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알리는 시그널 ‘우수’(雨水)
서금석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특별연구원
입력 : 2024. 02. 18(일) 18:29

서금석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특별연구원
[특별기고] ‘우수’(雨水). 빗물이다. 이날은 대한(大寒)이 지나고 한 달째가 되는 날이다.
대개 입춘 이후 15일째가 우수가 된다. 일반적으로 양력 2월 4일이 입춘이며, 2월 19일이 우수다. 24절기로 두 번째 절기이다.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해 정해 놓은 동지와 하지, 춘분 및 추분과 달리 우수는 자연 변화를 관찰해 만들어낸 용어라고 보면, 24절기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고자 했다. 발음이 같은 말로 우수(憂愁)가 있지만, 이때 쓰는 우수는 ‘근심과 시름’이라 24절기에서 말하는 우수(雨水)와 다르다.
옛 기록을 보면 우수(雨水)에 수달이 물고기로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수달이 무슨 제사를 지낼까 싶지만,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늘여놓은 장면을 두고 한 말이다.
녹은 얼음 사이를 헤엄쳐서 물고기를 잡는 부지런한 수달 가족을 보는 것 같다. 이때가 되면 철새인 기러기가 월동을 위해 북쪽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풀과 나무에 새싹이 튼다고 했다. 수달은 이 시즌에 짝짓기하고 따뜻한 봄날이 되면 출산한다. 우수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계절의 변화를 짐작하는 단어다.
시절로 보면 겨울인데 왠 비일까 싶다. 이를 겨울비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봄비라고 불러야 할까. 구분하기 힘들지만, 봄을 미리 알리는 시그널이다. 겨울철에 비가 내리는 현상은 간단하다. 추운 겨울철에 따뜻한 기온을 만나면 눈이 아니라 비를 만들어낸다. 자연이 만들어준 겨울철 비였다. 흔히 적도 부근에서 기온이 올라가는 엘리뇨와 같은 현상을 생각하면 된다.
기후변화로 요즘은 이런 현상이 적도를 가리지 않고 흔히 관찰된다. 겨울철 가끔의 빗물이 이제는 겨울철 흔한 현상이 되었다. 폭설이 폭우로 바뀔 수도 있다.
24절기는 기원전 2~3세기 황하 위쪽 산둥반도와 화북평야 위쪽의 화북지방과 같이 4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만들어졌다. 한반도는 그 위도가 비슷하고, 농경이 화북지방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졌으니 24절기 운용 또한 같은 경로를 따랐을 것이다. 요새같이 기후변화로 사계절 길이가 들쑥날쑥할 때면 지금 우리나라에 24절기가 제대로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을 재차 통일한 한나라 초기에 편찬된 회남자(淮南子)에 지금과 같은 24절기가 실린 것을 보면 시간의 창조와 통일 제국은 무관치 않다. 이보다 좀 더 앞선 시기인 진나라 제국 여불위가 편찬했던 여씨춘추에서 ‘시우수’(始雨水)가 보인다.
책의 목차를 춘하추동으로 나눴다. 춘추(春秋)가 춘하추동 사계절의 준말로, 그 자체가 시간 즉 역사를 의미하다. 아직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고자 애쓴 진나라의 노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물론 더 이른 시기인 춘추시대의 것으로 알려진 관자(管子)의 30시절(時節)에서 우수(雨水)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의 24절기 출현은 진·한 통일 시기와 맞물려 있다.
시절 용어가 만들어지고 정비됨으로써 통치 체제는 굳건해졌다. 24절기의 정돈은 자연의 변화를 시간 질서로 완벽하게 치환시킴으로써 시간과 통치가 결국 그 궤를 같이했음을 알려준다. 시간은 질서를 만드는 데 최적화됐다. 통치는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맞춰져 있다. 시절마다 제사를 지냈던 관례도 음식 공동체를 통해 국가 질서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려는 방편이 됐다. 가족공동체(식구·食口)를 넘어 지역공동체와 국가공동체를 담아냈던 시간 질서에 24절기가 그만큼 중요한 위상을 차지했다. 먹고살기 위해 시간을 만들어냈고, 동시에 시간의 통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다. 시간은 규칙적인 자연을 품어냈으며, 무엇보다도 그 자체가 목적 의식적이다.
양력 2월 중순쯤이면 작년 가을철 거둬들여 채웠던 곡간은 거의 비었다. 가장 힘든 배고픈 시절이다. 나무뿌리라도 캐서 나눠 빨아 먹고 영양분을 채워야 했다. 보리 수확 때까지는 아직도 멀다. 눈이 하얗게 쌓인 들판에 삐쭉삐쭉 올라온 보리밭 새싹을 뜯어먹을 수도 없었다. 배고픔을 달래며, 보리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며 추위에 들뜬 보리 뿌리를 밟아야 했다. 보리 수확 때까지 버텨야 했던 굶주림의 시절, 그래서 이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불렀다. 우수는 빗물만이 아니라 눈물의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시즌에 출현한 우수는 겨울철 자연의 변화 징후를 미리 알려주려는 용어였다. 체감온도로 겨울철인 2월 중순이 되면 따뜻한 기운이 차가운 날씨를 밀어내는 자연 현상을 예고한다. 추위와 폭설로 메워져야 할 겨울철에 내리는 빗물인 우수는 그래서 한편으로 희망적이다. 희망은 뒤가 아니라 앞에서 이끈다. 시절의 흐름은 매년 반복되지만, 뒤로 후퇴하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을 딛고 피는 매화는 2월 중순부터 개화한다. 꽃말이 ‘인내’라고 한다. 때가 되면 떠났던 철새들이 돌아온다. 수달은 강가 얼음 사이를 부지런히 누빈다. 힘든 시기일수록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자연과 시간의 매력이다.
