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딕테’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미술작가 김설아
입력 : 2026. 09. 17(목)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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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설아 작가
2024년, 차학경(Theresa Hak Kyung Cha)의 ‘딕테’(Dictee, 1982)가 한국어판으로 재출간되었다. 그녀가 서른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42년, 책이 절판된 지 20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다시 우리 앞에 놓인 지금에도, 이방인을 둘러싼 소외와 적대의 문제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이 겪는 무시와 배제,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이주민에 대한 통제와 검열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끝내 완결될 수 없는 정체성을 재단하고 검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딕테’는 프랑스어로 ‘받아쓰기’를 뜻한다. 예술가이자 작가, 영화제작자, 퍼포먼스 작가로 활동한 차학경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그녀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그녀의 가족은 일제강점기 만주 피난을 거쳐 서울과 부산으로 이동하였다. 1960년대 초 그녀는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이주했고 몇 해 뒤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이러한 전쟁, 식민, 이주의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언어와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조각난 기억과 소외된 목소리를 탐구하게 했다.
‘딕테’는 차학경이 자신의 주제에 어떻게 천착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그녀의 생애 마지막 시기에 출간된 책이다. 먼저 이 책은 한국어, 프랑스어, 영어를 중심으로 라틴어, 한자 등 여러 언어가 서로 개입한다. 그리고 텍스트, 사진, 필기와 서예 이미지, 문서적 이미지가 꼴라주처럼 병치된다. 독자는 여기서 언어적 의미와 시각적 형식을 동시에 읽게 된다. 파편화된 요소들을 다양한 감각의 층위에서 능동적으로 조합하게 하는 이 구성은, 이주자의 정체성이 고정된 범주로 포착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딕테’에는 역사 속 인물들의 목소리와 기억이 겹겹이 등장한다. 발화하는 인물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유관순, 잔 다르크, 성 테레사, 차학경의 어머니와 작가 자신, 그리고 사포와 데메테르, 페르세포네를 비롯한 그리스 신화와 고전 문학의 여성들이 등장하며, 함께 말하거나 말하려다 멈춘다. 이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통합되지 않고, 서로 다른 역사와 기억, 언어로 교차한다. 차학경은 이들의 이야기를 단일하고 보편적인 여성 서사로 묶기보다, 어떤 목소리가 역사로 기록되고, 어떤 목소리가 망각 속에 남겨지는지를 묻는다.
‘딕테’는 받아쓰기라는 형식을 통해 이주민이 마주하게 되는 서로 다른 역사, 언어, 제도적 권력이 마주하는 자리에 시선을 둔다. 그와 동시에 언어가 완전히 번역되거나 한 가지 의미로 봉합되지 않는 상태를 그대로 둔다. 독자는 그 불완전한 번역과 분절된 목소리 사이에서 타자와의 관계는 동일화나 완전한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한지 생각하게 된다. 차학경은 단절을 지우려 하기보다, 단절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에게 응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딕테’는 여러 인물의 다층적 서사를 거쳐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로 되돌아온다. 각국에서 이주민과 소수자를 향한 증오범죄와 차별이 끊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이 책은 정체성이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 언어, 권력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고 다시 쓰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완전히 번역되지 않는 목소리, 하나의 의미로 봉합되지 않는 목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누구의 언어로 말할 것이며, 어떤 목소리를 번역하고, 어떤 목소리를 침묵 속에 남겨둘 것이며, 그 과정에서 누구를 말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할 것인가를 말이다.
‘딕테’가 다시 우리 앞에 놓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차학경의 언어는 단절과 번역의 불완전성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말하려다 멈추고 어긋난다. 그 틈을 그대로 둔 채, 타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서로에게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를 조용히 되묻는다. 이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안의 강요된 ‘받아쓰기’를 멈추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끝내 도착하지 못한 자리까지도 함께 듣는 일일지 모른다.
‘딕테’는 프랑스어로 ‘받아쓰기’를 뜻한다. 예술가이자 작가, 영화제작자, 퍼포먼스 작가로 활동한 차학경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그녀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그녀의 가족은 일제강점기 만주 피난을 거쳐 서울과 부산으로 이동하였다. 1960년대 초 그녀는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이주했고 몇 해 뒤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이러한 전쟁, 식민, 이주의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언어와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조각난 기억과 소외된 목소리를 탐구하게 했다.
‘딕테’는 차학경이 자신의 주제에 어떻게 천착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그녀의 생애 마지막 시기에 출간된 책이다. 먼저 이 책은 한국어, 프랑스어, 영어를 중심으로 라틴어, 한자 등 여러 언어가 서로 개입한다. 그리고 텍스트, 사진, 필기와 서예 이미지, 문서적 이미지가 꼴라주처럼 병치된다. 독자는 여기서 언어적 의미와 시각적 형식을 동시에 읽게 된다. 파편화된 요소들을 다양한 감각의 층위에서 능동적으로 조합하게 하는 이 구성은, 이주자의 정체성이 고정된 범주로 포착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딕테’에는 역사 속 인물들의 목소리와 기억이 겹겹이 등장한다. 발화하는 인물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유관순, 잔 다르크, 성 테레사, 차학경의 어머니와 작가 자신, 그리고 사포와 데메테르, 페르세포네를 비롯한 그리스 신화와 고전 문학의 여성들이 등장하며, 함께 말하거나 말하려다 멈춘다. 이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통합되지 않고, 서로 다른 역사와 기억, 언어로 교차한다. 차학경은 이들의 이야기를 단일하고 보편적인 여성 서사로 묶기보다, 어떤 목소리가 역사로 기록되고, 어떤 목소리가 망각 속에 남겨지는지를 묻는다.
‘딕테’는 받아쓰기라는 형식을 통해 이주민이 마주하게 되는 서로 다른 역사, 언어, 제도적 권력이 마주하는 자리에 시선을 둔다. 그와 동시에 언어가 완전히 번역되거나 한 가지 의미로 봉합되지 않는 상태를 그대로 둔다. 독자는 그 불완전한 번역과 분절된 목소리 사이에서 타자와의 관계는 동일화나 완전한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한지 생각하게 된다. 차학경은 단절을 지우려 하기보다, 단절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에게 응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딕테’는 여러 인물의 다층적 서사를 거쳐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로 되돌아온다. 각국에서 이주민과 소수자를 향한 증오범죄와 차별이 끊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이 책은 정체성이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 언어, 권력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고 다시 쓰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완전히 번역되지 않는 목소리, 하나의 의미로 봉합되지 않는 목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누구의 언어로 말할 것이며, 어떤 목소리를 번역하고, 어떤 목소리를 침묵 속에 남겨둘 것이며, 그 과정에서 누구를 말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할 것인가를 말이다.
‘딕테’가 다시 우리 앞에 놓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차학경의 언어는 단절과 번역의 불완전성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말하려다 멈추고 어긋난다. 그 틈을 그대로 둔 채, 타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서로에게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를 조용히 되묻는다. 이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안의 강요된 ‘받아쓰기’를 멈추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끝내 도착하지 못한 자리까지도 함께 듣는 일일지 모른다.
김설아 gn@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