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성당 일원 조선시대 유적 확인…역사적 가치 높아
건물지 9동·분청사기·백자 등 유물 55점 출토
관아 위치·생활상 알 수 있는 중요자료로 평가
입력 : 2025. 07. 13(일) 18:04
곡성군 읍내리에 위치한 곡성성당 일원에 조선시대 건축유적이 나왔다. 사진은 조사지역 1차 조사완료 후 항공사진
전남 곡성군 읍내리에 위치한 곡성성당 일원에서 조선시대의 전반적인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건축물 유적이 나왔다.

13일 곡성군, 전남문화유산연구원 등에 따르면 곡성읍내리 425-1번지 일원에는 곡성 관아가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은 건물지 9동(1~4구역)과 분청사기, 백자, 기와류 등 55점의 유물이 확인됐다.

이번 조사는 지난 2023년 1월 곡성 정해박해 평화순례길 조성사업과 관련해 곡성성당 전시관 증축공사부지 내에 포함된 곡성현 관아, 객사 등을 확인하기 위해 2023년 2월부터 6월까지 곡성군 곡성읍 읍내리 425-1번지 일원(1695㎡)에서 진행됐다.

건물지는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조성됐으며 대체로 장방형 평면형태를 보였고, 건물지 내부에서는 기단석열, 적심, 아궁이 등이 확인됐다.

확인된 건물지는 4차례 정도 시차를 두고 중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용과 폐기가 반복되는 과정을 거치며 조선시대 후기까지 이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1차·2차 건물지는 고려말~조선초기에 형성된 것으로 파악되며, 객사의 형태를 갖춘 시기는 2차 건물지의 조성 시기인 1735년 전후로 추정된다.

이후 1597년 정유재란과 1733년의 화재로 중건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3차 건물지가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4차 건물지는 조선시대 후기에 마련됐으나 1948년 이전에 원인 모를 사유로 소실된 뒤 1957년 곡성성당이 현재의 위치에 건립돼 지금까지 남아 있다.

기존의 건물들과는 달리 4-1호 건물지에서는 아궁이 시설이 나왔다.

곡성현 관아터에서 출토된 유물은 자기류 18점(백자 9점·분청자시 8점·청자 1점), 도기 2점, 기와류 28점(수키와 12점·암키와 16점), 막새류 7점(수막새 4점·암막새 3점)으로 총 55점이다.

자기와 막새, 기와의 시기는 15세기, 청자편이 1점 출토된 것과 오목굽 백자를 통해 볼 때 조선시대 초기~중기(17세기 후반)까지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곡성현 관아터는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이용됐던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발굴조사의 범위가 협소한 탓에 유적의 전체적인 형태나 규모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는 것이 연구원의 입장이다.

군은 건물지 훼손을 방지하고자 ‘현지보존(복토 후 사업시행)’을 결정, 유구 위에 복토한 뒤 다시 흙을 깔아 토사다짐과 함께 잔디를 심었다.

곡성군 관계자는 “이곳은 문헌기록에서 볼 수 있는 관아시설 중 객사 또는 부속시설의 위치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조사를 계기로 곡성현의 관아시설의 정확한 위치, 조선시대 전반적인 생활 양상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송태영 기자 sty1235@gwangnam.co.kr
사회일반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광남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