대개 입춘 이후 15일째가 우수가 된다. 일반적으로 양력 2월 4일이 입춘이며, 2월 19일이 우수다. 24절기로 두 번째 절기이다.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해 정해 놓은 동지와 하지, 춘분 및 추분과 달리 우수는 자연 변화를 관찰해 만들어낸 용어라고 보면, 24절기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고자 했다. 발음이 같은 말로 우수(憂愁)가 있지만, 이때 쓰는 우수는 ‘근심과 시름’이라 24절기에서 말하는 우수(雨水)와 다르다.
옛 기록을 보면 우수(雨水)에 수달이 물고기로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수달이 무슨 제사를 지낼까 싶지만,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늘여놓은 장면을 두고 한 말이다.
녹은 얼음 사이를 헤엄쳐서 물고기를 잡는 부지런한 수달 가족을 보는 것 같다. 이때가 되면 철새인 기러기가 월동을 위해 북쪽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풀과 나무에 새싹이 튼다고 했다. 수달은 이 시즌에 짝짓기하고 따뜻한 봄날이 되면 출산한다. 우수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계절의 변화를 짐작하는 단어다.
시절로 보면 겨울인데 왠 비일까 싶다. 이를 겨울비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봄비라고 불러야 할까. 구분하기 힘들지만, 봄을 미리 알리는 시그널이다. 겨울철에 비가 내리는 현상은 간단하다. 추운 겨울철에 따뜻한 기온을 만나면 눈이 아니라 비를 만들어낸다. 자연이 만들어준 겨울철 비였다. 흔히 적도 부근에서 기온이 올라가는 엘리뇨와 같은 현상을 생각하면 된다.
기후변화로 요즘은 이런 현상이 적도를 가리지 않고 흔히 관찰된다. 겨울철 가끔의 빗물이 이제는 겨울철 흔한 현상이 되었다. 폭설이 폭우로 바뀔 수도 있다.
24절기는 기원전 2~3세기 황하 위쪽 산둥반도와 화북평야 위쪽의 화북지방과 같이 4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만들어졌다. 한반도는 그 위도가 비슷하고, 농경이 화북지방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졌으니 24절기 운용 또한 같은 경로를 따랐을 것이다. 요새같이 기후변화로 사계절 길이가 들쑥날쑥할 때면 지금 우리나라에 24절기가 제대로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을 재차 통일한 한나라 초기에 편찬된 회남자(淮南子)에 지금과 같은 24절기가 실린 것을 보면 시간의 창조와 통일 제국은 무관치 않다. 이보다 좀 더 앞선 시기인 진나라 제국 여불위가 편찬했던 여씨춘추에서 ‘시우수’(始雨水)가 보인다.
책의 목차를 춘하추동으로 나눴다. 춘추(春秋)가 춘하추동 사계절의 준말로, 그 자체가 시간 즉 역사를 의미하다. 아직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고자 애쓴 진나라의 노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물론 더 이른 시기인 춘추시대의 것으로 알려진 관자(管子)의 30시절(時節)에서 우수(雨水)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의 24절기 출현은 진·한 통일 시기와 맞물려 있다.
시절 용어가 만들어지고 정비됨으로써 통치 체제는 굳건해졌다. 24절기의 정돈은 자연의 변화를 시간 질서로 완벽하게 치환시킴으로써 시간과 통치가 결국 그 궤를 같이했음을 알려준다. 시간은 질서를 만드는 데 최적화됐다. 통치는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맞춰져 있다. 시절마다 제사를 지냈던 관례도 음식 공동체를 통해 국가 질서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려는 방편이 됐다. 가족공동체(식구·食口)를 넘어 지역공동체와 국가공동체를 담아냈던 시간 질서에 24절기가 그만큼 중요한 위상을 차지했다. 먹고살기 위해 시간을 만들어냈고, 동시에 시간의 통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다. 시간은 규칙적인 자연을 품어냈으며, 무엇보다도 그 자체가 목적 의식적이다.
양력 2월 중순쯤이면 작년 가을철 거둬들여 채웠던 곡간은 거의 비었다. 가장 힘든 배고픈 시절이다. 나무뿌리라도 캐서 나눠 빨아 먹고 영양분을 채워야 했다. 보리 수확 때까지는 아직도 멀다. 눈이 하얗게 쌓인 들판에 삐쭉삐쭉 올라온 보리밭 새싹을 뜯어먹을 수도 없었다. 배고픔을 달래며, 보리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며 추위에 들뜬 보리 뿌리를 밟아야 했다. 보리 수확 때까지 버텨야 했던 굶주림의 시절, 그래서 이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불렀다. 우수는 빗물만이 아니라 눈물의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시즌에 출현한 우수는 겨울철 자연의 변화 징후를 미리 알려주려는 용어였다. 체감온도로 겨울철인 2월 중순이 되면 따뜻한 기운이 차가운 날씨를 밀어내는 자연 현상을 예고한다. 추위와 폭설로 메워져야 할 겨울철에 내리는 빗물인 우수는 그래서 한편으로 희망적이다. 희망은 뒤가 아니라 앞에서 이끈다. 시절의 흐름은 매년 반복되지만, 뒤로 후퇴하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을 딛고 피는 매화는 2월 중순부터 개화한다. 꽃말이 ‘인내’라고 한다. 때가 되면 떠났던 철새들이 돌아온다. 수달은 강가 얼음 사이를 부지런히 누빈다. 힘든 시기일수록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자연과 시간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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