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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책임과 의무
박수민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장

2022. 11.28. 23:26:05

박수민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장

[특별기고] 새벽에 전화가 울렸다. 시골에 있는 아버지의 전화였고 서울에 있는 남동생이 전화를 받지 않는데 괜찮은 건지 걱정된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이 새벽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 확인한 뉴스에서 이태원 참사 사망자와 부상자의 숫자를 보았다. 지난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그저 멍하니 TV에서 나오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 그제야 동생에게 연락해 괜찮으냐고 물었고 아직 잠이 깨지 않은 동생의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끊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내 동생에게 별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 당연함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155명이다. 그리고 부상자 152명. 2022년 10월 29일 밤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참사다.

지난 11월 22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요구사항은 진정한 사과, 철저한 책임규명 과정에 피해자들의 참여 보장, 참사 피해자의 소통보장과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입장 표명과 대책 마련 등이다. 사실 해당 사안은 유가족이 요구해야 할 일이 아니다.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보며 우리는 진짜 안전한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광주 평동산업단지의 한 전자제품 부품 제조업체 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철제코일에 깔려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11월에는 수원의 슬러지 사업장에서 30대 노동자가 작업중 사망했다. 지난 10월에는 SPC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코레일에서도 올해만 벌써 4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죽지 않고 퇴근하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사회인가. 안전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은 허술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소리친다. 책임져야 할 이들의 목소리는 없다. 당연히 사과도 없다.

일하다, 또 길을 걷다 누군가 죽거나 다친다.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참사와 사고들에 대한 책임이 가르키는 방향은 한 곳이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책임져야 할 그들만 모를 뿐이다. 보상 금액으로 나오는 숫자들은 또 얼마나 폭력적인가. 죽음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10월 31일 발표한 이태원사고 관련 금융지원 추진 내용은 놀랍기만 하다.

사고피해자와 유가족의 대출에 대해서는 만기연장 및 원리금 상환 유예를 실시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사고 피해자 유가족이 긴급대출 신청 시 심사 등 신속히 관련 절차를 진행한다. 유가족과 부상자 등에 대해 신속한 보험금 지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긴급보상체계를 구축해 피해자의 보험 가입 여부 확인 및 신속한 보험금 지급이 이뤄지도록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이태원 참사에 대한 원인 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에서 발표한 대책이 맞는지 읽고 또 읽었다.

연이어 11월 21일 금융위원회는 보험분야의 낡은 규제를 개선해 보험산업의 디지털화 등 질적 혁신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전 금융권협회 수요조사 등에서 다양한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해 왔고 규제개혁 건의사항 중 보험 비중이 높아 필요성을 실감했다는 것이 추진 배경이다. 특히 보험사업은 낡고 촘촘한 규제 하에서 급격한 환경 변화가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민원에 대한 부분도 감독 당국의 인력은 제한이 있으니 협회 등 민간영역으로 분담한다고 한다.

보험은 보통 재해나 각종 사고가 일어날 때를 대비해 미리 일정한 돈을 적립했다가 손해를 보장받는 제도다. 정부의 보험 관련 규제 완화 내용은 건강, 안전에 관한 공공의 책임을 민간으로 넘기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언제 발생할지 모를 사건 사고와 질병에 개인이 민간 보험을 통해 미리 준비하라는 것인가.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을 줄이고, 시민들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환경 요인들을 개선하기 위해 대책 마련을 해야 하는 정부의 책임 자리에 민간 보험이 자리 잡으려 한다.

낡은 규제는 보험사업이 아니다. 낡은 것은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가벼이 여기는 정부의 태도다. 낡은 책임과 의무를 고쳐야 한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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