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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안팎서 본질을 탐색하는 시의 여정
천세진 두번째 시집 ‘풍경도둑’ 출간

2020. 10.27. 17:22:33

시 창작과 문화비평 집필에 매진하고 있는 천세진 시인이 2016년 첫 시집 ‘순간의 젤리’ 이후 4년만에 두번째 시집 ‘풍경도둑’을 모악시인선 스무번째권으로 펴냈다.

첫 시집에서 현대인이 살아가는 양식에 대한 성찰을 보이는 등 현시대의 미로 찾기를 탐구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단단한 구조를 이뤘던 관념성 대신, 한발 옆으로 비껴 나 사유하지만 대신 좀 더 읽히는 시의 결을 이루고자 하는 그의 고민이 읽힌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편들이 결코 단선적 흐름을 쫓지는 않는다. 시적 외형만 보더라도 여전히 산문투의 구조가 수록 시편들을 지배한다. 이는 오로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는 시인의 최근 글쓰기로부터 연유된 듯하다. 시와 비평에 그치지 않고, 소설과 에세이류에 이르기까지 열정이 넘쳐서가 아닐까 싶다.

그의 시편들은 단순하게 감정의 파편들을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 안팎의 자취들을 예술적 감성으로 보듬으며 마치 이야기를 하듯 전개한다. 그런데 늘어지듯 긴장감이 풀어져 지루할 것 같은 시편들은 사유와 감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시의 집이 흐트러지지 않아 더욱 시편들에 오래 머무르도록 한다. 정면을 바라보지만 옆면과 후면까지 얽히고 설키어 들어가는 형국이다. 정면만 응시해서는 시의 본질을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특히 시인은 삶의 풍경 속에서 포착해낸 52편의 시를 통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간의 심연을 해부하는가 하면, 친절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우리 삶의 배경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등 삶의 안팎을 넘나든다. 삶의 본질을 물으면서 다채로운 삶의 풍경을 소환하는 사유의 언어를 구사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도 마음에 나무의 뿌리를 내리고, 어떤 건 너무 단단히 뿌리를 내려, 뽑으려 했다간 온 생이 흔들린다던데, 그런 나무였을까?’(‘타투’ 일부)라거나 ‘그녀는 커피를 반이나 남기고 떠났다. 어느 나라 사람들이었을까. 바닥에 남은 커피 앙금을 보고 생의 방향을 점친다고 했는데//그녀는 남은 생을 읽힐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어떤 점괘’ 일부)고 노래한다.

천세진 시인
또 시인은 또 다른 삶으로부터 잉태된 그림자를 통해 생의 본질에 가닿고자 한다.

‘그 사이에도 강을 건너려는 그림자들이 속속 도착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림자들이 기다림으로 길어져서, 조금만 더 길어지면 건너편에 닿을 듯했고, 그것도 한세상 건너는 길인지 늙은 버드나무에게 묻고 싶었어’(‘늙은 버드나무가 사는 강’ 일부)나 ‘양각으로 할 거냐, 음각으로 할 거냐 물었다. 세상 모든 것이 어둡게 할 수도 밝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으나, 어느 쪽을 택할지 정하기 어려웠다’(‘조각도를 들고’ 일부)라고 읊는다.

이어 시인은 ‘소리도 없이 마음을 두들기는 것들은, 빗방울이 아니고 달빛과 별빛을 막아섰기 때문일까’(‘길을 막지 않는다면’ 일부)라거나 ‘고흐의 고독이 그려졌고, 렘브란트의, 뭉크의 고독이 그려졌지만, 잠자리를 몇 시간 동안 지켜보는 사내의 고독은 그려지지 않았다’(‘고독계의 페렐만 씨’ 일부)고도 했다.

이처럼 이번 시집은 시인이 생의 안팎을 넘나들며 본질을 탐색하기 위한 여정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이 여정에는 늘 문장과 함께 하고 셈이다. ‘웅덩이마다 문장이 하나씩 생겼다/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문장이 출렁’(‘오목한 자리마다’ 일부)거렸지만 ‘소리만 베끼’(‘어느 밈 공화국 주민의 일기-산티아고’ 일부)는 삶을 경계한다. 웅덩이같은 질곡의 세상이 점점 말을 잃게 하지만 시인은 빗방울처럼 해갈의 언어를 꿈꾼다.

천세진 시인은 충북 보은 출생으로 2005년 계간 ‘애지’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순간의 젤리’와 문화비평서 ‘어제를 표절했다’를 펴냈다. 광주대학교에 재직했으며 현재 언론과 잡지에 영화, 음악, 인문학, 문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소설 ‘이야기꾼 미로’를 문학동네 출판그룹 계열사인 교유서가에서 출간을 앞두고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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