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적십자사에서 사전선거 하고 드는 소회
고선주 문화체육부장
입력 : 2024. 04. 07(일) 19:39
고선주 문화체육부장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서막이 올랐다. 4월10일이 본선거지만 이미 재외국민투표에 이어 사전투표가 5일과 6일 이틀동안 진행됐다. 본 투표일에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에 대비해 6일 토요일 오후 딱히 할일이 없어 졸음이 쏟아졌지만 가족 손에 이끌려 투표장으로 향했다. 다른 선거에 비해 올해는 큰 아이가 첫 선거를 하는 등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아이 손에 이끌려 아파트 인도를 따라 차량 대신 벚꽃도 피어 있으니 꽃 구경하며 걸어가자는 제안이었다. 실제 자고 일어났더니 금방 피었던 벚꽃이 제법 많이 떨어졌다. 며칠 지나면 다 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오락 가락하던 게 엊그제였는데 완연한 봄날씨에 기분마저 상쾌해진다. 어찌 어찌 해서 대학과 재수 사이에 걸쳐서 적응하느라 애쓰는 아이가 매주 금요일이면 집에 왔다가 일요일이면 다시 가지만 올 때마다 짠하다는 느낌이 안 들 때가 없다.

그런데 이번주는 4·10 총선 사전투표가 있어 아이와 대화를 할 겸 해서 나선 길이었다. 쉬고 싶고,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 집에 온 아이가 첫 선거 경험을 앞둬서 그런지 다른 날에 비해 조금 빨리 빨리 움직인다. 대충 머리를 감고 덜 말랐는데 가자고 한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광주시 북구 임동이다. 임동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집 근처 선거장은 늘 매번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 광주봉사관이다. 장소가 선거 장소로 부쩍 마음에 들었다. 동사무소(주민센터)였으면 별 감흥없이 선거를 했겠지만 적십자사여서 각별하게 다가왔다. 유난히 올해 적십자사는 선거가 갖는 모든 문맥을 갖추고 있는 듯하다. 정치 역시 새로운 피(국민의 일꾼)를 뽑는 일이고,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인근이라 대구에서 온 삼성라이온즈 원정팬까지 사전투표장을 찾아 한표를 행사하고 있었으니 동서갈등을 생각해볼 수 있었고, 독일에 사는 집안의 형님 가족까지 이번에 광주를 찾아 재외국민 투표까지 논할 수 있었던 셈이다.

대한적십자사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으로 사회봉사, 구호, 혈액사업, 국제협력, 남북교류, 의료, 원폭피해자 복지, 채용정보 안내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그중 대표적으로 혈액사업을 빼놓을 수 없다. 일상에서 헌혈을 많이 들어봤고, 실제 헌혈을 해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심 기관 중 한 곳이 적십자사다. 적십자사 하면 헌혈이 떠오르고, 아픈 많은 사람들에 수혈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것이니 내가 던지는 한표 역시 새로운 정치 출현을 위한 새로운 수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적십자사에 도착하니 실제 프로야구 경기가 있어 기아 타이거즈 팬과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제법 많이 사전투표장을 찾아왔다. 광주든, 대구든 당연한 주권인 한 표 행사를 포기하지 않으면 주인 노릇을 제대로 행사한 것이 아니냐 하는 소신이다. 이들 역시 새로운 세상에의 바람은 똑같을 것이다. 헌혈을 하는 기관에서 새로운 피를 뽑는다는 생각에 투표장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하다. 아이에게 ‘저기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누구 찍었을까’ 물었더니 늘 찍었던 당 찍었거나 이번에는 아무리 보수라고 해도 젊은 사람들이니 정치 이대로는 안되니 바꾸는 데 중심을 두고 선거를 했지 않았을까 등 온갖 상상의 말이 오갔지만 딱히 결론은 없었다. 다만 그들 역시 소신대로 한표 행사했을 터다.

막상 선거장 안 기표소에 들어가서 교차 투표를 했는데 비례 정당에서는 20년 넘게 지지해왔던 정당 대신 새로운 정당을 선택했다. 비례대표 용지가 너무 길어 혼란스러원 던 것은 사실이다. 정치가 해도 해도 너무하고, 지지했던 정당 역시 정체성마저 잃어버리고 갈짓자 행보를 보여왔다는 판단을 해왔다. 피가 문제가 생기면 새로운 피를 수혈해야 하듯 정치도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그래서 새로운 피 수혈을 선택하는 쪽으로 기표해 선거를 끝내고 선거소 앞에서 인증샷 하나 찍는 것으로 선거를 마무리지었다. 선거나 끝난 후 집에서 잠시 쉬었다 저녁에는 독일에서 온 집안 형님 가족과 식사와 커피 한잔을 했다. 그들은 재외국민으로 이미 투표를 한 모양이다. 올해 재외국민투표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유난히 많은 의미를 개인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 정당이 싫어서 비례 대표만 찍겠다는 반응까지 나와 기존 정당들의 각성이 필요해 보였다. 정치가 매일 싸움박질한다고, 밥값 못한다고, 무능력하다고 한표를 포기하면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귀찮더라도 10일 본선거를 하고 정치를 비판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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