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재심 재판, ‘무죄’ 판결의 의미
김용덕 전남도 여순사건지원단장
입력 : 2024. 02. 07(수) 18:19

김용덕 전남도 여순사건지원단장
[기고] 여순사건 당시 내란 및 포고령 위반 혐의로 군법회의에 넘겨졌던 민간인 희생자 3명에 대한 재심 재판이 지난달 18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316호 법정에서 열렸다.
모두 ‘무죄’였다. 재심 재판이란 확정판결로 사건이 종결되었으나 중대한 잘못이 발견되어 말 그대로 다시 청구하여 재판한다는 뜻이다. 76년 전 여순사건 당시 내려진 잘못된 판결로 억울하게 희생된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법적 구제 방법이다.
여순사건 당시 고등군법회의는 14연대 군인들에게 동조·합세하여 공중치안 및 질서를 교란하거나 국권을 배제하고 기본 질서를 괴란했다는 이유로 포고령 제2호 위반 등을 근거하여 수많은 민간인을 즉결 처형하거나 형무소에 수감하였다.
형무소에 수감된 대다수는 한국전쟁 이후 형무소 재소자 집단학살 사건으로 희생되었다. 포고령 제2호는 최고의 형인 사형을 구형할 수 있는 어마무시한 법령이다. 이러한 법령이라면 엄격하게 적용해야 했으나 지금부터 76년 전인 1948년에는 너무나 허술하게 적용하여 수많은 억울한 죽음을 양산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정은 한반도 이남을 통치할 목적으로 1945년 9월 7일에 포고령(일명, 맥아더 포고령)을 선포했다. 미군정이 선포한 포고령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제1호는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 점령과 일제 식민체제에 부역하던 관료, 군인, 경찰의 재기용, 제2호는 공중치안, 질서를 교란한 자는 연합군에 대하여 고의로 적대 행위를 하는 자로 사형이나 타 형벌에 처할 수 있다는 것, 제3호는 지폐, 화폐, 채권 등 통화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군정의 포고령은 미군정 기간에만 적용되어야 하므로 대한민국 정부수립 전인 1948년 8월 14일까지만 유효한 법령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미군정의 포고령을 적용하여 여순사건 당시 내란 및 국권 문란죄로 수많은 민간인이 즉결 처형되거나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 한국전쟁 직후 형무소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지금까지 여순사건과 관련하여 재심 재판을 받는 희생자는 5차에 걸쳐 29명이다. 모두 재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여순사건 최초의 재심 재판은 순천역 철도원으로 근무한 희생자가 1948년 10월 20일 9시 30분경 14연대 군인들이 순천읍 조곡리에 있는 순천역에 도착하자 이들에 동조, 합세하여 국권을 배제하고 통치의 기본질서를 괴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1948년 11월 14일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 및 포고령 제2호 위반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당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 재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포고령 제2호는 미군정 시기에 발령된 사실로 군법회의가 열린 1948년 11월경에는 이미 미군정이 종식되었음에도 포고령 제2호를 적용했다는 점 그리고 적용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통상의 판단 능력을 가진 국민이 법률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예견하기 어려우므로 죄형법정주의를 위배하여 위헌·무효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여순사건은 정부 수립 초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희생자 대다수는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은 풍비박산되었고, 남은 가족들은 비참한 삶을 살아냈다. 가족의 해체, 교육 기회의 상실 등 지독한 가난 속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76년 동안 누구에게도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던 통한의 세월이었다. 이제라도 국가가 이들의 명예를 되찾아 주어야 한다.
올해는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된 지 3년 차가 되는 해이다. 고령의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없는 사실을 미화하여 새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고, 억울한 누명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는 것이다. 여순사건 희생자는 하나같이 우익도 좌익도 아니다.
1차 재심 재판의 철도공무원은 오로지 국가의 대동맥인 철도의 운행을 책임지기 위해 국가가 혼란스럽던 시기에도 몸과 마음을 바쳐 성실히 직무를 수행한 명예로운 철도공무원이었고, 4차 재심 재판의 승주군 서면 동산국민학교 교사는 학생들의 계몽에 힘쓴 덕망이 높은 선생님이었다. 억울하고 통탄할 일이다.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이 2023년 12월 12일에 구성되었다. 올해 사실 조사를 거쳐 내년에는 진상조사보고서가 작성된다. 진상보고서작성기획단은 유족대표, 법조계, 학계, 전문가로 구성되었는데 학계나 전문가는 양심에 따라 사실만을 기록해야 한다. 여순사건 보고서를 작성하는 구성원들은 76년 전 왜곡된 시각으로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역사의 법정에 세웠던 지난날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순사건을 빨갱이가 있다고 배운 지식이나 경험으로 판단하지 말고, 재심 판결처럼 역사의 법정에서 지난날의 오류를 바로잡아 기록해야 한다. 여순사건 재심 재판에서 ‘무죄’가 주는 의미가 오롯이 여순사건 보고서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여순사건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할 때 느꼈던 가슴 북받친 감동이 여순사건진상보고서에서도 느껴지기를 기대해본다.
