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 참고 썼다…천천히 읽으면 울림 커질 것"
[광주작가] 김병호 시인
7년 반만에 네번째 시집 출간…고향 독자와 소통
대작 보다 소작 위주 창작 다듬고 다듬는 스타일
"향후 창작 전개 몰라…앞으로의 시 궁금" 밝혀
7년 반만에 네번째 시집 출간…고향 독자와 소통
대작 보다 소작 위주 창작 다듬고 다듬는 스타일
"향후 창작 전개 몰라…앞으로의 시 궁금" 밝혀
입력 : 2025. 02. 06(목) 18:18

김병호 시인은 “울음을 참으면서 썼던 시들이 많았기에 제 시집을 읽고 우는 분들이 있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다. ‘슈게이징’은 천천히 읽으면 좋은 시들이라고 생각한다. 아껴서 읽으면 울림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아무래도 닿지 않을 발자국의 주인처럼
내가 나를 서성이는 날들이 길어졌습니다
무릎이 시리고 눈이 잠깐 그친 오후도 있지만
어떻게든 겨울은 또 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그렇다고 말이나 한번 해볼까 합니다
사람 하나 지우는 일처럼
검은 독 깊은 곳으로 햇살이 가라앉습니다
밤새 서성이던 당신의 입김을 닮았습니다
겨울의 이마가 뜨거워지더니 뿔이 돋습니다
다음 생엔 절대로 눈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당신을 잊은 적이 있어
나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멀리까지 겨울의 뒷모습입니다
----------------‘겨울이 비슷한 이유’ 전문
7년 반만에 최근 네번째 시집을 펴낸 광주 출신 김병호 시인(협성대 문예창작과 교수)의 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네번째 시집 ‘슈게이징’에 수록돼 있다. 겨울에 앞모습과 뒷모습이 있을까마는 뒷모습을 우리네 삶에 비유해 시적 상징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시인의 극도로 절제된 시적 관찰력과 정제된 시적 사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자아성찰은 물론이고 시적 비유, 시의 골격 모두 완벽한 틀을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는 지난 1월 11일 오후 광주비움박물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는 경기도 소재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지만 지역 문인 및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을 게을리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광주와 꾸준하게 소통에 나서고 있는 그는 시 한편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그는 1년 해봐야 고작 10편 남짓의 시 밖에 쓰지 못하는 체질을 가지고 있다. 문단을 보면 어떤 이는 1년에 한권씩 시집을 내는 시인도 있지만 김 시인은 시 한편을 탈고하는데 엄청난 산고를 겪는다. 문예지 원고 청탁을 받고서도 미리 시적 착상이 이뤄지지 않아 마감에 임박해 시동이 걸리는 타입이라서 늘 출판사에 며칠 말미를 더 달라 읍소하곤 한다.
그는 시적 시동이 늦게 걸릴 뿐만 아니라 소작 위주의 창작을 하다보니 한편의 시를 완성하는 게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시인들은 문예지 청탁을 받을 것을 대비해 미리 창작을 해놓는다곤 하지만 김 시인은 이마저도 되지 않는다. 시적 착상이 마감이 임박해서야 시동이 걸리다보니 미리 저축해놓은 시편이 없는 편이라는 설명이다. 청탁을 받으면 바로 창작을 통해 대응을 하는 체질이 아니라 묵히고 묵히다 가장 막바지에 탈고해 원고를 마감시키는 유형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김 시인의 작품들은 대개 마감을 어긴 것 투성이다. 마감이 닥쳐오면 출판사측에 전화해 며칠만 말미를 주면 더 좋은 시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전달해 말미를 얻곤 한다. 그래서 시인의 시를 읽어보면 시적 내공의 깊이가 얼마만큼 깊은가를 직감할 수 있다. 그는 시 한편 쓰고 나면 완전 소진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그는 매번 시는 어렵다고 실토했다.
먼저 그는 시집 유효기간에 대해 언급했다.
“저는 시인의 일요일 기획을 해야 하니까 (잘 아는데) 시집 유효기간이 일반론적으로는 솔직히 한달 정도밖에 안된다고 봅니다. 그래도 한달 정도 밖에 안되는 수명의 시집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시가 막막할 때 이전에 썼던 시를 다시 보며 시적 난관을 풀며 감동을 받곤 하죠.”
‘슈게이징’이라는 시집을 내면서 시집 제목을 생각했고, 긴 제목으로 할까 하다가 명사형 제목을 떠올렸다. 그는 유럽인디음악을 떠올릴 수 있는 제목으로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대외적 메시지보다는 ‘슈게이징’이 자신의 성품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제목인 ‘슈게이징’은 1990년대 초반 영국에서 유래된 얼터너티브 록의 하위 장르로 나른한 보컬 멜로디와 기타 이펙터의 노이즈를 사용한 사운드가 특징이라는 설명을 시집 소개 때 한 바 있다. 그러니 표제만 보면 그가 대개 음악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깊지 않다는 전언이다. 발라드를 좋아 하지만 클래식을 골라 들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시 창작 패턴에 대해 다시 들려줬다. 시에서 고독하고 쓸쓸하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문예지 편집자를 맡고 있어 마감과 밀접한 생활을 하고 있다. 보통 청탁한 분들에게 두달 정도 기간을 드리는데 저는 청탁이 와야 그때서 창작에 들어가는 타입이라는 설명을 잊지 않았다.

