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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활용사업’ 최고 성과…문화재와 소통 확대해야
[기획특집]광주문화유적 보존·관리의 현주소 <3> 동구
문화재청 ‘생생문화재사업’ 선정 광주지역서 유일
오지호 생가·옛 전남도청·성벽 유허 등 투어 진행
증심사 오층·칠층 석탑만 덩그러니… 관리 아쉬워

2018. 02.10. 11:42:13

증심사 삼층석탑 (유형문화재 1호).일부가 붉은색으로 변색 돼 있다.

오지호가 (기념물 6호)는 고 오지호 화백이 말년을 보냈던 고택으로 초가지붕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점이 고수한 점이 특징이다.
‘손대지 마시오.’

누구나 한 번쯤 미술 전시관의 작품 앞에 걸린 이러한 경고 팻말을 본 적 있을 테다.

특히 감시가 삼엄한 해외의 국립미술관에서 작품에 손끝 하나 댔다가는 감독관의 제재를 당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관리하는 이유에는 한 세기를 대표한, 앞으로는 기대하기 힘든 명작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한 국가와 지역의 역사적 지표가 되는, 게다가 미술품처럼 모조품도 만들어낼 수 없는 ‘문화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사찰, 정차, 서당 등을 ‘보존’이라는 명분 아래 ‘비개방’ 해야 할까, 누구나 만지고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할까.

지난해 한 TV 프로그램에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자 명지대 교수는 문화재청장을 역임하기 전부터 우리나라 문화유산 관리에 가장 불만이었던 점은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쓰인 팻말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천하의 좋은 집도 ‘들어가지 마시오’ 3년 이면 흉가가 돼 있다”며 “문화재는 가까이서 보고 향유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알 수 있다”고 강조한 적 있다.

그의 말대로 이전에는 문화재를 가까이서 누리지 못하고 바라봐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다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보존은 활용을 위한 전제’라는 개념 아래 문화유산을 개방, 다각적으로 활용하는 일이 그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들이 통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역에도 문화재를 개방, 활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과 함께 시민들을 위해 다양한 문화재 향유 사업을 펼치고 있는 곳이 있다. 광주 동구가 광주 지자체 중 유일하게 문화재청의 문화재 활용사업에 선정되는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동구의 문화재를 소개하면서 관리와 활용실태까지 파악해 보고자 한다.



광주 동구의 문화유산은 크게 구도심, 지산동, 운림동 권역으로 총 26건의 지정 문화재가 나뉘어 분포돼 있다.

구도심 권역에는 ‘재명석등’, ‘전남도청 회의실’, ‘광주읍성유허’, ‘전남도청 구본관’이 있으며 지산동 권역에는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지산동 오층석탑’, ‘오지호가’ 자리하고 있다. 운림동 권역 (무등산 국립공원 내)에는 ‘증심사’, ‘약사암’, ‘문빈정사 소장전적’, ‘허백력춘설헌’이 있다.

먼저 광주 동구 지산동에 있는 ‘지산동 오층석탑’을 찾았다.

서쪽으로 2.5㎞ 떨어져 있는 광주 서오층석탑과 거의 흡사한 형태를 띄고 있어 같은 사역의 것으로 생각돼 오랫동안 이 탑의 이름은 광주 동오층석탑으로 불리어 왔다고 한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탑이 자리하고 있는 행정구역의 명칭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표기하게 됐다.

지산동 오층석탑은 이중기단에 오층의 탑신을 올리면서 그 비례가 뛰어나 호남지역의 석탑 중 우수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석탑의 편년은 추정이 어렵지만 전문가들은 대개 통일신라 하대 어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원래 탑이 자리하고 있는 이 터는 절터가 조성됐던 곳인데 이후에 절이 폐사되고 과수원이 들어서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은 도시개발로 주변에 민가와 상점이 빼곡한 인적 많은 동네로 변하게 됐다.

이에 대해서는 ‘일찍이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가 인정돼 주변의 사지가 보존됐다면 광주의 또 다른 역사유적지가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따른다는 의견도 뒤따른다.

‘지산동 오층석탑’의 지척에는 광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인 ‘오지호가’가 있다.

故 오지호 화백의 생가인 이곳은 현시대에는 보기 힘든 초가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귀중한 문화재로 유명하다.

지방기념물 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양화가의 대가 오지호 화백이 조선대 교수로 재직하던 1954년 이후 198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30년간 살던 집으로 100년 전 건물을 1986년에 전체적으로 보수했다. 건물은 안채와 문간채로 안채는 우진각 지붕의 초가인데, 정면 4칸, 측면 2칸의 전, 후 퇴집이다. 전면은 1칸, 반의 부엌과 1칸의 방이 셋이며, 후면에는 툇마루와 골방이 있고, 부엌에는 살창과 천장을 복원했으며, 판장으로 된 부엌문을 옛것 그대로 달았다. 문간채는 오지호 선생의 화실로 6평 정통 유럽양식의 집이다.

특히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적한 시골에서 나올 만한 지푸라기가 촘촘히 엮인 초가집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에 따라 시대에 맞게 기와지붕,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로 바꿀 법도 하지만 여전히 초가집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현대식 집은 사람이 집을 이고 지고 사는 꼴인데 초가집은 자연과도 가까우며 사람이 집을 거느리고 주인 돼 사는 것 같다는 오 화백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이 가옥에는 오지호 화백의 둘째 며느리이자 姑 오승윤 화백 부인인 이상실씨가 거주하고 있다.

