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광장 덮은 '님을 위한 행진곡'…與·野 한목소리 제창
입력 : 2026. 05. 18(월)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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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진보당 김재연 대표가 18일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제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최기남 기자 bluesky@gwangnam.co.kr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18일 오전 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는 오월 영령의 넋을 기리려는 참석자들의 ‘님을 위한 행진곡’이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40여 분간 이어진 기념식의 대미이자 폐식 직전 제창 순서가 다가오자 6년 만에 광장을 가득 메운 3000여 명의 참석자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념식 내내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던 이재명 대통령은 김혜경 여사와 함께 정면을 응시하며 오른 주먹을 위아래로 힘차게 흔들며 행진곡을 힘차게 불렀다.
이 대통령 곁에 자리한 우원식 국회의장, 김민석 국무총리, 5·18 3단체장(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도 반주에 맞춰 제창에 동참했고, 소복을 입고 참석한 오월 어머니들 일부는 46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는 듯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진보당 김재연 대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등 당 지도부 모두 목청 높여 제창했지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만이 주먹을 흔드는 것 대신 차렷 자세를 유지하며 제창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정부 주관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다 함께 부르는 공식 식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2년 차인 2009년부터 식순에서 제외되거나 합창단 공연 등으로 대체돼 5·18 단체의 반발이 일기도 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다시 참석자 전원이 부르는 제창 방식으로 복원됐다.
행진곡은 5·18 당시 숨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노동운동가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에 헌정하기 위해 1981년 제작됐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980년 서빙고 보완사에서 쓴 시 ‘묏비나리’에서 가사를 차용했고, 당시 전남대 학생이었던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곡을 붙여 완성됐다.
18일 오전 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는 오월 영령의 넋을 기리려는 참석자들의 ‘님을 위한 행진곡’이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40여 분간 이어진 기념식의 대미이자 폐식 직전 제창 순서가 다가오자 6년 만에 광장을 가득 메운 3000여 명의 참석자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념식 내내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던 이재명 대통령은 김혜경 여사와 함께 정면을 응시하며 오른 주먹을 위아래로 힘차게 흔들며 행진곡을 힘차게 불렀다.
이 대통령 곁에 자리한 우원식 국회의장, 김민석 국무총리, 5·18 3단체장(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도 반주에 맞춰 제창에 동참했고, 소복을 입고 참석한 오월 어머니들 일부는 46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는 듯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진보당 김재연 대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등 당 지도부 모두 목청 높여 제창했지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만이 주먹을 흔드는 것 대신 차렷 자세를 유지하며 제창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정부 주관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다 함께 부르는 공식 식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2년 차인 2009년부터 식순에서 제외되거나 합창단 공연 등으로 대체돼 5·18 단체의 반발이 일기도 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다시 참석자 전원이 부르는 제창 방식으로 복원됐다.
행진곡은 5·18 당시 숨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노동운동가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에 헌정하기 위해 1981년 제작됐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980년 서빙고 보완사에서 쓴 시 ‘묏비나리’에서 가사를 차용했고, 당시 전남대 학생이었던 김종률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곡을 붙여 완성됐다.
송태영 기자 sty1235@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