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봄, 그리고 서울의 봄…
김상훈 뉴미디어문화본부장
입력 : 2023. 12. 17(일) 16:13
[김상훈의 세상읽기] #1. ‘프라하의 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에트연방(이하 소련)의 통제 아래 있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1968년 1월 5일 공산당 제1서기로 집권한 알렉산데르 둡체크는 표현의 자유를 늘리고 권력을 분산시키며 경제를 자유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일련의 개혁을 시행했다.

이 개혁은 1953년 공산당 제1서기에 이어 1957년 대통령까지 겸직한 안토닌 노보트니가 1960년대 후반까지 공산당 1당 독재 등 강력한 전제정책을 펼치면서 이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한 것이었다. 공산주의하의 개혁경제 실패, 슬로바키아의 자치요구 등 곳곳에서 터져 나온 불만도 여기에 한몫했다.

알렉산데르 둡체크는 야당 합법화, 보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이동의 자유 제한 폐지 등을 담은 ‘자유화 행동 계획’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비밀경찰의 권력 제한, 체코슬로바키아를 2개의 동등한 나라로 연방화, 계획경제에 자유시장경제 접목, 서방국가와의 관계 개선 등 다양한 개혁조치도 들어 있었다.

공산당 주도 아래 점진적으로 추진될 예정이었던 이 계획은 국민들의 열망에 의해 즉각 시행됐다. 언론에서는 처음으로 정치 논평이 등장했고 개별 정당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8개월도 채 못돼 좌초됐다. 이 같은 개혁이 달갑지 않았던 소련은 그해 8월 20일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인 불가리아, 폴란드, 헝가리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다. 이에 국민들은 비폭력 시위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공산당 체제의 복원과 막대한 영향력 행사를 원했던 소련은 장갑차와 탱크를 앞세워 무고한 시민들을 사살하며 1989년까지 이곳에 주둔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다시 공산당 1당 독재 체제로 복귀했지만 ‘프라하의 봄’으로 명명된 개혁은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결국 1989년 공산 통치 종식과 자유화를 요구하는 피를 흘리지 않는 평화적 시위인 ‘벨벳 혁명’이 일어났고 최초의 자유 선거를 실시해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2

아랍의 봄은 2010년 12월에 시작된 북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의 반정부 시위 및 혁명을 일컫는 용어다.

이들 시위는 당시 중앙정부 및 기득권의 부패와 타락, 빈부의 격차, 높은 청년 실업률로 인한 대중의 분노 등이 발생 원인이었다.

먼저 튀니지에서는 2010년 12월 17일, 한 청년의 분신 자살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정권에 대한 항거로 이어져 ‘재스민(튀니지 국화) 혁명’으로 이어졌고 이듬해 1월 14일, 24년간 지속되던 벤 알리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 혁명 소식은 다양한 소셜 미디어와 언론을 통해 걸프의 왕정 국가들, 북아프리카의 독재 국가들로 확산됐다.

이집트에서는 2011년 1월 25일부터 대규모 시위가 발생해 1981년부터 30년간 집권을 이어오던 무하마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또 리비아에서는 2011년 2월 15일, 42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 온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정권에 맞서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돼 그해 10월 시위대가 하수구에 숨어있던 카다피를 사살하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예멘에서도 2011년 1월 27일, 수도 사나에서 실업과 경제 불황, 부패 척결 및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그해 11월까지 무력충돌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33년간의 독재정권이 막을 내렸다.

아랍의 봄으로 이들 나라에서는 장기 독재 집권 세력은 축출했지만 튀니지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는 민주화 및 정권교체를 성공적으로 이행하지 못해 여전히 무정부 상태 및 산발적인 반정부 시위에 시달리고 있다.



#3

우리나라 1979년 12월 12일 발생한 군사 쿠데타를 소재로 한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세간의 화제다. 개봉 25일인 지난 16일 관람객이 849만명을 넘어서는 등 1000만 관객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무거운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에 대해 평론가들은 소위 신군부 세력들의 권력 찬탈 과정을 실감 나게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서울의 봄’은 1963년 취임 후 16년간 장기집권하며 독재정치를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당한 1979년 10월 26일부터 5·18 민주화운동 직전인 1980년 5월 17일까지 벌어진 민주화 운동 시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서울의 봄’ 역시 이들 쿠데타 세력에 의해 당시에는 실패로 끝났지만 민주화 열망은 그 후로도 계속됐고 민주정부 탄생의 계기가 됐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내년에도 경제가 암울할 것이라는 전망만 들려오고 있다. 이에 아랑곳 않고 여전히 극한 대립만 일삼고 있는 여야 정치권의 행태가 정말 한심한 세밑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내년에도 경제가 암울할 것이라는 전망만 들려오고 있다. 이에 아랑곳 않고 여전히 극한 대립만 일삼고 있는 여야 정치권의 행태가 정말 한심한 세밑이다. 김상훈 기자 goart001@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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