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노동자의 절규…‘극렬한 분노와 항의’ 투영
김정훈 교수·차타니 주로쿠 아키타현 역사교육협 회장
나나쓰다테 사건 82주기 판화 ‘나나쓰다테의 낙반’ 분석
"판화·시는 국가와 기업이 지운 노동의 기억 소환" 밝혀
나나쓰다테 사건 82주기 판화 ‘나나쓰다테의 낙반’ 분석
"판화·시는 국가와 기업이 지운 노동의 기억 소환" 밝혀
입력 : 2026. 05. 27(수)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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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와 시가 실린 ‘하나오카 이야기’(무명사출판, 1981) 속표지)

나나쓰다테 사건 기록과 시와 판화가 수록된 김정훈 교수 역서

판화 ‘나나쓰다테의 낙반’(광주시립미술관 소장 하정웅콜렉션)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와 차타니 주로쿠(茶谷十六) 일본 아키타현 역사교육협의회 회장은 오는 29일 나나쓰다테 사건 82주기를 맞아 당시 사건을 기록한 조각가 니이 히로하루(新居?治) 등이 새긴 판화 2점과 세배 요시오(본명 기타 세츠지)가 쓴 연작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나나쓰다테 사건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동북지방 하나오카 광산에서 무리한 채굴 강요로 갱도가 붕괴해 조선인 노동자 11명과 일본인 노동자 11명 등 총 22명이 생매장당한 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사건 직후 동료들과 가족들이 애타게 구조작업을 벌였던 상황을 생생하게 새긴 예술품이 바로 판화 ‘나나쓰다테의 낙반’으로, 한 희생자 가족이 일본 헌병의 손을 붙잡는 장면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지금까지 이 장면은 단순히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수동적인 구조 요청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분석을 통해 당시 조선인 희생자 가족이 느꼈을 극렬한 분노와 인간적 존엄에 대한 호소를 압축한 주체적이고 상징적인 저항의 표출이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나나쓰다테 사건과 조선인 희생자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표명해 온 일본 작가를 연구해온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는 이 사건이 그동안 주로 ‘희생’을 강조하는 틀 안에서만 거론됐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판화 속 장면은 조선인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단지 무력한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았음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조선인 노동자 가족이 일본 헌병의 팔을 붙드는 모습은 생매장된 희생자를 살려내라는 절박한 호소인 동시에, 왜 우리를 이토록 위험한 갱도로 몰아넣었느냐는 극렬한 분노가 담긴 적극적인 항의로 읽힌다는 것.
이는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이 위험 작업장 배치, 배급 차별, 저임금 등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역사적 기록과 맞물려 그 의의가 도드라진다.
이런 해석은 당시 현장을 기록한 다른 작품을 통해서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하나오카 사건을 주제로 연작 시를 쓴 세배 요시오의 시작품에는 조각가 니이 히로하루가 그린 도안 판화가 곁들여져 있는데, 특히 ‘나나쓰다테의 낙반’ 바로 뒤에 배치된 ‘투쟁하는 조선인들’이라는 판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니이 히로하루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부당함에 저항하며 광산 사무실로 당당히 항의하러 몰려가는 역동적인 장면을 판화 ‘투쟁하는 조선인들’에 새겨넣었다.
당시의 시를 통해서도 조선인 노동자들의 분노와 항거가 단지 그들만의 외침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세배는 “조선의 노동자들/ 농부들도 징용되었지/ 그 한반도 사람들/ 마침내 참지 못하고/ 우르르 사무실로 몰려와/ “임금을 올려라!”/ “배급을 똑바로 해라!”/ 우리는 마음속으로 손뼉을 쳤지/ 조선인들이지만 용기가 대단해!”라고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 시는 단순한 동정을 넘어, 전시 체제라는 서슬 퍼런 억압 아래에서도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 피어났던 미묘하고도 단단한 연대 감정을 입증하는 귀중한 기록이다.
2007년 김 교수에게 하나오카 사건과 일본의 양심적 작가 마쓰다 도키코를 처음 소개했던 차타니 주로쿠 아키타현 역사교육협의회 회장 역시 이번 판화의 재조명에 의미를 부여했다.
차타니 회장은 김 교수와 주고받은 메일에서 당시 국가와 기업이 조선인과 일본인을 철저히 분리된 존재로 관리하려 했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서로가 겪는 고통과 저항을 똑똑히 목격하고 있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조선인 노동자가 붙잡고 있는 것은 단지 한 일본인 헌병의 팔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관계 자체를 붙잡은 것이라며, 바로 그 장면이야말로 나나쓰다테 사건을 오늘날의 문제로 다시 읽게 만드는 핵심적인 이유라고 분석했다.
이런 시각적 분석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들의 피해 조사와 기록 복원의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되는 현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대 예술인들이 사건 현장에서 직접 작업해 남긴 생생한 결과물인 시와 판화를 통해 역사를 원형 그대로 복원해냈기 때문이다.
세배 요시오 시인은 나나쓰다테 사건을 묘사하며 “산 채로 매장된 22명의 유골은/ 지금도 그대로”라고 표현했다. 김정훈 교수와 차타니 주로쿠 회장은 이 구절이 단순히 수습되지 못한 물리적 유골 상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온전히 구조되지 못한 역사적 기억과 책임의 문제를 상징한다고 짚었다.
또 “이 판화와 시는 단순한 추모의 수준을 넘어, 국가와 기업이 철저히 지워버리려 했던 노동의 기억을 현재로 생생하게 소환하는 예술적 증언이다. 흑백의 거칠고 투박한 조각칼 선으로 새겨진 노동자들의 얼굴과 몸짓에서 당시 그들이 외쳤던 절박한 항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김 교수는 “82년 전 무너진 것은 나나쓰다테의 물리적 갱도였지만, 우리 역사 속에는 아직도 완전히 구조되지 못한 채 묻혀 있는 기억들이 너무나 많다”라며 “한일 간의 공동 기억을 구축하는 것은 과거를 단순히 매듭짓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의 관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82주년을 맞는 깊은 의미를 전했다.
한편, 지난 2007년 일본 민족예술연구소(당시 차타니 주로쿠 소장)와 전남과학대 일본문화연구소(당시 김정훈 소장)가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이래, 두 사람은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며 심포지엄 개최와 공동연구를 2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