껴왔고 지난해부터 단체 설립 논의와 함께 이번 공연을 기획했다. 실력있는 연주자들의 수준높은 연주를 통해 지역 무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포부다.

“20여 년 동안 제자들을 배출하고 지역 음악인들을 접하면서 느낀 점은 그들에게 계속 연주를 해야 하는 동기부여가 결여돼 있다는 것이었어요. 음악이 생활전선의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될 수 있어야 양질의 연주를 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요.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연주자들이나 계속 완성도 있는 연주를 추구해 온 연주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것도 제가 해야 할 소임이라는 사명감도 들었죠.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과 오로지 연주에만 집중하기 위한 단체를 꾸려보고 싶었습니다.”

‘피아노 트리오의 밤’ 공연 모습
신 교수는 음악을 사랑한 부모님 덕에 어렸을 적 늘 음악과 가까이 지냈다. 아버지는 클라리넷을 연주했고 어머니 역시 클래식을 즐겨들었다. 친척 중에 음악을 전공한 이들이 많아 어렸을 적 작은엄마에게 자연스레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 입학한 후 대학생활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학과에는 어려서부터 예술 학교에서 전문 교육을 받으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입학을 하고 보니 과의 과반수 이상이 서울예고를 나온 학생들이었어요. 처음엔 따라가기가 무척 힘들었죠. 그러다보니 자신감도 없고 대학생활을 우울하게 보냈던 것 같아요.”

다른 학생들은 동아콩쿠르 등 각종 대회를 준비하곤 했지만 아예 관심조차 갖지 못했다. 그렇게 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더 공부를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외국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일리노이 음대에서 이안 합슨 선생님을 만난 것이 음악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됐고 그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이안 합슨 교수님은 제 우상이었죠. 처음에는 교수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연습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피아노 연습하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고 피아노에 대한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됐죠.”

세계 최고의 명문 음대로 손꼽히는 인디애나 음대 박사과정 입학 후 레너드 호칸슨, 메나헴 프레슬러 등 세계적 명교수들을 사사하면서 피아노 연주는 더욱 성숙하게 됐다. 호칸슨 교수에게는 좋은 소리를 내는 법에 대해 배웠고, 보자르 트리오의 피아니스트이며 전설적 피아노 교수인 프레슬러 교수로부터는 피아노 연주에 대한 깊이있는 해석을 배울 수 있었다. 많은 음악을 들으며 귀가 트였고 연주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신 교수는 올해 다채로운 기획 공연을 추진한다. 지난 3월에는 ‘피아노, 슈만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27일부터 31일까지 닷새에 걸쳐 전남대 피아노 교수음악회를 개최했다. 신 교수를 망라해 전남대에 출강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16명의 피아니스트들이 출연해 슈만의 주요 곡들을 연주했다. 그가 2009년 전남대 피아노 연구소를 설립해 처음 기획한 전남대 피아노 교수음악회는 해마다 멘델스존, 쇼팽, 모차르트, 브람스, 스크리아빈, 드뷔시 등의 작곡가를 선정해 그들의 주요 곡들을 연주해 왔다.

5월 중에는 전남대와 서울대 피아노 전공 학생들의 교류음악회인 ‘5월의 피아니스트’를 앞두고 있다. 주희성 교수(서울대 음대)의 제자들과 전남대 학생들이 함께 무대에 선다.

유·스퀘어 문화관에서의 독주회
신 교수는 앞으로도 최상의 무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자 한다. 나이가 들면서 전에 비해 손가락의 기능이 많이 퇴화하는 것을 느끼지만, 음악적으로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2년 전부터 PT를 받게 된 것을 계기로 이를 피아노 연주에 활용해 연주에 큰 도움을 얻게 됐다. 기립근을 이용해 더욱 크고 풍성한 소리를 내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힘 안 들이고 연주하는 연주법을 계발했다. 연주 자세가 좋아지니 음악을 전개해 가는 전반적인 시야도 넓어졌다. 연주회에 온 주변 사람들도 소리가 훨씬 좋아졌다고 말한다.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무대에 서는 것은 힘들고 고달픈 일이지만 그럼에도 독주회를 열고 연주무대에 서는 것은 그것이 ‘해야 할 일’이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무대를 통해 음악을 재해석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는 과정들을 관객들과 공유하는 것이 소중하고 보람됩니다.”

2002년 전남대 음악학과 교수로 부임해 올해로 22년째를 맞이한 그에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본인 연주 못지 않게 또 다른 즐거움이다. 자기 소리를 잘 듣지 못하고 손가락으로만 연주하던 학생들이 음악을 느끼고 깊이 있는 연주를 하게 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이에 앞서 2009년부터는 전남대에서 보건복지부 주관 ‘아동정서발달지원서비스’ 사업을 시작해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가 제안해 광주시 전역으로 확대된 ‘도레미-미래의 꿈나무를 위한 음악교육 프로젝트’는 음악학과 졸업생들이 매주 토요일 지역 아동들에게 피아노 1대1 수업, 바이올린과 플루트, 장구, 미술치료·음악치료 수업 등 맞춤형 음악교육을 제공한다. 아동정서 함양과 졸업생 일자리 창출을 꾀한 일석이조 프로그램이라는 평과 함께 보건복지부장관상과 광주시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끝으로 그는 지역에 클래식 음악이 활성화돼 더 많은 관객들과 소통할 기회를 갖기 바란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 만족할 만한 무대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수도권에 비해 지역에서는 클래식에 관심있는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부족한 편이에요. 음악 애호가들과 연주자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해주는 SNS 등 다양한 매체의 활성화도 절실하고요. 무엇보다도 연주자가 무대에서 퀼리티 있는 연주를 보여줘야 합니다. 관객들은 시간을 내서 마음먹고 공연에 오는데 연주자가 좋은 무대를 보여주지 못하면 다시 그 무대를 찾지 않겠죠. 앞으로도 관객들에게 좋은 울림으로 감동을 안겨주는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김민빈 기자 alsqlsdl94@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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