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 그는 평사원으로 입사한 후 고위 간부까지 승진했다. 그의 승진 배경이 한결같은 근면 성실함에 있었는지, 남다른 애사심(?)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중동무이하거나 남의 성과에 곱살이끼지 않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해 권커니 잣거니 술자리를 자주 갖기도 했다.

문제는 그가 승진한 후부터였다. 그의 행동을 바라본 직장 동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이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은 그가 ‘예전 같지 않다’거나 ‘변했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힘없는 이들의 편에 서고자 했고, 회사의 그릇된 결정에는 가끔씩이나마 잘못된 점을 꼬집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직급이 오르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간부가 된 이후로는 직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회사의 입장에서 으름장을 놓기 일쑤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어느 날 그와 가깝게 지낸 후배 한 명이 단둘이 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생겨 넌지시 속종을 알아보고자 말을 꺼냈다고 한다. 후배는 모두 당신이 변했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전혀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나는 변한 게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후배는 예상치 못한 ‘말사래(?)’에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후배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당신이 예전 같지 않으며, 많이 변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주저함 없이 “나처럼 입사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당당함에 당황한 것은 되레 후배였다. 후배는 마음을 가다듬고 “이제 간부가 됐으니 동료들의 가려운 부분을 헤아리고 잘못된 부분은 윗사람에게 바르게 전달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그의 답변 역시 예상 밖이었다. “맡은 일을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 후배는 그가 정말 변했음을 알았다고 한다.

신분이 상승하면서 사람이 한결같지 않고 변했다는 것은 비단 ‘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서민과 함께 부대끼며 소탈하게 살다 자치단체장이 된 사람, 자신은 욕심 없이 소박한 삶을 살고 싶다던 공공기관 대표가 된 예술인에게도 서운함 섞인 뒷말이 오랫동안 따라다녔다. “그 양반이 예전에는 소탈하고 친구처럼 격이 없었는데 높은 자리로 가더니 목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거나 “예전에는 쫓아다니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더니 얼굴보기도 힘들어졌다”는 등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뤘다.

가슴 아픈 일은 ‘그’ 중 누구인가는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해 누군가를 궁지로 몰아넣기도 하고,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들을 되레 외면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다. 심지어 동료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디딤돌로 삼았다는 저열함에는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사람이 일정 직위에 오르고 그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전과는 다른 점들이 보이고, 굵직한 현안 중심의 일을 처리하느라 세심한 부분까지 들여다보기 어려운 처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위의 모든 사람이 ‘변했다’고 하는 데 본인만 뒷귀 먹은 사람이 되어 스스로 옳다고 믿는대로만 처신하는 것은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 취할 방편이 아니다. 조직 운영과 성과가 특정 신분의 몇 사람으로만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에 지위가 상승할수록 자신의 허리를 접어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는 자세가 우선돼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그가 변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변한 게 아니고 원래부터 그랬다는 것이다. 원래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몰랐었고, 나중에 그 실체가 드러나 알게 된 것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인식했던 그는 참 모습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가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고, 변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친구나 직장 동료, 가까운 이웃 속에 있기도 하고 직·간접적인 정치나 사회, 문화생활 속에서 체감되기도 한다.

또 다른 ‘그’도 입사 후 중간 간부까지 승진했다. 그에게 뒷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변한 건 시간과 서 있는 자리일 뿐, 그는 늘 한결같은 모습이다. 그 역시 힘없는 이들의 편에 서고자 했고, 상대와 눈높이를 맞췄으며 누군가를 배려해 항상 곁을 비워두곤 했다. 우리가 머물고 싶은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