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역사 왜곡 교과서 발행 …황국신민화 앞장"
심정섭씨, 고등소학 국사·실업종설 황국사 등 공개
임나일본부·식민통치 날조…한일합방 미화 기술도
입력 : 2025. 05. 27(화) 18:21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식민지역사박물관 명예관장인 심정섭씨가 27일 1924년 일본 문부성(교육부)에서 발행한 ‘고등소학 국사’ 상·하권과 1938년 동경 개성관에서 발행한 문부성 검정제 ‘실업종설 황국사’ 등 3권(가로 15㎝, 세로 22㎝)을 본보에 독점 공개했다. 최기남 기자 bluesky@gwangnam.co.kr
일제가 발행한 교과서를 통해 식민지 교육에 앞장서고, 한국사를 왜곡·날조한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가 공개됐다.

27일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이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식민지역사박물관 명예관장인 심정섭씨(82·광주 북구)는 1924년 일본 문부성(교육부)에서 발행한 ‘고등소학 국사’ 상·하권과 1938년 동경 개성관에서 발행한 문부성 검정제 ‘실업종설 황국사’ 등 3권(가로 15㎝, 세로 22㎝)을 공개했다.

일제는 한일합방을 강제로 체결하고 조선총독부 설치와 동시에 ‘무단정치’를 행할 때 ‘일시동인’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한민족을 일본화하려는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3·1운동 이후 ‘문화정치’로 선회, ‘동화’를 내세우고 부르짖은 것이 ‘황국신민화’, ‘내선일체’였다.

이때 일제는 학교를 통해 조선인을 ‘우민’에서 ‘황민’으로 개조하는 교육에 앞장섰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일제의 ‘고등소학 국사’와 ‘실업종설 황국사’이다.

실제 고등소학 국사 상권의 ‘제5장 조선반도의 복속과 문물의 전래’를 보면 ‘조선반도 북부에 고구려, 남부에 신라, 백제, 임나(가야) 등 나라가 있었는데 임나는 신라와 백제보다 작은 나라다’면서 ‘신라와 분쟁이 심해 B.C 35년 숭신천황에게 구원을 청하자 장군 염신진언을 보내 신라를 진압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고 기술했다.

또 ‘서기 200년에 진구(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했고, 서기 285년 백제의 박사 왕인이 사신으로 와서 ‘논어’와 ‘천자문’을 천황에게 바쳐 한학이 처음으로 일본으로 전해졌다’면서 ‘그후 고구려 사신이 와서 서적을 바쳤으나 언사가 무례해 책망하고 사양했다’고 적어놨다.

황국사도 같은 내용이다. 백제 박사 왕인이 일본에 귀하하고, 그의 자손이 ‘문씨’라는 성을 갖고 대대로 조정의 관리로 등용됐다는 내용까지 담겨있다.

해당 서적 모두 임진왜란에 대해서도 왜곡했다. 도요도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조선 출병은 ‘침략이 아니라 명나라와의 수교를 맺기 위해 길을 빌리는 것인데 조선왕이 불허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고 해놨다.

여기에 ‘대륙 진출에 실패했으나 국민의 해외 웅비의 기풍을 양성했으며, 조선으로부터 인쇄와 도자기 기술이 들어와 문화민족이 됐다’고 자랑하기에 급급했다.

일제는 식민 통치와 침략도 미화시켰다.

1876년 일본 군함이 강화도 부근에서 조선군의 폭격을 받았으나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조선에 사신을 보내 강화도조약을 맺고, 부산 등을 개항했다고 정의했다.

또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 모두 청나라의 속국에서 벗어나려는 조선의 독립당을 사대당에 의해 저지되는 상황에서 일어났다고 기술했다. 조선왕조를 위해 청일·러일전쟁을 통해 조선을 독립국으로 만들었다고 호언장담했다.

아울러 전쟁 승리로 조선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개칭하고 조선 제26대 국왕이었던 ‘이희(고종)’가 대한제국 초대황제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동양평화를 꺼리는 서구 열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을사조약을 맺고 통감부를 설치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통감으로 임명했으며, 이에 대한제국 황제가 황태자 이척(순종)에게 양위하고 아울러 황태자 이은(영친왕)을 일본의 동경으로 유학보냈다고 기재했다.

조선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민심이 흉흉하자 한일합방을 희망하는 연서가 쇄도했고, 조선의 행복과 동양평화를 위해 한일합방을 했고, 조선총독부가 설치했다고 강조했다.

양국의 협의로 이뤄진 한일한방으로 조선을 문명의 혜택을 받게 했고, 아울러 동양평화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고 기술했다.

심정섭 명예과장은 “소학국사와 황국사에 적시된 임나일본부설이나 진구황후의 신라정벌은 허구이다”면서 “일제의 역사 날조는 한국에 대한 우월감을 과시한 작태였다”고 비판했다.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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