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아끼는 마음 "진심 담은 소리로 소통"
[남도예술인] 소프라노 정수희 광주예술가곡연구회 대표
중3 때 입문, 광주예고·전남대 거쳐 美 유학
광주·전남 성악가들과 2021년 창단 2년째 운영
"연가곡에 희로애락 담겨"…오페라 등 무대도
입력 : 2023. 10. 12(목) 18:22
소프라노 정수희 광주예술가곡연구회 대표는 “가곡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한다. 사람들 곁에 늘 클래식이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광주효성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무대에 오른 모습.
시에 곡을 붙인 ‘가곡’. 클래식에서의 예술가곡은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에 음을 얹어 완성하면 성악가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다. 오페라의 아리아는 한 부분이지만 가곡은 그 자체로 독립된 하나의 곡이라는 특징이 있다. 국내에서는 3·1운동 직후 한민족의 슬픔을 노래한 ‘봉숭아’, 남북 분단으로 가지 못하는 금강산을 소재로 한 ‘그리운 금강산’ 등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장르다. 이처럼 가곡에는 시대정신은 물론이고, 국민의 정서와 민족성이 담겨있다. 오랜 세월 우리 곁을 지키며 함께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곡이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경우가 드문 실정이다.

이 가운데 몇년 사이 광주·전남 지역을 거점으로 가곡을 주요 레퍼토리로 삼는 것에서 나아가 가곡만을 연구, 선보이는 예술단체가 늘고 있다. 이중 한 곳이 광주예술가곡연구회다. 광주예술가곡연구회의 중심에는 가곡을 아끼는 마음을 동력 삼아 무대에 오르는 소프라노 정수희 대표가 있다.

그는 광주예술가곡연구회에 대해 “광주·전남지역에서 활동 중인 역량 있는 성악가들이 모여 세계 여러 예술가곡을 발굴, 연구하고 무대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가곡을 좋아하는 마음에 크고 작은 현장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광주예술가곡연구회를 지난 2021년 창단했다는 설명이다. 4명이 시작해 현재는 7명이 활동 중이다.

“대중은 클래식을 어렵다고 느껴요. 하지만 예술가곡은 시민들이 가까이 느낄 수 있죠. 어렵지 않게 음악회를 가서 볼 수 있는, 광주예술가곡연구회가 선보이는 음악회는 그런 연주회가 됐으면 합니다.”

최근에는 무대를 보러와준 관객들이 손을 꼭 잡고 ‘광주예술가곡연구회에 꼭 들어가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날의 연주를 보고, ‘한국가곡이 이렇게 아름답구나’라고 관객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도록 기여했다는 것과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한 음악의 힘을 새삼 느꼈기 때문일 터다.

이처럼 그가 가곡을 전문적으로 선보이는 단체를 결성한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가곡과 함께했던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던 때,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어나가는 과정 등이 그렇다. 본격적으로 가곡을 애정하게 된 것은 희로애락이 가곡 안에 모두 있다는 걸 느끼면서다.

오페라 ‘피노키오’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는 소프라노 정수희씨.
오페라 ‘춘향전’ 커튼콜.
그는 어렸을 적부터 노래를 좋아했다고 한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중학교 3학년 음악 수업 시간에 그가 노래부르는 걸 들은 선생님으로부터 노래를 해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하게 됐다.

“아직도 음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그때가 생각나요. 노래를 부르면서 스스로 ‘내게 이런 소리가!’ 했거든요. 제법 소리를 냈죠. 그때부터 음악선생님께서 레슨을 해주셨어요. 제겐 잊을 수 없는 은인이죠. 음악 시간에 부른 게 이태리 가곡 ‘오델미오 돌체아도르’(오, 나의 달콤한 연인이여)였는데, 제 재능을 발견해준 이 곡으로 예고 입시도 치렀습니다. 특별한 노래죠.”

그렇게 그는 광주예고에 진학, 재학 당시 ‘호남예술제’에서 금상을 받았고, 전남대 예술대학 음악학과에 다니면서는 광주KBS가 주최한 ‘신인음악회’에서 최고상을 거머쥐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음악의 진짜 매력은 대학교 때 깨달아 점점 빠져들었다고 한다. 졸업하자마자 광주시립합창단에 입단해 합창단원으로 무대에서 시민들을 만났다.

합창단을 다니면서 대학원 수업도 병행했다. 그러면서 음악에 대한 궁금증, 그걸 해결하고자 하는 갈증은 더 강해졌다.

“합창을 오래하다 보면 솔로 소리에 대해 감을 많이 잃게 돼요. 소리를 내는 질감이 다르기 때문이죠. 지휘자마다 원하는 소리가 다 다르기 때문에 자기만의 소리 색을 잃게 되는 것 같기도 했어요. 대학원을 다니고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넓게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유학을 결심했죠.”