“앞서 일부 언급했듯이 저는 벼랑 끝에 내몰려야 창작을 하곤 하죠. 마감일에 양해를 구하고 씁니다. 몰려서 쓰면 시가 나오기는 하더군요. 그러고도 단어 하나 때문에 일주일이 걸리기도 하죠. 남들이 좋아하는 시와 내가 좋아하는 시 등 10권 정도 가져다놓고 보면서 시적 흐름을 잡아간다고 보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돌파구를 찾는다는 이야기죠.”
그는 지난 1월 11일 오후 광주비움박물관에서 성황리 열린 출판기념회 때 가장 애착이 가는 시로 ‘나라서적’을 꼽았다. 나라서적은 삼복서점과 함께 한때 광주를 대표하던 서점이었다. 그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문학 여행을 떠나고 문학에 대해 꿈을 꿀 수 있었던 문학청년 시절의 심장부가 나라서적이었던 셈이다. 그는 시 ‘나라서적’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얇은 표정으로 오목해진 걸음들//…중략…//내 청춘의 심장부가 있다면/충장로 우체국 맞은 편//새로 태어난 행성처럼 반짝이며/금 간 스노우볼처럼 반짝이며/당신이 있던 곳//짧은 서정시처럼 눈이 내리지만/나의 몫은 아니었던,’이라고 노래한다. 현실의 나라서적은 폐점을 했지만 기억 속 나라서적은 시인에게 하나의 거대한 행성처럼 우주를 유영 중이다. 문학청년은 그 행성을 시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호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시인은 사람이 있지만 늘 없어지는 것 또한 사람이라는 자각과 함께 겨울에만 있는 유무형적 실재에 마음이 많이 간다는 설명을 빠뜨리지 않았다.

