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을 위한 변명
이성오 서울취재팀장
입력 : 2024. 01. 14(일) 15:51

[데스크칼럼]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손에 넣은 박정희 정부의 군사독재가 시작되면서 호남은 소외와 낙후의 늪에 빠진다. 수도권과 영남 중심의 거점개발과 불균형 성장의 폐해를 고스란히 안게 된 호남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 출로를 찾아왔다. 그 출로에서 만난 정치인이 고(故) 김대중 대통령(DJ)이다.
DJ가 군사독재 속에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야당의 유력인사로 떠오르자 호남은 그에게 희망을 걸었고, 그와 함께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1980년 광주에서 발생한 5·18의 진상이 전국으로 알려져 1987년 6월 항쟁이 터진 이후, 제13대 국회의원선거부터 호남은 줄곧 DJ가 이끄는 정당(평화민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의회, 새천년민주당)에 사실상 올인하며 그의 대선 가도를 지원했다.
그 고난의 행군은 마침내 1998년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리하여 DJ가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공식 취임하면서 끝을 맺는가 싶었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에 이어 미진한 개혁을 마무리하고 진보 진영으로 넘어온 정권을 이어나갈 후계자가 절실했고, 호남은 그 후계자로 고 노무현 대통령을 택했다. 호남은 당시 각종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당시 고작 1%의 지지율에 불과했던 노무현을 힘껏 밀어 광주 경선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줄곧 그를 도와 마침내 정권을 계승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러나 취임하자마자 국회를 통과한 ‘대북송금특검 법률안’에 대해 진보 진영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대북송금특검법은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돈을 주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했다는 의혹을 특별검사를 임명해 파헤치는 법이다.
결국 이 법의 시행으로 인해 민주당의 주류를 형성해온 동교동계와 호남 정치세력은 사실상 정치적 기반을 잃고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노 대통령은 또 임기 말에 대선을 앞두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통합을 추진하자 “나더러 다시 ‘호남당’ 하라는 말이냐”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2008년, 정권은 보수 진영으로 넘어갔고 2013년에 또 보수 진영이 정권을 이어받았다.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잃자 호남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호남정치 복원’이라는 아젠다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 아젠다에는 호남 정치세력이 김대중 정부 시절처럼 정가의 핵심세력이 되기를 기대하는 지역민의 염원이 담겨 있다. 보수 정권 10년은 그만큼 정치적 반전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 2015년 2월, 문재인 의원과 박지원 의원이 맞붙은 민주당 전당대회는 신구 주류가 외나무다리에서 벌인 건곤일척의 승부였다. 옛 민주당 세력과 호남을 등에 업은 박 의원은 신주류를 형성한 수도권과 영남의 친문계의 호위를 받는 문 의원에게 간발의 차로 패하고 만다.
문재인 후보가 당권을 잡은 이후 친문세력과 호남세력의 충돌이 잦아졌고, 호남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신당 창당 모색 등 새로운 출구를 모색한다. 급기야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 신설된 국민의당에게 모든 것을 거는 모험을 감행했다. 국민의당은 당시 총선에서 녹색 돌풍을 일으키며 일약 원내 세 번째 정당으로 도약했다.
이후 세월호 사태와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받으면서 진보진영은 다시 정권을 찾아올 기회를 맞게 됐다. 박 대통령 탄핵은 제3당인 국민의당의 역할이 없었다면 거대 양당체제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정치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하지만 지난 2019년 치러진 대선에서 호남은 각종 선거운동에서 보수 성향을 보이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대신 진보 성향이 두드러진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듬해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호남은 국민의당을 버리고 다시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다.
호남 지역민들은 호남 정치세력들이 진보 진영에서 주도권을 쥐고 이끌어 나갈 것을 늘 고대한다. 하지만 국민의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면서 호남 중진들이 대거 정리된 상황이었기에 정치력을 발휘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때마다 호남 단일 후보를 내세워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세 번 모두 번번이 실패했다.
