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재와 제자들 예술적 동행…남도 문인화의 유산
광주의재미술관 ‘…아름다운 동행’전 7월까지 진행
계산 장찬홍·금봉 박행보 등 20명 작품 40여점 출품
제1·2전시실 산수…4전시실 문인화 작품 집중 소개
입력 : 2026. 03. 03(화)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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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 장찬홍 작 ‘묵란’
구당 이범재 작 ‘묵난’
의재 허백련(1891∼1977)은 광주 현대화단의 정신적 지주처럼 통하는 인물이다. 국내 남종화의 거장이기 때문이다. 미술사적으로 굵직한 위치를 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공간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가령 동구 운림동은 의재가 머물렀던 주공간이어서 의재교(목교)를 망라해 석아정과 오방정이었던 춘설헌 및 석아정·오방정기념비, 삼애다원, 문향정, 관풍대, 묘소 등이 즐비하다. 광주의 어머니산으로 빛고을의 정신주 지주였던 무등산 자락에 지역미술의 정신적 지주였던 의재가 깃들어 있는 셈이다. 의재와 광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규정된다. 그의 미술사적 족적이 작지 않기에 그의 화업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01년 의재미술관을 건립해 올해 25년째를 맞고 있다. 그만큼 의재의 그늘은 광주 현대화단에는 출발지점과 같다. 그래서 매년 그를 기리는 전시가 꾸준하게 열리고 있는 것이다.

광주의재미술관(관장 이선옥)은 올해도 변함없이 ‘의재와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타이틀로 한 기획전을 3일 개막, 7월 31일까지 미술관 1, 2, 4전시실에서 갖는다. 이번 전시가 의미를 갖는데는 스승을 위해 그의 제자들이 대거 출품해서다.

금봉 박행보 작 ‘농경도’
매정 이창주 작 ‘산수’
전시는 의재 허백련의 예술정신과 그 계승 과정을 조명하는 자리로, 의재와 제자들의 관계를 통해 남도 문인화가 어떻게 이어지고 확장됐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로 손색이 없다.

전통이 현시대 삶 속에서 어떤 의미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함께 조명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는 계산 장찬홍을 비롯해 구당 이범재, 금봉 박행보, 매정 이창주, 백양 조정규, 연사 허대득, 옥산 김옥진 등 나름대로 미술적 일가를 이룬 20여명의 작가의 서예, 사군자, 산수 등 작품 40여점이 선보인다. 그의 제자들 상당수가 고인이 됐기에 오로지 작품만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 및 남도문인화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되고 있다.

특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남도 문인화의 흐름을 되짚는데 초점을 맞춘 이번 전시는 제1·2전시실에서는 남도의 자연과 정신을 담은 산수 작품을 조망하도록 큐레이팅을 했으며, 제4전시실에서는 전통의 맥을 잇는 문인화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 따라서 각 전시실은 의재와 제자들의 예술적 흐름을 공간별로 보여주는데 무게를 뒀다. 스승과 제자들의 관계를 화폭을 통해 작으나마 유추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언급했듯 의재는 남종문인화의 전통을 바탕으로 남도 화단의 선구적 역할을 한 거장으로, 필묵(筆墨)의 법도와 문기(文氣)의 수양을 함께 강조하며, 시·서·화를 하나의 인문적 흐름으로 이해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이런 미술적 사유들은 화법의 전수를 초월해 예술가의 태도와 삶 전반에 걸친 가르침으로 이어졌고, 연진회(鍊眞會)로 뜻이 모며 교유와 수련이 함께 이뤄진 장을 구현해냈다. 광주화단에는 그의 마지막 제자이니, 연진회 마지막 수료생이니 하는 말들이 여전히 유효한다. 그의 영향력이 오늘까지 살아있다는 반증이다.

백양 조정규 작 ‘산수육폭병풍’
옥산 김옥진 작 ‘월하취적’
의재미술관 관계자는 의재와 제자들의 관계는 단순한 스승과 제자의 틀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의재는 필법과 정신적 절제를 강조하면서도 화면의 해석과 표현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 뒀고,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자신의 경험과 감각을 작품에 담아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남도 문인화는 전통 안에서 서로 다른 결을 드러내게 됐는데, 이런 의재와 제자들의 관계를 ‘동행’이라는 말로 풀어 보고자 했다는 전언이다. 그것은 같은 뜻을 나누며 각자의 길을 걸어온 시간의 흐름이라는 점 역시 잊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의재와 뜻을 함께했을 뿐 아니라 서예와 사군자, 산수 작업 모두 남종문인화의 전통에 기반하고 이들의 작업이 실제 한자리에서 선보인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더한다. 같은 스승이라고 해서 이들 제자의 화맥이 똑같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화면을 풀어내는 방식과 표현에서는 제자들마다의 생각과 개성을 투영한 화폭을 일궈 일가를 이뤄내고 있어서다.

아울러 서예에서는 단정한 필획으로 품격을 보여주고, 산수에서는 남도의 자연과 삶의 경험을 담아내며, 사군자에서는 절제된 정신을 표현한다. 이런 차이는 스승의 가르침이 각자의 작업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사 허대득 작 ‘강산무진’
이 전시는 의재와 제자들의 관계를 하나의 계보에 가두지 않고, 함께 만들어 온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남도 문인화라는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미술사적 시각을 바로 잡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선옥 관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의재와 제자들이 함께 한 시간은 남도 문인화의 뜻깊은 유산이다. 그 시간을 되새기며, 그 안에 담긴 생각과 품격을 다시 마주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의재와 제자들이 함께 이어 온 예술의 시간을 직접 마주하며, 전통이 오늘의 삶과 만나는 자리에 함께해 그 깊은 울림을 느껴보시기 바란”고 말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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