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첫 참배’ 李대통령 찾은 5·18 묘역은?
월급도 못 받은 소년공 박인배
41년 만에 신원 되찾은 양창근
마지막 희생자 여중생 김명숙
입력 : 2026. 05. 19(화)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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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근
김명숙
박인배


1980년 5월 광주의 아픔이 잠든 국립5·18민주묘지에서 45년 전 총탄에 스러진 어린 학생과 소년공들의 이름이 다시 불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분향한 뒤, 소년공 출신 희생자 고 박인배군(당시 18세)과 41년 만에 신원이 확인된 고 양창근군, 항쟁 마지막 희생자로 기록된 고 김명숙양의 묘소를 차례로 참배했다.

박인배군은 가난한 형편으로 중학교를 중퇴하고 서울에서 자개 기술을 배운 뒤 광주의 한 가구공장에 취직해 생활했다. 공장에서 숙식을 하며 일했던 그는 주말이면 집에 들러 어머니를 챙길 만큼 효심이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박군은 첫 월급을 받기로 했던 1980년 5월24일을 끝내 맞지 못했다. 계엄군 집단 발포가 벌어진 5월21일 동구 금남로5가 옛 한일은행 인근에서 총탄에 희생됐다. 박군의 묘소는 민주묘지 1-30번에 안장돼 있다.

이 대통령은 이어 41년 만에 신원이 확인된 고 양창근군(당시 15세)의 묘소도 참배했다.

1980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양군은 5월19일 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했다가 계엄군 총격으로 희생됐다. 이후 망월동 구묘역 무명열사 묘역에 안장됐던 양군은 2021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신원이 확인됐다.

양군은 제20사단 61연대의 광주-나주 간 도로 봉쇄 작전 과정에서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묘소는 국립5·18민주묘지 1-38번 묘역에 조성돼 있다.

이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찾은 묘소는 항쟁의 마지막 희생자로 기록된 고 김명숙양(당시 14세)이다.

당시 서광중학교 학생이었던 김양은 1980년 5월27일 친구에게 책을 빌리러 갔다 귀가하던 중 전남대 정문 인근에서 계엄군 총격을 받았다. 도청 진압 작전이 끝난 뒤에도 이어진 민간인 수색 과정에서 희생된 것이다.

총탄을 피해 개천 아래로 몸을 숨겼던 김양은 상황이 끝난 줄 알고 밖으로 나오다 다시 발포된 총탄에 쓰러졌다. 김양의 묘소는 민주묘지 2-28번에 안장돼 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국립5·18민주묘지 방명록에 “5·18 정신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적었다.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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