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석 결처럼 쌓아올린 ‘시간과 감각의 층’
오수경 개인전 30일까지 아천미술관서
정체성·예술적 뿌리 맞닿아 있어 의미
입력 : 2025. 11. 06(목)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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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오수경 작가.
전시 전경.
그의 조부는 서양화가 오지호 선생(1905∼1982)이고, 부친은 오승윤 화백(1939∼2006)이다. 오지호 선생은 한국적 인상주의를 정착시킨 근현대 서양화의 대가이고 생전 조선대 교수와 국전 심사위원장 등을, 오승윤 화백은 한국 서양화단의 거장으로 전남대 예술대학 교수 등을 두루 역임했다. 오지호 선생은 동양화가인 의재 허백련 선생과 호남 근대회화의 양대산맥으로 통했다. 이런 저명한 미술 집안 출신인 오수경 화가의 이야기다. 오 작가가 영암 아천미술관 기획초대로 개인전을 연다. 전시는 지난 1일 개막, 오는 30일까지 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지오 필그림-감각적 지도 Sensory Map’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한 예술가의 정신과 그로부터 이어진 또 한 세대의 창조적 사유가 한 공간 안에서 만나는 뜻깊은 자리로 손색이 없는 이번 전시는 오승윤 화백의 주요 작품을 소장하며 한국 근·현대 서양화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아천미술관에서 오 화백의 자녀인 오 작가의 전시를 열고 있어 의미를 더한다.

‘나의 샘, 나의 근원(我泉)’이라는 뜻을 지닌 아천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그러한 미술관의 정체성과 작가의 예술적 뿌리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오 작가의 신작 연작 ‘지오 필그림-감각적 지도’는 자연 속 ‘순례자’(Pilgrim)로서 경험한 풍경과 감각의 층위를 회화로 풀어낸다. 작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이는 지층처럼 색과 형태를 반복적으로 겹쳐 올리며, 화면 위에 ‘감각의 지층’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풍경의 재현을 넘어, 인간과 자연, 시간과 존재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 그에게 순례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신체와 감각을 통해 세계와 직접 맞닿는 과정이다.

전시 전경.
오수경 작 ‘필그림-설악’
이번 작품들은 중국 둔황의 막고굴, 천산 산맥의 바위, 사막의 빛 등 자연의 원형적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작가는 이 경험을 ‘압축된 감각’으로 회화화하며, 인간의 몰입과 자연의 시간, 그리고 깨달음의 흔적을 하나의 화면에 담았다. 그의 그림 속 암석의 결과 대지의 흔적은 단순한 표면이 아니라, 순례의 여정 속에서 마주한 깨달음의 흔적이자 시간의 패턴으로 남는다.

특히 그의 화면 속에는 지질학적 시간과 인간의 감각이 맞물리며, 대지의 흔적이 색채와 형태로 변주된다. 관람객은 작품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자연의 깊은 리듬과 존재의 울림을 감각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또 디지털 기술로는 완전히 재현할 수 없는 세계의 감각, 그리고 인간이 세계와 맺는 근원적인 관계를 탐구하며, 그 여정을 ‘감각적 지도’로 기록한다.

작가는 전시에 앞서 “수백만 년의 압력을 견뎌온 암석의 결처럼, 나 또한 그 시간과 감각을 회화의 층으로 압축하고 싶었다”면서 “박물관의 정교한 VR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직접 몸을 움직여 순례의 길을 걷는다”고 말했다.

이어 아천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의 전통과 현대적 감성이 만나는 지점, 그리고 세대를 이어 흐르는 창조의 정신을 함께 조명한다. 관람객들은 작가가 온몸으로 직관한 자연의 압력과 시간의 층위를 작품 속에서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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