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명작과 사회
서양화가 한희원
입력 : 2018. 02. 01(목) 17:04
서양화가 한희원
연일 한파가 몰아친다. 겨울의 차가움은 당연하다 싶어도 계속되는 추위는 삶을 움츠리게 하고 절제하게 만든다. 절제되는 삶은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서 철학적으로 깊어지고 예술적인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러시아가 위대한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한 것은 긴 겨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끝없는 대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의 근원적인 물음과 밑바닥에 오랫동안 얼어붙어 굳어버린 감성이 일어난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겨울의 한파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드물다. 겨울에도 추위와 적당한 햇살이 반복되어 그나마 견디며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요즘처럼 추운 날씨가 계속되면 가장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서민들이다. 재래시장이나 소상인들은 추운 날씨에 사람을 구경하는 것조차 힘들어 겨울이 야속할 뿐이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겨울을 보내기가 만만치 않다. 동물들의 겨울잠처럼 칩거해서 작업하기가 좋은 계절이지만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좁은 화실에 난로를 피우면 유독성이 있는 물감이 온 몸으로 파고들어 오후쯤에는 몸이 파김치처럼 늘어진다. 그래도 겨울은 그림 그리기에 좋은 계절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 작품을 깊이 있게 그릴 수 있다. 화가들에게 가장 좋은 시간은 깨끗이 정돈된 붓을 가지런히 꽂고 팔레트에 온갖 색상의 물감을 짜놓은 후 캔버스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보통 팔레트에는 자신이 많이 사용하는 색상 순으로 물감을 짜 놓는다. 화이트, 블루에서부터 블랙까지 40가지 이상의 물감을 색상대로 짜 놓으면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블루도 한 가지 색만 있는 것이 아니다. 블루색만 가지고도 무한대로 색상을 만들 수 있다. 화가들은 팔레트에 있는 색을 혼합하여 자신도 알 수 없는 신비스런 색을 만들어 낸다. 캔버스에 붓질을 할 때는 수많은 색을 대비하며 완성해 나간다. 어느 날은 단 한 가지 색으로 그림을 완성해 나갈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여러 색을 사용하기도 한다. 색들이 혼란스럽게 보이기도 하는데 조화를 이루면 알 수 없는 신비한 감정의 울림이 일어난다. 색채화가인 샤갈은 여러 색들이 서로 치고 빠지기도 하면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색상들이 대비되어 상상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탄생시킨다. 명작은 철저한 계산속에서도 이루어지지만 예상치 않은 우연한 붓놀림에서도 나온다.

뛰어난 시도 시에 나오는 모든 단어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시어들이 아름다운 단어로 쓰이면 그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에 묻혀 퇴색될 뿐이다. 현란한 단어들의 유희로 쓰인 시는 명시가 되지 않는다.

누구나 아는 평범한 시어 속에 절묘한 시어가 조합되었을 때 감동을 주는 명작이 되는 것이다. 단색으로 된 그림에도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화가 숨어 있고 수많은 색상을 거칠게 칠하면서도 단순함이 들어 있는 것이 명작이다. 뛰어난 예술가들은 이러한 숙련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경지에 들어선다.

요즘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이러한 예술적인 경지가 그립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서로의 반대되는 의견을 개진하면서 지혜가 필요하다.

잘 나가는 사람과 소외 받는 사람이 존재 할 수밖에 없는 사회이긴 하지만 배려와 양보를 통한 조화가 있어야 하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따뜻함이 있는 사회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수준 높은 시민정신이 또한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시민들의 정신이 견고하고 높은 수준에 있으면 사회지도층들은 그 위에 근간을 세울 수밖에 없다. 오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얻은 시민 정신이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명작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의 정신이 우리사회 곳곳에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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