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와 요리, 모두 사람 살리는 일이죠"
[포커스 이사람] 식당 운영하며 두번째 시집 낸 김옥종
신안 지도 출신 한국 최초 격투기 선수 요리사 시인
등단 5년째 ‘민어의 노래’ 이어 2년 만에 ‘잡채’ 출간
식재료서 영감 시어 빗대 예술로 승화 마음 채우는 역할
신안 지도 출신 한국 최초 격투기 선수 요리사 시인
등단 5년째 ‘민어의 노래’ 이어 2년 만에 ‘잡채’ 출간
식재료서 영감 시어 빗대 예술로 승화 마음 채우는 역할
입력 : 2022. 11. 27(일) 18:10

김옥종 시인은 “일상에서 느낀 것을 미사여구를 덜어낸 채 시어에 빗대 표현한다. 회를 숙성시켜 한상차림을 내어놓듯 요리사만이 할 수 있는 걸 시로 쓴다”고 밝혔다.
한 때 목포 어깨들 사이에서 이름을 날린 행동대장, 한국 최초 격투기 선수, 식당을 경영하는 요리사이자 시인. 그를 떠올리면 따라붙는 수식어다. 결이 전혀 다른 활동을 해온 김옥종 시인이 주인공이다. 그는 시 쓰는 요리사로도 알려져 있다. 2015년 등단한 뒤 5년 만에 낸 첫 시집 ‘민어의 노래’(휴먼앤북스 刊)가 4쇄 인쇄라는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름을 알렸다. 제법 이름이 알려진 시인도 1000부인 1쇄를 완판하기 어렵기에 그렇다. 그런 그가 2년여 만인 올해, 두 번째 시집 ‘잡채’(휴먼앤북스 刊)를 휴먼시선 세 번째권으로 펴냈다.
이런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달 광주 북구 신안동에서 그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을 찾았다. ‘지도로’. 신안 지도 출신인 그가 고향이름을 따 지었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 진열돼있는 그의 시집에 눈길이 갔다. 식당 안쪽에는 식객 허영만 작가의 사인과 그의 시에 그림을 더한 시화가 벽에 걸려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시를 쓰게 된 과정과 이번 시집에 대한 애정에 대해 들려줬다.
사실 그는 학창시절 동네에서 주먹으로 이름깨나 날렸다고 한다. 또래들보다 힘이 세기도 했고 강한 상대와 한판 붙어 이길 때 몸에 퍼지는 쾌감을 계속 느끼고 싶었다.
그러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단체로 나간 백일장에서 그가 쓴 시를 눈여겨본 심사위원들에 의해 처음으로 상장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 그의 남다른 감성을 알아봐 준 것이다.
“동생들은 다들 공부를 잘했고 전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싸우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백일장에 나가서 제가 쓴 시로 상을 받은 거죠. 누군가에게 제 능력을 인정받으니 얼떨떨하면서도 그 기분이 싫지 않았어요. 집에 달려가 아버지께 상장을 보여드렸는데 ‘이게 뭐’ 이렇게 반응하셨죠. 그래서 다시 주먹질에 몰두했어요.”
목포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1학년 때 지역 폭력조직에 가담하게 됐다. 행동대장을 맡아 목포 시내를 돌며 수금을 지시하고 조직원을 관리했다. 그 생활에 깊이 빠졌다. 어느 날 어릴 적 친구들이 찾아왔다. 함께 대학을 가자고 제안했다. 친구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덕분에 광주의 한 전문대 건축학과에 다니게 된다. 조직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녀서 목포와 광주를 오가다 결국 학업에만 몰두하게 되고 학교를 졸업해서는 건축기사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과 함께 현장에서 부대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심적 부담감이 컸다는 그는 운동으로 풀어보기로 한다. 그렇게 그는 킥복싱에 매진, 한국 첫 대표선수로 1995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케이원 그랑프리 개막전 링 위에 오른다. 이후 킥복싱장을 운영하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백반집을 도우며 어깨너머로 요리를 배우게 된다. 식재료를 손질해 상에 오를 반찬을 만들고 회를 뜨다 음식에 대한 열망이 뜨거워졌다. 거기서 얻은 영감을 짧은 글로 메모했다가 시로 발전시켰다. 그게 자양분이 돼 그는 등단을 했고 시인이 됐다. 요리하는 시인이 된 지 올해 25년째다.