더욱이 이번 그의 시집은 보통의 시집들이 다 가지고 있는 시 해설이 빠져 있다. 시집 해설을 안넣은 이유를 물었다. 그는 어떤 짜여진 여론이나 고정된 평론가의 시각을 탈피하자는 것 때문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아울러 울음을 참으면서 쓴 시들이 많다는 점을 덧붙였다.
“첫째 시집부터 셋째 시집까지는 시 해설을 넣었습니다. 유명한 평론가의 말을 빌어 내 시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고 싶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짜여진 이론이나 평론가의 시선에 맞춰서 읽혀지기를 바라지 않아서죠. 독자들이 맨땅에 헤딩하듯 읽어주기를 바란 것이죠. 또 제가 울음을 참으면서 썼던 시들이 많았기에 제 시집을 읽고 우는 분들이 있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습니다. ‘슈게이징’은 천천히 읽으면 좋은 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껴서 읽으면 울림이 커질 겁니다. 감정의 밑바닥까지 가보시기를 바랐죠.”
마지막으로 ‘서정이 사라진 시대’ 어떤 사람들에게 시를 들려주고 싶냐는 질문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딱 한번 점집을 가봤는데 저는 노년운이 참 좋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 노년의 시기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지는 않았어요. 이후의 제 시가 어떻게 전개될 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슈게이징’에는 지독한 연애감정이 투영돼 있어요. 제가 이렇게 또는 저렇게 가겠다고 해서 길이 만들어지지는 않잖아요. 저도 저의 앞으로의 시가 궁금하기는 합니다.”
내가 나를 서성이는 날들이 길어졌습니다
무릎이 시리고 눈이 잠깐 그친 오후도 있지만
어떻게든 겨울은 또 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그렇다고 말이나 한번 해볼까 합니다
사람 하나 지우는 일처럼
검은 독 깊은 곳으로 햇살이 가라앉습니다
밤새 서성이던 당신의 입김을 닮았습니다
겨울의 이마가 뜨거워지더니 뿔이 돋습니다
다음 생엔 절대로 눈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당신을 잊은 적이 있어
나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멀리까지 겨울의 뒷모습입니다
----------------‘겨울이 비슷한 이유’ 전문
7년 반만에 최근 네번째 시집을 펴낸 광주 출신 김병호 시인(협성대 문예창작과 교수)의 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네번째 시집 ‘슈게이징’에 수록돼 있다. 겨울에 앞모습과 뒷모습이 있을까마는 뒷모습을 우리네 삶에 비유해 시적 상징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시인의 극도로 절제된 시적 관찰력과 정제된 시적 사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자아성찰은 물론이고 시적 비유, 시의 골격 모두 완벽한 틀을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는 지난 1월 11일 오후 광주비움박물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는 경기도 소재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지만 지역 문인 및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을 게을리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광주와 꾸준하게 소통에 나서고 있는 그는 시 한편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그는 1년 해봐야 고작 10편 남짓의 시 밖에 쓰지 못하는 체질을 가지고 있다. 문단을 보면 어떤 이는 1년에 한권씩 시집을 내는 시인도 있지만 김 시인은 시 한편을 탈고하는데 엄청난 산고를 겪는다. 문예지 원고 청탁을 받고서도 미리 시적 착상이 이뤄지지 않아 마감에 임박해 시동이 걸리는 타입이라서 늘 출판사에 며칠 말미를 더 달라 읍소하곤 한다.
그는 시적 시동이 늦게 걸릴 뿐만 아니라 소작 위주의 창작을 하다보니 한편의 시를 완성하는 게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시인들은 문예지 청탁을 받을 것을 대비해 미리 창작을 해놓는다곤 하지만 김 시인은 이마저도 되지 않는다. 시적 착상이 마감이 임박해서야 시동이 걸리다보니 미리 저축해놓은 시편이 없는 편이라는 설명이다. 청탁을 받으면 바로 창작을 통해 대응을 하는 체질이 아니라 묵히고 묵히다 가장 막바지에 탈고해 원고를 마감시키는 유형이라는 이야기다.

지난 1월 11일 광주비움박물관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문인 및 독자들을 만난 김병호 협성대 교수. 왼쪽은 사회를 맡은 백애송 시인 겸 평론가.