모두 ‘무죄’였다. 재심 재판이란 확정판결로 사건이 종결되었으나 중대한 잘못이 발견되어 말 그대로 다시 청구하여 재판한다는 뜻이다. 76년 전 여순사건 당시 내려진 잘못된 판결로 억울하게 희생된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법적 구제 방법이다.
여순사건 당시 고등군법회의는 14연대 군인들에게 동조·합세하여 공중치안 및 질서를 교란하거나 국권을 배제하고 기본 질서를 괴란했다는 이유로 포고령 제2호 위반 등을 근거하여 수많은 민간인을 즉결 처형하거나 형무소에 수감하였다.
형무소에 수감된 대다수는 한국전쟁 이후 형무소 재소자 집단학살 사건으로 희생되었다. 포고령 제2호는 최고의 형인 사형을 구형할 수 있는 어마무시한 법령이다. 이러한 법령이라면 엄격하게 적용해야 했으나 지금부터 76년 전인 1948년에는 너무나 허술하게 적용하여 수많은 억울한 죽음을 양산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정은 한반도 이남을 통치할 목적으로 1945년 9월 7일에 포고령(일명, 맥아더 포고령)을 선포했다. 미군정이 선포한 포고령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제1호는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 점령과 일제 식민체제에 부역하던 관료, 군인, 경찰의 재기용, 제2호는 공중치안, 질서를 교란한 자는 연합군에 대하여 고의로 적대 행위를 하는 자로 사형이나 타 형벌에 처할 수 있다는 것, 제3호는 지폐, 화폐, 채권 등 통화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군정의 포고령은 미군정 기간에만 적용되어야 하므로 대한민국 정부수립 전인 1948년 8월 14일까지만 유효한 법령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미군정의 포고령을 적용하여 여순사건 당시 내란 및 국권 문란죄로 수많은 민간인이 즉결 처형되거나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 한국전쟁 직후 형무소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었다.
지금까지 여순사건과 관련하여 재심 재판을 받는 희생자는 5차에 걸쳐 29명이다. 모두 재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여순사건 최초의 재심 재판은 순천역 철도원으로 근무한 희생자가 1948년 10월 20일 9시 30분경 14연대 군인들이 순천읍 조곡리에 있는 순천역에 도착하자 이들에 동조, 합세하여 국권을 배제하고 통치의 기본질서를 괴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1948년 11월 14일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 및 포고령 제2호 위반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당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 재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포고령 제2호는 미군정 시기에 발령된 사실로 군법회의가 열린 1948년 11월경에는 이미 미군정이 종식되었음에도 포고령 제2호를 적용했다는 점 그리고 적용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통상의 판단 능력을 가진 국민이 법률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예견하기 어려우므로 죄형법정주의를 위배하여 위헌·무효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여순사건은 정부 수립 초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희생자 대다수는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은 풍비박산되었고, 남은 가족들은 비참한 삶을 살아냈다. 가족의 해체, 교육 기회의 상실 등 지독한 가난 속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76년 동안 누구에게도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던 통한의 세월이었다. 이제라도 국가가 이들의 명예를 되찾아 주어야 한다.
올해는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된 지 3년 차가 되는 해이다. 고령의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없는 사실을 미화하여 새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고, 억울한 누명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는 것이다. 여순사건 희생자는 하나같이 우익도 좌익도 아니다.
1차 재심 재판의 철도공무원은 오로지 국가의 대동맥인 철도의 운행을 책임지기 위해 국가가 혼란스럽던 시기에도 몸과 마음을 바쳐 성실히 직무를 수행한 명예로운 철도공무원이었고, 4차 재심 재판의 승주군 서면 동산국민학교 교사는 학생들의 계몽에 힘쓴 덕망이 높은 선생님이었다. 억울하고 통탄할 일이다.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이 2023년 12월 12일에 구성되었다. 올해 사실 조사를 거쳐 내년에는 진상조사보고서가 작성된다. 진상보고서작성기획단은 유족대표, 법조계, 학계, 전문가로 구성되었는데 학계나 전문가는 양심에 따라 사실만을 기록해야 한다. 여순사건 보고서를 작성하는 구성원들은 76년 전 왜곡된 시각으로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역사의 법정에 세웠던 지난날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순사건을 빨갱이가 있다고 배운 지식이나 경험으로 판단하지 말고, 재심 판결처럼 역사의 법정에서 지난날의 오류를 바로잡아 기록해야 한다. 여순사건 재심 재판에서 ‘무죄’가 주는 의미가 오롯이 여순사건 보고서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여순사건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할 때 느꼈던 가슴 북받친 감동이 여순사건진상보고서에서도 느껴지기를 기대해본다.
광남일보@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