그는 머리로 고민하고, 고민한 것을 행동으로 옮겨 실험해봐야, 또 그게 손에 익어야 비로소 생각했던 음식을 완성할 수 있는 반면, 시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쓸 수 있다고 했다. 시 쓰기와 요리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으로는 둘 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역할이라는 점을 꼽았다.
“시 쓰기와 요리는 모두 사람을 살리는 일이죠. 시는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고, 요리는 주린 배를 채워주니까요. 둘 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점에서 같은 거죠. 제가 음식을 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지금까진 사람을 자빠뜨리는 일을 했으니 앞으로는 살리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서죠.”
그의 시에 마늘쫑과 고추냉이, 깨소금, 육전 등 음식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첫 번째 시집 표제작을 장식한 민어와 낙지, 꼬막, 가오리, 갑오징어 등 해산물도 단골손님이다.
최근 펴낸 ‘잡채’에도 어김없이 음식이 등장한다. 게장과 오징어회, 광어, 농어, 서리태, 닭볶음탕, 라면 등이 그것이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식재료들이 예술로 승화, 활자로 요리된 셈이다.
수록작 ‘건정’에서는 ‘나도 한 번씩은 조금 피가 흐르더라도/ 가슴을 열어/ 겨울 쪽볕에 한나절은 말리고 싶다/졸여낸 것은 생선이나 사람이나/ 깊어지는 건 매한가지 아니겠나’라고 노래한다. 표제작인 ‘잡채’에서는 ‘당면이 입원했을 때 병명은 전분의 과부하로 생긴/분리 불안증이었다//시금치나/당근이나/혹여/외롭다든가/쓸쓸한다던가를 넣어 센불에/볶았다//추적추적/메타세콰이어 길이 어둠속에/바스락 거릴 때//죽음에 이르는 병을 덖어주었더니//그것이 온 세상의 것을/위무 해주지 않았던가?/시가 그렇고/절망이 그렇고/다시 불러보는/까닭 모를 외로움이 그러했다//몸을 빨래처럼 뒤틀어/채 털어내지 못한 계절까지 뒤집어/햇볕에 말렸다/곰팡이처럼 피어오르던 말년의 건선 같은/옹졸함도 딱정이 지어 떨어지고/그렇게 나는 완경(完經) 에 다다를 수 있었다’고 노래한다.
삶에서 건져 올린 시들이다. 느낀 것을 솔직하게, 담담하게 써 내리면서 읽는 이들로 하여금 시각과 미각, 촉각 등 오감을 자극한다. 쉽게 읽히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가 진짜 문학이라는 설명이다.
“요즘은 어려운 시들이 대부분이더군요. 그런 시를 접할 때면 독자들은 얼마만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했죠. 잘 읽히고, 어렵지 않게 이해돼야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시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느낀 것을 미사여구를 덜어낸 채 시어에 빗대 표현하는 것 같죠. 회를 숙성시켜서 한상차림을 내어놓 듯 요리사만이 할 수 있는 걸 시로 쓰는 거예요.”
이번 시집을 출간하고 나서 다시 첫 시집 수록작들을 읽어보니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확실히 이전보다 작품이 유려해진 것을 느낀다고 한다. 세 번째 시집을 세상에 내놓으면 더는 시집을 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영감이 다 돼 비슷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면 어김없이 필력이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좋은 시와는 멀어진다는 생각에서다. 그 뒤에는 소설이나 요리책을 펴내고 싶다는 바람이다.
“세 번째 시집을 끝으로 더는 시집을 내지 않을 생각이지만, 새로운 영감이 생긴다면 쓸 수도 있겠죠. 저에게 요리는 시고, 시는 곧 요리나 다름없어요. 배고플 때 따뜻한 상을 받으면 큰 위로가 되듯, 제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작용했으면 합니다.”
