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은 현재의 거울 "우리네 삶 바라보는 일이죠"
[포커스 이사람]박종오 남도민속학회 회장
지역 문화 발굴·계승 ‘남도민속학회’ 2년째 이끌어
현장 중심 변화 양상 추적…구조·이론화 체계 축적
판소리 등 호남학 연구·생태·공동체 등 연구 계획도
지역 문화 발굴·계승 ‘남도민속학회’ 2년째 이끌어
현장 중심 변화 양상 추적…구조·이론화 체계 축적
판소리 등 호남학 연구·생태·공동체 등 연구 계획도
입력 : 2023. 04. 09(일) 17:59

박종오 남도민속학회 회장은 “민속학 연구는 바로 우리네 삶, 즉 나의 삶을 바라보는 일이어서 계속하고 있다. 과거는 현재를 반추하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춘계학술대회 ‘지역 서사와 생업 문화유산’ 진행 모습
남도인의 삶을 추적해온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 교수이자 2년째 남도민속학회를 이끌고 있는 박종오 회장이 그다.
민속학자인 그는 ‘민속학’(民俗學)을 민간에 전승되는 전통적인 설화와 가요, 풍속, 신앙, 제도 등을 조사하고 기록해 민족의 문화 성격을 규명하는 학문으로 풀이한다. 일반인들의 삶 전반을 연구하는 것으로 민간에 전승되는 문화를 연구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 대상 범위는 한없이 다양하다.
실학의 학적(學的) 성격이 총체적인 학문이기에 우리나라에서 단편적이나마 민속에 관해 관심이 싹튼 것은 조선 중엽 이후 실학자들에 의해서 이뤄졌고, 다만 민속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진 시기는 대체로 갑오경장을 전후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민속학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던 과거의 삶을 고찰해 현대와 비교해 보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 보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민속학을 정의할 때, 민중 혹은 대중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든지, 과거의 것을 대상으로 해야 하든지, 원형(元型)을 탐구해야 한다든지 등이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계층 간, 세대 간, 성별 간 문화가 공유되는 현 시점에서는 이 같은 논의 보다는 과거의 것을 고찰함으로써 현재, 나아가 미래지향적 학문의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공감한다.
특히 남도민속학에 주목하는 이유는 민속을 이해하는 첩경이 곧 남도민속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시각에서 비롯됐다.
“‘이충무공전서’를 보면 ‘약무호남 시무국가야’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호남이 없었더라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뜻이죠. 이 전에 ‘국가군저 개고호남’이라는 문장이 함께 있어요. 즉 ‘나라의 군량, 군비 등을 모두 호남에 의존하고 있다’라는 말이죠. 예로부터 호남지역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기반을 이루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택리지’에서 언급됐듯 농수산자원이 풍족하게 산출되던 곳이죠. 이렇게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지역에서는 ‘맛’과 ‘멋’ 문화가 발달돼 왔고 전승돼 왔어요.”
이처럼 남도민속학이 품은 가치가 높은 가운데 그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끌고 있는 남도민속학회는 1991년 설립됐으니 32년째 운영되고 있다. 민속학 중에서도 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문화 현상을 연구하는 단체로, 전국 주요 대학 및 연구원, 민속학 석박사 등 연구자 3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남도민속학회는 30년이 넘는 시간과 광범위한 연구 분야 및 범위로 인해 그간 수많은 연구 성과를 내왔다.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중단됐으나 매달 주제를 정해 연구 내용을 공유한 월례회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민속학자들 가운데 젊은 축에 속하는 그는 민속학에 매료된 데 어렸을 적 경험 덕분이라고 했다. 고향인 장흥 산골짜기에서 당산제를 지내는 모습을 자주 보고 쥐불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등 시골농촌 풍경을 그대로 보고 자라서다. 문학 소년이었다는 그는 글쓰기에 재미를 붙여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이때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체득한 것들이 학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민속학에 관심을 두게 됐다.
일상이 학문이 된 셈이다. 그러면서 삶 자체를 소중히 하게 됐다. 학과에 구비문학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는 섬 조사를 나가거나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강독을 한 경험들이 향후 민속학을 연구하는 토양이 됐다는 설명이다.

‘남도 민속에 녹아 있는 선조들의 전승 지혜’라는 주제 강연을 하고 있는 박 회장

박 회장의 2008년 조사활동 당시 모습
그는 민속이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간의 변화를 알기 위해서는 이전의 것을 알아야 하고 그렇게 과거를 추적해 나가며 이것을 현재와 이어 현재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기여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콘텐츠의 근간이 되는 스토리 역시 민속학에서 나온 만큼, 무궁무진하게 뻗어 나갈 수 있는 콘텐츠의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민속의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웹툰이 인기를 끌어 영화가 된 ‘신과 함께’ 시리즈나 드라마 ‘도깨비’ 등 우리가 접하는 콘텐츠는 대부분 전통 사상이 바탕이 된 거죠. K-콘텐츠, K-컬처라고 부르는 것들의 배경에는 우리네 전통문화가 있어요. 그 배경을 명확히 알아야만, 그 이야기나 내용을 올바로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죠.”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속학이 계륵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세시풍속과 무형문화재 등 다채로운 주제로 대중 강연을 펼치는 이유다. 학자들의 노력만으로는 민속학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강연으로 관심을 유도, 민속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광주시무형문화재 기록화사업을 2년간 진행하며 전통 문화자산의 체계화된 아카이브 구축에 몰두해왔다. 2021년에는 시 무형문화재 제11호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 이산 감남종, 2022년에는 시 무형문화재 판소리 동초제 춘향가 예능보유자 방성춘 선생을 각각 만나 예술인으로서 생애와 분야 별 역사적 전개, 음악적 특징, 문화적 활용 방안, 면담 채록 등을 정리해 선보였다. 시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기예는 물론이고 각 분야별 역사와 삶, 정신을 잃는 것이기에 올해도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남은 임기 동안 남도민속학회를 이끌며 남도민속 문화를 발굴, 계승해 우리 민속 문화의 정체성과 우수성을 확보하는 데 매달릴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는 현대인들이 생태 환경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 살아가는가, 공동체의 방향성 등에 대한 관심을 연구화할 방침이다.
마지막으로 박 회장은 민속학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제 아이를 키울 때 공동육아모임을 했어요. 도시 안에 만들어진 공동체가 여전히 우리 삶에 유효하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민속도 그런 것이라 생각해요. 한 해가 시작되면 여전히 우리는 토정비결을 보고, 설과 추석에는 고향을 찾으며 귀신에 관해 이야기하죠. 제가 민속학을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민속학 연구는 바로 우리네 삶, 즉 나의 삶을 바라보는 일이어서 계속하고 있어요. 과거는 현재를 반추하는 거울이죠. 전승지식이 곧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또 다른 교과서인 셈입니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