성악의 본고장은 유럽이기에 막연히 유럽으로 가야겠다 생각해 독일어를 배우던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미국이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친구가 미국 유학 중 잠깐 한국에 나왔고, 그 친구를 졸업 후 딱 한번 만났는데 ‘그래, 그럼 거기로 가볼까’ 했다. 영어가 발목을 잡았지만 꿋꿋하게 노스텍사스주립대에서 성악 연주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유럽은 노래를 많이 부른다는데, 미국은 수업이 너무 많아서 거기에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노래를 덜 한 것 같달까요. 하지만 그런 과정이 어떤 곡을 갖다 놓아도 제 스타일대로 할 수 있는 바탕이 됐죠. 미국 작곡가, 영미가곡에 매력을 느껴서 연구에 매진한 게 박사 논문으로 이어졌어요. 특히 연가곡에 관심이 많아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인 네드 로렘의 작품에 관해 썼습니다.”

5년간의 유학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한 그는 오페라 ‘코지 판 투테’, ‘수녀 안젤리카’, ‘마술피리’, ‘헨젤과 그레텔’, ‘피노키오’ 등에서 열연을 펼쳤다.

여러 대학교에 출강하면서 광주시지적장애인합창단 지휘 제의를 받아 매주 참가자들과 하모니를 선사했다.

오페라 ‘춘향전’ 공연 모습.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커튼콜.
“참 묘하게 합창이 제게 많은 걸 줬습니다. 미국에서 한국 합창지휘자와의 친분으로 귀국하자마자 제의가 들어와 지적장애인합창단을 1년여간 이끌었죠. 정말 음악을 좋아해줘 그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힐링이 됐어요. 한번이라도 안가면 그렇게 아쉬웠죠. 일주일에 한번을 그렇게 꼬박꼬박 만났어요.”

그 사이 독창회를 다수 가졌다. 독창회는 오페라 아리아보다는 연가곡을 위주로 레퍼토리를 구성했다. 가곡만이 가진 매력으로 인해 더 아름답다고 느껴서다. 여성 작곡가들을 조명하는 무대를 펼치기도 했다. 작곡가가 활동하던 당시 빛을 못 본 이들의 주옥같은 곡들을 무대를 통해 만나게 하는 것이다.

“연가곡은 8피스가 다 연결돼 있죠. 곡마다 연결 장치가 있어요. 1번곡에 나왔던 전주가 마지막 8번곡에 후주로 나오기도 하거든요. 조끼리도 연결성이 있죠. 슈만의 ‘여인의 사랑과 생애’의 경우한 여인의 사랑을 그리는데 상대를 처음 본 순간부터 함께 결혼하고 아기를 낳은 기쁨, 죽음까지 삶 전반을 담고 있어요. 순환적인 구조로 마지막 곡이 첫 곡의 주제를 반복하죠.”

그는 앞으로도 국내외 가곡들로 시민들 곁을 찾을 예정이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언어별로 나눈 연가곡을 레퍼토리로 내세운 독창회를 내년 3월 준비 중이다.

이와 함께 클래식 저변 활성화를 위해 여러 무대에 오를 계획이다. 특히 오페라를 중점적으로 올리는 연주단체 ‘본에코’의 창단멤버로 활동 중인 가운데 오는 12월2일 복합문화공간 김냇과에서 ‘살롱 오페라’를 선보인다. 이 자리에서는 ‘오페라는 대작’이라는 공식을 깨고 소규모로 무대를 꾸려 전막을 선보이기 보다는 하이라이트 위주로, 2시간 이상의 작품을 1시간으로 재구성할 생각이다. 관객들이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게 대사는 모두 한글로 준비한다. 공연이 펼쳐지는 곳은 탁 트인 곳이어서 객석과 무대의 단차가 없어 공연을 끝난 뒤 성악가들과 관객들이 자유롭게 교류가 가능하다. 공연 전에는 1층에서 차와 다과도 즐길 수 있다. 비싼 입장료를 지불했지만 무슨 내용인지 몰라 졸린 공연 말고, 관객이 단돈 1만원을 내고도 그 이상의 감동을 받는 무대를 준비한다는 포부다.

이외에도 14일 오후 4시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릴 제71회 광주연우회 정기연주회 ‘창작오페라 배비장전 갈라콘서트’에서 월성이라는 기생으로 분하고, 11월에는 ‘노래하는 미용실’, ‘가을밤의 클래식 산책’ 등의 무대를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가곡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항상 관객을 먼저 생각하는 음악인이 돼야죠.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열심히’를 넘어 ‘완벽한’ 무대를 해내야 해요. 이런 노력이 쌓여 사람들 곁에 늘 클래식이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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