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세상 읽기]여론조사 홍수시대
김상훈 뉴미디어문화 본부장
입력 : 2024. 02. 18(일) 17:49
#1
여론조사(輿論調査, Public Opinion Poll)는 어느 사회집단의 구성원에 대해 여론의 동향을 알아보려는 목적으로 실시하는 통계적 사회조사, 또는 그 조사 기법을 말한다. 무작위로 추출된 일정수의 사람들(표본)에게 설문을 통해 응답을 수집하는 통계이론에 근거한 표본 조사를 뜻한다. 당연히 이 조사에는 표본 오차가 뒤따른다.

로마시대때도 2~3년마다 시민들의 가치관을 조사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지만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인 방식의 여론조사는 1824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 최초로 실시됐다.

당시 ‘해리스버그 펜실베니언’이라는 신문은 4명의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현장 여론을 청취해 그 결과를 신문에 처음 발표했다. 하지만 그 조사에서 1위였던 앤듀류 잭슨 후보는 대통령선거에서 존 퀸시 애덤스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기록으로 남겨진 최초의 여론조사가 빗나간 셈이다.

그 후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라는 잡지는 1916년 미 대선에서 여론조사를 실시, 중앙 정계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우드로 윌슨 프린스턴 대학 총장의 당선을 정확히 예측해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36년 대통령 선거때 전화·자동차 보유자 230만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여론조사를 벌여 이를 토대로 공화당 앨프 랜든 후보가 압승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대선결과는 민주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후보의 압승이었다. 당시 전화ㆍ자동차를 보유한 부유층에 공화당 지지자가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벌인 여론조사끝에 망신을 당한 그 잡지는 결국 폐간하고 말았다.

현재 세계적인 여론조사 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는 갤럽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때다. 당시 갤럽은 인구학적 분포를 고려한 조사로 1500명의 유권자를 면접조사하고도 루스벨트 대통령의 당선을 에측했다.

#2

우리나라의 경우도 조선시대 세종때 전대미문의 여론조사기 실시됐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1430년 당시 조세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 전세(田稅)를 전답의 등급과 풍흉의 정도에 따라 공평하게 과세할 수 있는 법을 만들고, 이에 대한 백성의 가부 여론을 조사해 올릴 것을 신하들에게 명했다고 한다. 이는 비리와 차별시비가 끊이지 않는 당시의 과세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5개월 동안 실시된 여론조사에 17만 2806명의 백성이 참여했다고 한다. 1432년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당시 조선의 인구가 69만 2477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전 인구의 4분의1가량이 조사에 참여한 셈이다.찬성이 57%로 우세했지만 세종은 바로 시행하지 않고 반대 의견을 감안해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게 했다.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어명이 내려진 지 14년 만인 1444년에 마침내 새로운 공법이 제정돼 시행됐다고 한다.

현대적 의미의 여론조사는 1노3김(노태우,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 출마했던 1987년 직선제로 치러진 13대 대통령선거 때부터 본격 도입됐다. 그 당시만해도 조사기법 등이 발달되지 않아 예측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과학의 이름을 빌어 여론조사결과가 공표됐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당선 예측이 적중했다.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되고 1995년 기초·광역단체장까지 직선제로 선출하면서 여론조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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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는 선거때마다 조사수요가 급증하면서 1980년대 10여 개에 불과했던 여론조사 기관이 지난 2022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록된 업체만 91개일 정도로 크게 늘었다.

선거철만 되면 부동산의 ‘떳다방’처럼 이보다 많은 수백개의 여론조사 기관이 생겼다가 선거가 끝나면 자취를 감추는 현상까지 나타날 정도다.

여기에 비대면이 일상화된 최근에는 각 정당이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을 선호하면서 선거여론조사가 어느때보다 중요한 정치수단이 됐다. 가히 ‘여론조사 정치의 시대’라 불릴 정도다.

문제는 가면 갈수록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요 선거 때마다 조사치와 실제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것도 이유중의 하나이지만 난립하는 여론조사기관들의 ‘후보 맞춤형 여론조사’가 횡행하면서 조사결과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를 앞둔 후보들이 시도때도 없이 무분별한한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응답을 꺼리는 유권자들이 크게 늘어나는 등 민폐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각 당이 여론조사로 치르는 후보 경선은 유권자들의 민심이 반영되지 못한 후보자 측근과 일부 당원들만의 잔치인 ‘그들만의 리그’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4·10 총선을 앞두고 민폐가 되어 가고 있는 ‘선거 여론조사’, 개선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상훈 기자 goart001@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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