이런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달 광주 북구 신안동에서 그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을 찾았다. ‘지도로’. 신안 지도 출신인 그가 고향이름을 따 지었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 진열돼있는 그의 시집에 눈길이 갔다. 식당 안쪽에는 식객 허영만 작가의 사인과 그의 시에 그림을 더한 시화가 벽에 걸려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시를 쓰게 된 과정과 이번 시집에 대한 애정에 대해 들려줬다.
사실 그는 학창시절 동네에서 주먹으로 이름깨나 날렸다고 한다. 또래들보다 힘이 세기도 했고 강한 상대와 한판 붙어 이길 때 몸에 퍼지는 쾌감을 계속 느끼고 싶었다.
그러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단체로 나간 백일장에서 그가 쓴 시를 눈여겨본 심사위원들에 의해 처음으로 상장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 그의 남다른 감성을 알아봐 준 것이다.
“동생들은 다들 공부를 잘했고 전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싸우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백일장에 나가서 제가 쓴 시로 상을 받은 거죠. 누군가에게 제 능력을 인정받으니 얼떨떨하면서도 그 기분이 싫지 않았어요. 집에 달려가 아버지께 상장을 보여드렸는데 ‘이게 뭐’ 이렇게 반응하셨죠. 그래서 다시 주먹질에 몰두했어요.”

식당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김옥종 시인의 시집들.
그는 머리로 고민하고, 고민한 것을 행동으로 옮겨 실험해봐야, 또 그게 손에 익어야 비로소 생각했던 음식을 완성할 수 있는 반면, 시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쓸 수 있다고 했다. 시 쓰기와 요리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으로는 둘 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역할이라는 점을 꼽았다.
“시 쓰기와 요리는 모두 사람을 살리는 일이죠. 시는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고, 요리는 주린 배를 채워주니까요. 둘 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점에서 같은 거죠. 제가 음식을 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지금까진 사람을 자빠뜨리는 일을 했으니 앞으로는 살리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서죠.”
그의 시에 마늘쫑과 고추냉이, 깨소금, 육전 등 음식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첫 번째 시집 표제작을 장식한 민어와 낙지, 꼬막, 가오리, 갑오징어 등 해산물도 단골손님이다.
최근 펴낸 ‘잡채’에도 어김없이 음식이 등장한다. 게장과 오징어회, 광어, 농어, 서리태, 닭볶음탕, 라면 등이 그것이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식재료들이 예술로 승화, 활자로 요리된 셈이다.

최근 두 번째 시집 ‘잡채’를 출간한 뒤 지인들과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김 시인
삶에서 건져 올린 시들이다. 느낀 것을 솔직하게, 담담하게 써 내리면서 읽는 이들로 하여금 시각과 미각, 촉각 등 오감을 자극한다. 쉽게 읽히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가 진짜 문학이라는 설명이다.
“요즘은 어려운 시들이 대부분이더군요. 그런 시를 접할 때면 독자들은 얼마만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했죠. 잘 읽히고, 어렵지 않게 이해돼야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시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느낀 것을 미사여구를 덜어낸 채 시어에 빗대 표현하는 것 같죠. 회를 숙성시켜서 한상차림을 내어놓 듯 요리사만이 할 수 있는 걸 시로 쓰는 거예요.”
이번 시집을 출간하고 나서 다시 첫 시집 수록작들을 읽어보니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확실히 이전보다 작품이 유려해진 것을 느낀다고 한다. 세 번째 시집을 세상에 내놓으면 더는 시집을 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영감이 다 돼 비슷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면 어김없이 필력이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좋은 시와는 멀어진다는 생각에서다. 그 뒤에는 소설이나 요리책을 펴내고 싶다는 바람이다.
“세 번째 시집을 끝으로 더는 시집을 내지 않을 생각이지만, 새로운 영감이 생긴다면 쓸 수도 있겠죠. 저에게 요리는 시고, 시는 곧 요리나 다름없어요. 배고플 때 따뜻한 상을 받으면 큰 위로가 되듯, 제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작용했으면 합니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