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시론] 은퇴에 대한 단상
이상심 전 전남도보건복지국장
입력 : 2025. 07. 09(수) 14:25
이상심 전 전남도보건복지국장
며칠 전 은퇴를 했다. 40여년간의 공직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언제까지나 이 생활이 지속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은 접고 새로운 생활 패턴을 만들고 있다.

먼저, 그동안의 새벽형 인간 루틴을 이어가기 위해 새벽반 수영은 지속하고 있다. 다음은 새로운 휴먼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동네 파크골프 회원에 가입했다. 그동안 내 삶을 가득 채웠던 직장 동료를 대신할 수 있는 함께 놀며 밥 먹을 대상이리라 기대하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공직 경험을 학문과 연계하고 싶어 대학원 박사과정 등록도 했다.

이런 일련의 준비는 ‘은퇴’라는 새로운 변화를 나 스스로 시간을 알차게 보낼 자신이 없어서다. 갑자기 넘쳐나는 시간을 잘 다루지 못하면 무기력과 함께 우울감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시스템 작동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그래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어, 그리고 그 긴 세월 일만 했으니 이젠 좀 쉬어도 돼, 그리고 더 활기차고 가슴 떨리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라며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며칠이지만 이런 위안이 무색하게 출근할 곳이 없다는 현실이 뭔가 허전하고 무기력해진 느낌이다.

특히 출근 시간대에 남아도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인간에게 씌어진 관성이라는 것이 무섭다.

5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매일 아침 분주했던 일상이 멈춰 선 듯하다.

아침 운동 이후 느긋하게 휴대폰 동영상 몇 개 들여다 보고 나면 머리에 남는 건 없고 눈만 아프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맞나 하는 허탈한 생각마저 든다.

반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좀 더 느긋해진 것 같다. 며칠 전 아침 운동을 가려고 주차장에 갔다. 내 차 앞에 여러 대의 차가 꽉 막고 있었다. 그것도 핸드브레이크까지 채워두어 도저히 차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 생기면 먼저 열 받고 조급해 하고 육두문자 욕설도 서슴지 않았을텐데 웬걸 바쁜 마음이 없다. 그래서 느긋해 진다. 매너없는 상대방에게 쏟아졌던 분노의 욕설도 덜 나온다. 이것이 내가 갖는 은퇴의 여유다. 사소하지만 큰 변화다.

매년 쏟아지는 은퇴자가 30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특히 2차 베이비부머(1964~1974)가 지난해부터 대거 법정 은퇴연령에 진입하고 있다. 그 규모가 천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단일 세대로는 가장 규모가 큰 집단이라고 한다.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국가 경제성장률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은퇴 이후를 어떻게 준비하고 생활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더 필요하다. 법정 은퇴연령(60세)으로 퇴직은 했지만 노인이라고 할 수 없는 즉 은퇴 장년층을 우리 사회의 한 축으로 보고 이들에 대한 좀 더 세밀하고 구체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공공지원 일자리는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위주로 추진되고 있다. 노인 일자리의 경우 65세 이상이 참여하고 월 30만원 수준의 공공형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일자리 유형도 경로당 지원, 공공시설물 관리, 환경정화 활동 등 단순 노동형이다. 다행히 최근 몇 년전부터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을 60세까지 확대하여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65세 미만 장년층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영역과 규모는 매우 제한적이다. 갓 은퇴한 활기 넘치는 인력이 진입하기에는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않고 소득도 76만원 수준으로 만족도가 떨어지는 현실이다.

수년간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과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고 우리 사회에 선순환 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할 시점이다.

예컨대, 최근 산불이 대형화됨에 따라 산불 예방 감시, 진화하는 과정에 드론 활용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분야에도 기계, 정보통신을 활용한 경험이 있다거나, 관심 있는 은퇴자를 교육하여 배치하는 방안도 있다. 드론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이외에도 많다. 해양쓰레기 불법 투기 감시원, 배회하는 치매노인 찾기 등 다양한 정책으로 접목도 가능할 것이다. 드론을 배우고 활용한다는 것은 은퇴자에게 자존감을 높일 수 있고 전문인력 활용 측면서도 매우 유의미하다고 할 것이다.

이 밖에도 지역사회에 도움도 되고 참여자의 만족을 높일 수 있는 분야는 많을 것이다. 은퇴 중장년층을 우리 사회의 중요한 노동 인력으로 흡수할 수 있는 지속적인 정책발굴이 필요하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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