사유지이면서 민가이다 보니 상시개방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람을 원하는 시민이 있다면 언제든 이씨가 문을 열어준다.

이씨는 오 화백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 집에서 거주하며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데 이는 문화유산으로서 ‘보존’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동구청의 지원으로 해마다 초가지붕의 서까래 위에 산자 엮기를 하며 빗물에 마당 흙이 떠내려가는 위험이 있어 이 또한 흙을 다시 덮는 작업을 매년 해오고 있다.

이씨는 “생가든 어디든 사람이 살지 않으면 흉가, 폐가가 되기 마련”이라면서 “지금은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관광지로는 활용할 수 없지만 계속해서 관리를 해 나가 광주 지역의 하나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서 보존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동구는 ‘어머니의 산’이라 불리는 무등산 내 사찰 덕분에 불교 유산이 풍부하다.

이 산의 대표 사찰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인 ‘증심사’(證心寺)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의 유물이 내포돼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오백전과 대웅전ㆍ지장전ㆍ비로전ㆍ적묵당ㆍ종각ㆍ일주문ㆍ요사채 등이 있다. 이중 오백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오백전은 대웅전 뒤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초기에 지어진 강진 무위사의 극락전과 같은 계통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증심사에는 시대를 달리하는 석탑들이 자리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증심사 창건 시기에 만들어진 유형문화재 제1호인 ‘증심사 삼층석탑’, 고려 초기의 석탑인 ‘증심사 오층석탑’ 그리고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증심사 칠층석탑’이 그것이다.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이 올려진 통일신라의 전형 양식을 취하고 있다. 다만, 규모가 작아지고 층급받침이나 탱주의 숫자가 작아지는 등 통일신라 말기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상륜부는 일부 다른 석탑의 석재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삼층석탑에서 오른쪽으로 약 20m 떨어진 곳에는 오층석탑과 칠층석탑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삼층석탑에서는 1933년 보수 때 탑 내에서 ‘금동석가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 등이 나왔다. 이들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분실돼 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칠층석탑은 구조와 형태로 보아 조선 중기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 부분에 연꽃과 산스크리트어를 새겨 넣은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다.

이 두 석탑은 경내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곳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어 어떤 문화유산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특히 두 석탑은 각기 다른 시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더욱 관심이 간다.

그러나 비지정 문화재이다 보니 석탑에 관한 이름과 설명이 있는 안내판 등 없이 덩그러니 석탑만 세워져 있다.

지난 12일 증심사에서 만난 김경은씨(37·여)는 “경내에서 눈에 띄는 곳에 있어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보이는데 탑만 덩그러니 있을 뿐 이름이나 설명이 나온 안내판이 없어 아쉬운 점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명칭과 창건 시기, 특징에 대해 설명해주는 안내판 설치가 있으면 방문객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뒤편에는 튼튼한 비각 안에 ‘석조보살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왼쪽 얼굴 부위가 이마부터 턱까지 금이 가 있는 상태이다. 언제 어떻게 훼손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광주지역 한 문화재 관계자는 “석조보살입상의 훼손된 부분은 복구가 힘들다”면서 “지금처럼 비각을 세워 자연재해 등의 위험요소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면서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관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등산을 벗어나 증심사 주차장에서 학운초등학교로 가는 방향에는 ‘운림동 석실고분’이 있다.

운림동 석실고분은 동구 운림동에 있는 백제 후기의 돌방무덤이다. 1989년 3월 20일 광주광역시문화재자료 제9호로 지정된 이 고분은 학운초등학교에서 증심사로 가는 길의 왼쪽에 있다. 이곳은 무등산 장원봉의 동남 경사면으로 80∼100m 반경 안에 6기의 고분이 있다. 현재 나타나 있는 무덤은 도굴돼 껴묻거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무덤의 구조가 이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백제 돌방무덤이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사료된다.

이러한 고분은 집중호우에 약하기 때문에 배수로 설치가 중요한데 운림동 석실고분은 바로 옆 경사진 곳에 배수로가 설치돼 있고 뒤쪽이 숲이라서 호우에도 안전한 편이다.

이 밖에도 동구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옛 전남도청 회의실(유형문화재 6호), 재명석등(유형문화재 5호), 광주읍성 유허(유형문화재 20호), 원각사(비지정 문화재) 등의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그 수는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문화재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는 평가다.

문화재 보유 수는 적지만 동구는 ‘문화재 활용사업’을 잘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광주시 5개 구 중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문화재청의 문화재 활용사업 공모에 선정된 유일한 지자체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에 따라 동구는 국·시비 등 총 사업비 2억4000만 원을 확보해 오는 4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옛 전남도청, 광주 읍성 유허, 예술의 거리 일원을 투어하는 ‘문화재야행 달빛걸음’을 추진하게 됐다.

이와 함께 국·시비 등 총 사업비 3750만 원으로 오는 4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되는 ‘오감만족 풍류산책’은 한국 서양화단의 거목 오지호 화백 생가를 중심으로 자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보물 제1507호), 지산동 오층석탑 (보물 제110호) 등을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투어를 진행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이에 시민들은 우리 주변에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를 중심으로 답사, 공연, 문화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면서 문화재와 한 발 더 가까이에서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parksr@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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