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어둠속에서 식사해 보실래요?
김희랑 광주시립미술관 분관장
입력 : 2018. 01. 25(목) 17:09
서울 가회동에 ‘어둠속의 대화’라는 체험공간이 있다. 이곳은 빛이 전혀 없는 어두운 공간에서 비장애인들이 시각장애인인 로드마스터의 안내를 받으며 시각장애인들의 생활을 체험해 보는 공간이다. 이 ‘어둠속의 대화’는 198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안드레아스 하이네케 박사(Dr.Andreas Heinecke)에 의해 시작됐으며, 지난 30여년 간 유럽,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 32개국 160개 지역에서 10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체험에 참여했다.

‘어둠속의 대화’는 눈을 감으나 뜨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캄캄한 공간에서 실행하는 90분 정도 소요되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처음 10분 정도는 잔뜩 긴장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감각을 깨워내는데 집중하게 된다. 더듬더듬 벽을 잡고 걸으며, 서로 부딪치기도 하지만 로드마스터의 안내에 따라 숲길을 걷고 이웃집에 들르고, 시장과 영화관에 들르고, 배를 타고, 카페에서 음료도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두려움이 사라지고 감각이 살아나게 된다. 무엇보다 처음 만난 참가자들과 별다른 편견 없이 서로를 배려하며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된다. 일반적으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외모와 옷, 연령과 태도 등을 통해 상대를 파악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그러한 시각적 편견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어둠속의 대화’ 체험을 마친 사람들은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일상의 불편함과 고통을 이해하게 되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반성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광주에서도 어둠의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시도가 시작됐다. 시각장애인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비영리 조합이 주축이 돼 지난 2016년 ‘어둠속의 빛 사회적 협동조합’을 출범시키고,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부지마련을 위한 기금모금운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어둠 체험프로그램의 시범 사업으로서 어둠속에서 식사와 공연을 하는 암흑식당 ‘더드미’를 운영하고 있다.

‘어둠속의 빛 체험관’ 건립 후에는 시각장애인 일상 체험뿐만 아니라 공연이나 전시 등의 예술프로그램을 비롯해 어둠속 식당과 카페 운영, 사회적 약자 생산품 제조와 유통 등 장애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사업 활동도 구상 중에 있다. 서울에 있는 ‘어둠속의 대화’를 보면 체험을 돕는 로드마스터 등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그 수가 30여명에 달한다. 광주에 체험관이 개관하게 되면 역시 많은 수의 시각장애인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최근 많은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이제까지 장애인에 대한 지원과 후원이 복지관 건립과 운영 등 사회적 재활에 초점이 맞춰졌었다면, 이제 장기적 관점에서 직업재활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일방적 후원이 아니라 장애인들도 사회에서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장애인 재활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장애는 선천적으로 타고 날 수도 있지만 후천적 질환과 사고에 의한 발생비율이 89%(2014년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조사)에 달한다.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닌 나 자신과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장애인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것을 넘어 그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 등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절실하다. 어둠속의 빛 협동조합이 추진하고 있는 ‘어둠속의 빛 체험관’이 성공적으로 건립되길 응원하며,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 암흑식당 ‘더드미’에 가족과 함께 방문해 어둠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길 제안해 본다.
광남일보@ 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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