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존재
박병훈 톡톡브레인심리발달연구소 대표
입력 : 2024. 12. 25(수) 17:06
박병훈 톡톡브레인심리발달연구소 대표
[아침세평] 12월 25일은 성탄절이다. 성탄절은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의 날이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절망의 날이었다.

성탄은 메시아가 탄생한 날이다. 그러나 헤롯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두 살 아래의 모든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지난 12월 3일의 계엄 선포가 그랬다. 어떤 말로 치장해도 윤석열 대통령의 권력을 지키려는 몸부림에 불과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의 주동자 집단인 야당의 횡포에 경고를 주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거짓이었다. 그에게서 공정과 상식의 언어를 찾을 수 없다. 자기의 마음대로 되지 않은 대상에게는 처단과 척결만 있을 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언어는 거짓말로 점철됐다. 그 대가는 처참했다.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신뢰의 상실은 여당의 총선 참패로 귀결됐다. 총선에서 참패했으면 자기성찰과 반성이 뒤따랐어야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수용해 해결책을 찾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엉뚱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비상계엄이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연대로 계엄은 실패했다. 계엄을 설계하고 실행했던 행위자들의 거짓말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윤석열 대통령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갈수록 내란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있다.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윤석열 대통령의 성격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물론 그가 가지고 있는 어둠의 성격도 한 몫 했다. 이번 계엄은 훨씬 계획적이고 범위가 크다. 등장 인물은 조정래의 대하소설인 태백산맥에 나오는 캐릭터보다 더 많다.

잠 못드는 보름이었다. 난데없는 계엄선포는 위헌·위법이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계엄해제 이후에 벌인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은 기괴했다. 자신에 대한 성찰은 아예 없다. 국가의 신임도에 치명타를 가했다. 환율은 치솟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송년회 시즌임에도 골목은 적막하다.

그는 국민들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자기이익에 매몰돼 수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목숨을 앗아갔다.

사전에 공동으로 내란을 획책한 사람들이야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 치자. 명령에 따라 움직인 군인과 경찰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허탈감, 파멸적인 장래에는 어떻게 책임을 질까.

계산할 수 없는 유형 무형의 피해에 대해 사과나 반성은 없고 자기 살길만 찾고 있는 모습에 차라리 깊은 연민을 느낀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5·18을 목도했다. 학교에 등교했을 때 계엄군이 학교의 교문 앞까지 진출했다. 학생들은 거의 매일 민주화를 외치며 운동장에서 시위를 했다.

선생님들의 안내로 학교 뒷산으로 피신해 집으로 갔다. 그 이후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시골에도 가지 못하고 20여일을 자취 방에 갇혀 있었다.

내가 자취를 하던 곳은 자취방이 열 개가 넘었다. 부근에 사립대학교가 있어 그 학교에 다니는 대학생들이 많았다. 우리는 공수부대원들이 백림약국 근처까지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대학생 형들을 숨기기에 바빴다.

5·18이 수많은 희생자를 남긴 채 비극으로 끝났으나 시민들의 싸움은 그 이후로도 계속됐다. 5·18과 이번 계엄의 트라우마는 계속될 것이다.

트라우마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수반한다. 노출되는 시간이 길고 상황이 부정적일수록 불안, 공포, 슬픔과 죄책감을 더 많이 느낀다. 분노 감정도 분출된다.

이 같은 트라우마는 사건을 재경험함으로써 고통을 주는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 침투적 생각을 갖게 한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후에는 특정한 문제행동이 시작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도움 가능성에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공격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반면에 트라우마는 한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트라우마 사건에 직면해 분투한 결과 개인이 경험하는 긍정적 변화를 ‘외상 후 성장’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번 계엄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한다. 나는 그 중 한 가지가 윤석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곧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권력과 부, 충암파로 대변되는 자신들의 이익보다 소중한 것은 사람이다. 소유가 존재가 아니다.

이번 계엄은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겨낼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우리는 겨울의 한복판에서 마침내 우리 안에 굴복하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존재의 승리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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