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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토대 ‘신뢰할 수 있는 글’ 쓸 것
[남도예술인] 강나루 계간 ‘시와사람’ 편집장
2020년 시·수필·동시 한 번에 등단 편집장 4년째
일상 속 영감 찾기 통해 ‘글감 만들기’ 노력 지속
"이름처럼 ‘사람’ 중심…글 속에 새로운 상상력 구현"

2024. 04.04. 18:27:03

강경호·강나루 부자가 펴낸 여섯 권의 작품집.

강경호 대표와 강나루 편집장.
학교 앞 문구점, 막 초등학교 1학년이 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쇼윈도 너머로 보이는 변신 필통이었다. 반으로 접히는, 게임기나 다름없는 변신 필통. 그게 너무 갖고 싶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널려있는 원고지를 한 장 집어 들었다. 부모님께 사달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말이 아닌 글로 써내려갔다. 입으로 뱉으면 사라지는 말보다 글은 더 진지한 것 같았다. 구구절절. 변신 필통만 생긴다면 두 동생들을 잘 보겠다고, 공부도, 방 정리도 열심히 하겠다고 썼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간절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쓴 덕분인지, 그는 그렇게 갖고 싶었던 변신 필통을 손에 받아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그 글이 그가 기억하는, 그가 자의적으로 쓴 첫 글이다. 글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게 되니 글쓰기에 재미가 붙었다. 계간 ‘시와사람’과 출판사 시와사람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강나루씨의 이야기다.

그는 어렵지 않게 글쓰기에 입문하게 된 게 어렸을 적부터 접한 집안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은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27년째 시와사람의 발행인으로 문예지를 발간, 지역 문학을 일궈온 강경호 대표가 그의 부친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모습, 책을 읽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는 꾸준히 읽고 쓰기를 하다가 나간 백일장에서 종종 상을 탔다고 한다. 재미를 붙여 백일장이란 백일장은 다 찾아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교내 시 쓰기 동아리 갯벌글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부원들을 몰고 백일장에 나가기도 했다.

“학창시절, 한 선생님께서 저를 보면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 앞 부분을 읊곤 하셨죠. 아마 제 이름을 부를 때 나그네가 연상됐나봐요. 제가 여러 백일장에서 상을 자주 받아오니까 교무실을 자주 들락였어요. 그쯤부터는 그러지 않으셨죠. 이름에서 떠오르는 시어가 아니라 강나루라는 개인을 직시해주시는 것 같아 살짝 기뻤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어교육과에 진학, 지난 2020년 어렵다는 문예지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에세이스트’ 수필, ‘아동문학세상’ 동시, ‘시와사람’ 시 부문 등의 신인상에 올라 문단에 나왔다. 이같은 성과는 특별한 작법이 아닌, 평소 쌓아온 글쓰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강나루 편집장은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상상력이 바탕이 된 신뢰를 돌려주고 싶다. ‘시와사람’이 새로운 상상력 구현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판기념회에서 강나루 편집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고3 때 신문사 신춘문예 최종심까지 올라갔었어요. 그 뒤로 지원을 안했다가 2020년에 한 거죠. 한 편의 글을 수십 번씩 교정하면서 다시 읽고 고치는 방법을 반복하는데, 그게 한 번에 세 문학 장르에서 등단하게 된 밑거름이 됐다는 생각입니다. 전 활자중독 같아요. 평소에 글을 많이 읽고, 그렇게 무한히 읽다 마음에 드는 표현, 불편한 주장, 떠오르는 직관을 휴대폰에 짧게 기록해두죠. 나중에 그것을 토대로 글을 쓰면서 정리하구요.”

기본적인 영감은 주변을 돌아보면서 얻는다. 직관적으로 한 퀴에 써내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남광주시장과 광주천변, 집 근처 등을 산책하며 눈에 보이는 수많은 광경을 머릿 속에서 떼었다, 붙였다를 하면서 글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세 장르간 차이에 대해서는 동시나 시를 최대한 길게 쓰고 군더더기를 쳐내 압축하는 방식이어서 수필을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쓴다고 한다.

이처럼 세 장르에서 등단한 그는 같은 해 시와사람 편집장을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와사람은 이름처럼 ‘사람’이 중심이다.

“시와사람은 1996년 5월 18일에 창간했어요. 시대에 발맞춰 광주의 문학도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울에 살던 강경호 대표님이 광주로 내려와 창간했습니다. ‘휴머니즘 구현’을 위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모토로 하는 문예지라고 할 수 있죠.”

‘시와사람’은 중앙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문단에서 소외된 지역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규명하기 위해 지역 작가들의 작품집을 출간, 전국에 소개해왔다. 이와 함께 중국 동포들에게 우리말의 중요성을 전파하기 위한 문학작품집과 ‘중국조선족 아동문학대계’ 5권, ‘중국조선족 아동문학사’ 등 주로 아동문학과 관련된 서적 30여권을 무상으로 출간해오고 있다.

강 편집장은 여러 작품집의 교정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문예지 편집회의에서 의견을 개진하거나 과담회의 녹취를 풀고 독자들이 읽기 좋게 다듬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

지난 2022년에는 부친인 강 대표와 그가 6권으로 이뤄진 작품집을 펴낸 바 있다. 부자가 함께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지역 문학계에 적지 않은 감동을 안겼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같은 길을 걸어가는 아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시와사람시학회 송년의 밤 기념사진.
시와사람 창간 20주년 기념식 모습.
총 6권의 작품집 가운데 강 편집장은 4권의 작품집을 썼다. 석사학위 논문 주제로 강 대표의 시에 나타난 휴머니즘에 관해 연구, 그것을 발전시킨 ‘휴머니즘과 자연의 수사학’(평론집), 등단했을 당시 작품에서 비롯된 ‘감자가 눈을 뜰 때’(시집)와 ‘백화점에 여우가 나타났어요’(동시집), ‘낮은 대문이 내게 건네는 말’(에세이집) 등이다.

그는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대화에서 상호 간 신뢰가 사라져 간다는 것을 느끼죠.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는 논리가 빠진, 피해망상이나 적의만 남을 뿐이에요. 저는 글을 통해 다시 사람들에게 상상력이 바탕이 된 신뢰를 돌려주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수도권 대학의 박사과정에 진학, 세 번째 학기를 다니는 중이다. 석사 논문을 쓰면서 부딪친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학문적 토대를 단단히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껴 내린 결정이었다. 시와 소설, 에세이 등을 쓰면서 종종 한 쪽으로 치우치는 자신을 발견, 전문가의 길을 밟으며 이같은 부족함을 채워간다는 복안이다. 또 ‘시와사람’이 잘 운영되도록 하는데 손을 보태는 한편, 동시집과 시집 출간을 준비하는 등 젊은 문인으로서 활발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줬다.

“문학 창작도 중요하지만, ‘시와사람’을 이끌어가기 위해 학문적 토대를 단단히 다질 필요가 있죠. 당분간 광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박사과정을 마칠 계획입니다. 지난해 말부터 강아지를 키우게 됐는데, 일상을 함께하면서 짬짬이 글을 쓰고 있어서 동시집과 시집 등 작품집을 낼까 하고 있어요. 아버지께서 30여 년 가까이 잘 이끌어오신 ‘시와사람’이 새로운 상상력 구현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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