호남 정치세력은 변방으로 추락했다. 이는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 등의 외생적 변수가 작용한 탓도 크지만 호남 정치인들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제 제22대 국회의원총선거를 불과 80여 일 앞두고 있다. 호남은 과연 어떤 선택을 통해 호남정치 복원에 한 걸음 다가설까.
DJ가 군사독재 속에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야당의 유력인사로 떠오르자 호남은 그에게 희망을 걸었고, 그와 함께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1980년 광주에서 발생한 5·18의 진상이 전국으로 알려져 1987년 6월 항쟁이 터진 이후, 제13대 국회의원선거부터 호남은 줄곧 DJ가 이끄는 정당(평화민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의회, 새천년민주당)에 사실상 올인하며 그의 대선 가도를 지원했다.
그 고난의 행군은 마침내 1998년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리하여 DJ가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공식 취임하면서 끝을 맺는가 싶었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에 이어 미진한 개혁을 마무리하고 진보 진영으로 넘어온 정권을 이어나갈 후계자가 절실했고, 호남은 그 후계자로 고 노무현 대통령을 택했다. 호남은 당시 각종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당시 고작 1%의 지지율에 불과했던 노무현을 힘껏 밀어 광주 경선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줄곧 그를 도와 마침내 정권을 계승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러나 취임하자마자 국회를 통과한 ‘대북송금특검 법률안’에 대해 진보 진영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대북송금특검법은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돈을 주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했다는 의혹을 특별검사를 임명해 파헤치는 법이다.
결국 이 법의 시행으로 인해 민주당의 주류를 형성해온 동교동계와 호남 정치세력은 사실상 정치적 기반을 잃고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노 대통령은 또 임기 말에 대선을 앞두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통합을 추진하자 “나더러 다시 ‘호남당’ 하라는 말이냐”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2008년, 정권은 보수 진영으로 넘어갔고 2013년에 또 보수 진영이 정권을 이어받았다.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잃자 호남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호남정치 복원’이라는 아젠다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 아젠다에는 호남 정치세력이 김대중 정부 시절처럼 정가의 핵심세력이 되기를 기대하는 지역민의 염원이 담겨 있다. 보수 정권 10년은 그만큼 정치적 반전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 2015년 2월, 문재인 의원과 박지원 의원이 맞붙은 민주당 전당대회는 신구 주류가 외나무다리에서 벌인 건곤일척의 승부였다. 옛 민주당 세력과 호남을 등에 업은 박 의원은 신주류를 형성한 수도권과 영남의 친문계의 호위를 받는 문 의원에게 간발의 차로 패하고 만다.
문재인 후보가 당권을 잡은 이후 친문세력과 호남세력의 충돌이 잦아졌고, 호남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신당 창당 모색 등 새로운 출구를 모색한다. 급기야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 신설된 국민의당에게 모든 것을 거는 모험을 감행했다. 국민의당은 당시 총선에서 녹색 돌풍을 일으키며 일약 원내 세 번째 정당으로 도약했다.
이후 세월호 사태와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받으면서 진보진영은 다시 정권을 찾아올 기회를 맞게 됐다. 박 대통령 탄핵은 제3당인 국민의당의 역할이 없었다면 거대 양당체제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정치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하지만 지난 2019년 치러진 대선에서 호남은 각종 선거운동에서 보수 성향을 보이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대신 진보 성향이 두드러진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듬해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호남은 국민의당을 버리고 다시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다.
호남 지역민들은 호남 정치세력들이 진보 진영에서 주도권을 쥐고 이끌어 나갈 것을 늘 고대한다. 하지만 국민의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면서 호남 중진들이 대거 정리된 상황이었기에 정치력을 발휘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때마다 호남 단일 후보를 내세워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세 번 모두 번번이 실패했다.
호남 정치세력은 변방으로 추락했다. 이는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 등의 외생적 변수가 작용한 탓도 크지만 호남 정치인들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제 제22대 국회의원총선거를 불과 80여 일 앞두고 있다. 호남은 과연 어떤 선택을 통해 호남정치 복원에 한 걸음 다가설까.
이성오 기자 solee235@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