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개의 소리가 깨운 기억…귀로 걷는 아시아의 역사
‘ACC 미래상: 김영은’전, 문화창조원 복합전시1관
향·티셔츠·가방 등 전시 연계 문화상품 한정 선봬
입력 : 2026. 09. 14(월)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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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이 선보인 전시 연계 문화상품 4종 8품목. 사진 제공=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울리퍼지는 사운드를 들으면서 스크린 속 시를 감상하고 있다.
어둠이 내려앉은 전시장 안에서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눈을 붙잡는 이미지보다 먼저 들려오는 것은 어디론가 이동하는 목소리와 울림이다. 바다를 건너고 들판을 지나온 듯한 소리는 공간 곳곳에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며, 오래된 시의 문장들을 현재의 감각으로 불러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대표 융복합 예술 수상 제도인 ‘ACC 미래상’ 수상작가 김영은의 전시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이동하는 소리’는 이처럼 ‘본다’는 감각을 넘어 ‘듣는다’는 행위에 무게를 둔다.

올해 제2회를 맞은 ACC 미래상은 동시대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제도다. 올해 최종 선정 작가인 김영은은 이번 전시에서 아시아 역사 속 이동과 이주의 정서를 노래한 과거의 시를 입체적인 소리로 재현해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의 이동과 이주’를 소리로 경험하는 대규모 사운드 설치 작품이다. 가로 25m, 세로 60m, 높이 15m 규모의 전시장 천장과 바닥에는 모두 115개의 스피커가 설치됐다. 소리가 공간 전체를 입체적으로 이동하고 펼쳐지는 기술과 가상의 음원에서 발생하는 음파를 실제 공간 안에 재현하는 WFS(Wave Field Synthesis) 시스템을 구현해 관람객이 소리를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몸을 감싸며 이동하는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 멈춰 서기보다 공간을 천천히 이동하며 소리의 방향과 거리, 울림의 변화를 따라간다. 하나의 소리는 고정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전시장 안을 떠돌며 다른 소리와 겹치고 흩어진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시는 단순히 낭독되는 문장이 아니라, 이동하는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 장소의 흔적으로 되살아난다. 전쟁과 이주, 경계와 이동의 역사를 품은 아시아의 시간은 소리라는 매체를 통해 관람객의 몸 가까이 다가온다.

전시장에 흐르는 목소리들은 식민 폭력과 전쟁 등 아시아의 복잡한 역사 속 이동과 이주의 경험, 정서를 노래한 과거의 시에서 출발한다. 김 작가는 과거의 시가 본래 소리 내어 읊는 낭송의 전통 속에서 구전됐지만, 오늘날에는 그 음성성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작가는 이 사라진 목소리를 현대적으로 되살리기 위해 시와 시 낭송 자료를 조사하고, 전문가 자문을 거쳐 문헌학적 추정을 쌓아갔다. 여기에 각 시가 놓인 역사적 배경과 정서, 언어적 감각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작곡가들에게 곡을 의뢰해 새로운 아시아의 음향 풍경을 구성했다. 전시장에서는 아홉 편의 시를 바탕으로 만든 아홉 곡이 60분 단위로 순환 재생된다.

아홉 편의 시 가운데 하나인 허균의 ‘노객부원’은 임진왜란 시기 금강산으로 향하던 허균이 철원의 객점에서 만난 한 늙은 아낙의 비참한 사연을 담은 장편 한시다. 총 48구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라예송 작곡가는 당시의 시대상과 시가 묘사하는 공간, 정서에 어울리는 음색과 음률로 형상화했고, 이를 ‘허균, 읊기, 노객부원(老客婦怨)’이라는 곡으로 다시 풀어냈다.

작가는 영상매체와 사운드를 통해 보이지 않는 역사를 감각하게 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록으로 남은 언어와 귀로 감지되는 파동, 공간을 가로지르는 청취의 경험을 결합해 ‘미래의 청취자’에게 말을 건다.

전시장에서는 시의 문장이 하나의 방향으로만 전달되지 않는다. 낮게 깔리는 음향, 멀리서 다가오는 듯한 목소리, 이동하는 울림이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감지된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가 듣는 소리의 결은 조금씩 달라진다.

이 같은 구성은 이동과 이주의 경험을 더욱 입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이동은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행위가 아니라, 언어와 기억, 정체성이 흔들리고 다시 자리 잡는 과정이다. 전시는 그 복잡한 감각을 시각적 설명보다 소리의 층위로 풀어낸다.

작가는 완성된 곡들을 115.4채널 사운드로 구현하기 위해 ACC창제작센터 입체음향제작실을 오가며 음향 믹싱 작업을 진행했다. ACC 입체음향제작실은 64대의 스피커로 WFS와 앰비소닉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는 장비와 믹싱콘솔을 갖추고 있어 이번 전시의 소리를 입체적으로 설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ACC 미래상; 김영은’의 전시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이동하는 소리’가 지난 3일 개막해 오는 2027년 2월 14일까지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1관에서 열린다.
전시장에는 시와 사운드로 엮은 작품 별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는 태블릿이 마련돼 있다.
전시장에서는 소리뿐 아니라 각 시의 구절이 표출되는 대형 스크린 3개와 조명 연출도 함께 만날 수 있다. 관람객은 이동하는 소리와 빛, 문장이 겹쳐지는 공간 속에서 아시아의 역사와 이주, 기억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음향적 풍경을 경험하게 된다.

전시는 지난 3일 개막해 오는 2027년 2월 14일까지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1관에서 열린다.

전시의 여운을 간직할 수 있는 연계 문화상품도 선보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은 전시와 연계해 문화상품 4종 8품목을 출시, 이 기간 ACC 내 문화상품점 ‘들락’ 오프라인 매장과 공식 온라인 누리집에서 선보인다.

청각 중심의 작품을 일상 속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한 상품으로, 향과 향 받침, 패션 브랜드 ‘미스치프’와 협업한 티셔츠와 가방 등이다.

향과 향 받침은 전시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바다와 들판에서 착안했다. 백단과 향나무, 신연꽃 등에서 추출한 천연 재료를 배합해 만든 향은 작품 속 소리의 여운을 후각의 감각으로 옮긴다. 작품 속 시 구절을 감각적인 시각 디자인으로 재해석한 반소매 티셔츠와 실용적인 가방은 이번 전시 한정 상품으로 판매된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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