북콘서트 모습.
먼저 그는 시집 유효기간에 대해 언급했다.
“저는 시인의 일요일 기획을 해야 하니까 (잘 아는데) 시집 유효기간이 일반론적으로는 솔직히 한달 정도밖에 안된다고 봅니다. 그래도 한달 정도 밖에 안되는 수명의 시집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시가 막막할 때 이전에 썼던 시를 다시 보며 시적 난관을 풀며 감동을 받곤 하죠.”
‘슈게이징’이라는 시집을 내면서 시집 제목을 생각했고, 긴 제목으로 할까 하다가 명사형 제목을 떠올렸다. 그는 유럽인디음악을 떠올릴 수 있는 제목으로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대외적 메시지보다는 ‘슈게이징’이 자신의 성품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제목인 ‘슈게이징’은 1990년대 초반 영국에서 유래된 얼터너티브 록의 하위 장르로 나른한 보컬 멜로디와 기타 이펙터의 노이즈를 사용한 사운드가 특징이라는 설명을 시집 소개 때 한 바 있다. 그러니 표제만 보면 그가 대개 음악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깊지 않다는 전언이다. 발라드를 좋아 하지만 클래식을 골라 들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시 창작 패턴에 대해 다시 들려줬다. 시에서 고독하고 쓸쓸하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문예지 편집자를 맡고 있어 마감과 밀접한 생활을 하고 있다. 보통 청탁한 분들에게 두달 정도 기간을 드리는데 저는 청탁이 와야 그때서 창작에 들어가는 타입이라는 설명을 잊지 않았다.

제4시집 ‘슈게이징’ 표지

제3시집 ‘백핸드 발리’ 표지
그는 지난 1월 11일 오후 광주비움박물관에서 성황리 열린 출판기념회 때 가장 애착이 가는 시로 ‘나라서적’을 꼽았다. 나라서적은 삼복서점과 함께 한때 광주를 대표하던 서점이었다. 그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문학 여행을 떠나고 문학에 대해 꿈을 꿀 수 있었던 문학청년 시절의 심장부가 나라서적이었던 셈이다. 그는 시 ‘나라서적’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얇은 표정으로 오목해진 걸음들//…중략…//내 청춘의 심장부가 있다면/충장로 우체국 맞은 편//새로 태어난 행성처럼 반짝이며/금 간 스노우볼처럼 반짝이며/당신이 있던 곳//짧은 서정시처럼 눈이 내리지만/나의 몫은 아니었던,’이라고 노래한다. 현실의 나라서적은 폐점을 했지만 기억 속 나라서적은 시인에게 하나의 거대한 행성처럼 우주를 유영 중이다. 문학청년은 그 행성을 시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호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시인은 사람이 있지만 늘 없어지는 것 또한 사람이라는 자각과 함께 겨울에만 있는 유무형적 실재에 마음이 많이 간다는 설명을 빠뜨리지 않았다.

제2시집 ‘밤새 이상을 읽다’ 표지

제1시집 ‘달 안을 걷다’ 표지
“첫째 시집부터 셋째 시집까지는 시 해설을 넣었습니다. 유명한 평론가의 말을 빌어 내 시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고 싶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짜여진 이론이나 평론가의 시선에 맞춰서 읽혀지기를 바라지 않아서죠. 독자들이 맨땅에 헤딩하듯 읽어주기를 바란 것이죠. 또 제가 울음을 참으면서 썼던 시들이 많았기에 제 시집을 읽고 우는 분들이 있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습니다. ‘슈게이징’은 천천히 읽으면 좋은 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껴서 읽으면 울림이 커질 겁니다. 감정의 밑바닥까지 가보시기를 바랐죠.”
마지막으로 ‘서정이 사라진 시대’ 어떤 사람들에게 시를 들려주고 싶냐는 질문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딱 한번 점집을 가봤는데 저는 노년운이 참 좋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 노년의 시기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지는 않았어요. 이후의 제 시가 어떻게 전개될 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슈게이징’에는 지독한 연애감정이 투영돼 있어요. 제가 이렇게 또는 저렇게 가겠다고 해서 길이 만들어지지는 않잖아요. 저도 저의 앞으로의 시가 궁금하기는 합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