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과 망명 서사…전지구촌 문제 조망 노력
■미술로의 여행 여기는 베니스비엔날레
첫 라틴아메리카 출신 감독 기획…전세계 작가들 이목 집중
국내는 아르헨서 활동 구순 앞둔 노 조각가 김윤신 등 참여
"특정문제 담론은 표출"…대형 미술관서 작품 펼쳐놓은 듯
입력 : 2024. 04. 24(수) 18:35
아르세날레 전시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전세계에서 온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진열된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베니스(Venice)라는 곳에서 열린다. 광주비엔날레가 광주라는 도시에서 열리듯 말이다. 그런데 베니스비엔날레는 베니스 본섬에서 열리는 것을 모르는 대중들이 많다. 이탈리아 베니스(이탈리아명 베네치아)라는 내륙 도시에서 열리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118개 섬으로 이뤄진 베니스 본섬은 13만2000여㎥ 크기에 인구 25여만명 규모로 추정되는 섬이지만 1300만 관광객이 찾는 핫플의 중심지다. 이곳에서 세계의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린다. 수상택시나 수상버스가 대다수 교통 운송수단이고, 육로도로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베니스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현지에 머무르는 동안 차도가 안보였던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인다. 섬에 머무르는 동안 차량 클락션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다. 그래서 베니스를 곤돌라의 도시로 부른다. 광주비엔날레는 인구 150여만명의 도시에서 열리면서도 베니스를 압도하지 못한다.

아라바니 아트 프로젝트(Aravani Art Project)의 병풍처럼 둘러쳐진 작품 앞을 오가는 관람객들.
아르세날레 전시관에서 본전시를 감상한 관람객들이 또 다른 전시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통로를 지나 이동하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역시 상당기간 현지 주민들로부터 온갖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비엔날레만 열리면 세계 미술인과 관람객 및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섬이 인파로 넘쳐나 쓰레기, 소음 등 각종 환경적 유무형 문제가 발생돼 수입을 보장받는 주민 외에는 비엔날레를 마냥 환영할 수 없어서다. 광주비엔날레 또한 올해 창설 30주년을 맞았지만 내부 비판은 여전히 거칠다. 그러나 해외에만 나오면 광주비엔날레는 그들에게 먹히는 명사다. 광주비엔날레는 여전히 베니스비엔날레로부터 배워야 하는 입장이다. 창설 30주년을 맞은 만큼 모멘텀을 만들어야 하는 광주비엔날레가 베니스비엔날레를 반면교사 삼아야 되는 요인들은 많다. 수많은 관료들과 미술인들이 베니스비엔날레를 배우겠다며 보고 왔지만 베니스의 명성에는 한참 멀어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이번 베니스 방문에서 여러 차례 든 단상들이다. 광주비엔날레 창설 30주년 기념 특별전인 ‘마당-우리가 되는 곳’ 전시를 관람하고 국가관에 이어 마지막 순서로 본전시를 관람했다. 아르세날레 전시관에서 진행 중인 본전시는 국가관 24곳의 전시와 함께 메인 전시로 통한다. 마당 전시장인 지아르디노(자르디노) 공원 건너 일 지아르디노 비안코 아트 스페이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방문 당일 수많은 관람객들을 붙잡은 퍼포먼스 모습.
관람객들은 저마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작품을 감상하는가 하면,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며 작품을 둘러봤다.
본전시는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총감독이 기획했다. 역사상 첫 라틴아메리카 출신 감독이다. 브라질 상파울로 비엔날레와 푸에르토리코 산 후안 트리엔날레 예술감독을 역임한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총감독은 현재 상파울로 미술관 관장을 맡고 있다. 남미 예술에 해박한 인물로 전시장을 돌다보면 마치 현대미술의 실험의 장이 되는 비엔날레 느낌보다는 대형 전시장에서 와서 전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 이유다.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 모두가 이방인)라는 타이틀로 88개국 330여명(팀)의 작가가 참여, 출품했다. 국내에서는 경북 칠곡 출신의 이쾌대(1913∼1965)를 비롯해 충북 청주 출신의 장우성(1912∼2005), 서울 출생으로 LA에서 작업을 해온 이강승(46·복합미술), 서울 출생으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30년 넘게 작업을 펼쳐온 김윤신(89·조각) 등이다. 김윤신 작가는 길지는 않았지만 이동하는 중에 짧게나마 현지에서 대면할 수 있었다.

광주·전남의 미술 외연이 더 넓어져야 한다는 숙제가 남은 자리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본전시장은 발 딛을 틈 없이 많은 관람객들이 넘쳐나 ‘2024 베니스비엔날레’에 쏠린 관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전시장은 전지구촌 문제를 상기시킨다. 주제에 맞춰 이민자와 망명자라는 서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민자와 망명자 모두 이민과 망명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너머 기후위기나 식량문제, 또 국가간 갈등으로 인한 전쟁 등이 이민과 망명을 촉발하는 요인인 만큼 당장 눈앞에 놓인 재앙들을 총체적으로 조망해 아트라는 영역 안에서 표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이를테면 전시기간 동안 두바이가 폭우로 아비규환의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베니스가 해수면이 낮은 섬이라는 점에서 기후 위기는 당장 베니스의 현실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시가 적극적으로 이러한 문제적 상황들을 풀어냈더라면 지금보다 설득력이 높은 큐레이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이런 문제들을 조금씩 건드리고 지나가는 듯한 인상은 있었지만 그 가운데를 관통하는 핵심 담론은 보이지 않았고, 다양한 작품들을 펼쳐놓은 듯한 형국으로 다가왔다. 거대하게 큰 전시장을 돌며 작품 모두를 상세하게 관람하며 이해한다는 것은 짧은 일정상 말이 안되는 소리이지만 전시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가 전달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7>전시를 관람한 미술계 한 전문가는 이번 본전시에 대해 “특정문제들에 대한 담론은 표출하고 있지만 모든 담론을 견인해가는 대표적 이즘은 엿보이지 않는 것 같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라는 것을 추출해내기가 조금 어렵고, 대형 미술관에서 작품을 펼쳐놓은 듯한 인상이 든다”면서 “남미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수 있는 계기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베니스=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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