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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사에서 만난 일상
고선주 문화체육부장

2023. 11.05. 18:10:44

고선주 문화체육부장

[데스크칼럼] 분주한 일상으로 인해 한적한 산사 한번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큰 마음을 먹지 않으면 찾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는 사찰의 문턱이 높은 게 아니라 우리들의 복잡다단한 일상의 문턱이 높은 게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종교가 어디까지 우리들의 아픈 심신을 다독여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신실한 믿음이 좌우하겠지만 말이다. 어떤 때는 사찰을 찾아도 달궈진 머리가 도무지 식지 않을 때가 있다. 결국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달궈진 심신이 식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렇다.

지난주 금요일 전남 보성을 방문할 일이 있어 다녀왔다. 부친상 뒤끝이라 심신은 지쳐있고, 내면은 심약할 대로 심약해 있어 그냥 산사로 접어들었다. 형님 내외를 떠나보내며 흘릴 눈물을 다 흘렀다고는 하지만 다시 11년 만에 맞닥뜨린 부친상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없었는데 이제 부친의 부재에 관한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고 있다. 산사에 가도 대충 올리던 불공이 한층 더 진지해졌다.

이날 모처럼 눈에 들어온 주암댐은 올초 제한급수라는 근심을 안겨주던 때를 망각한 듯 수량이 제법 들어 차 댐의 위용을 자랑했다. 봄이면 6㎞에 달하는 벚꽃 길로 인해 이곳 사찰의 진입로는 먹통이 되곤 한다. 산사로 가는 길이 전국적으로 아름다운 벚꽃길로 이름 난 덕분이다. ‘한국 100대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곳이다. 드론을 띄워 항공샷으로 이곳 벚꽃길을 잡으면 마치 만리장성이 산능선을 타고 넘어가는 듯한 모습이다.

지금 가로수길에는 꽃이 없다. 다만 봄철에 나들이 와본 사람들이라면 이곳 벚꽃길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사람이 없을 터다. 개발이 덜된 탓에 길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는데다 중간에 싹뚝 잘려나간 벚나무들이 많지 않아 더더욱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다. 그렇기에 드라이브길로 적격이라는 이야기다.

가을의 가로수길은 비움의 시즌답게 나무들은 벌써 회색빛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하지만 아직 지지 않은 이파리들은 빨갛고 누렇게 물들어가고 있어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장관을 연출했다.

주암호 상류를 거슬러 보성군립백민미술관을 지나 자리한 송광사 말사 대원사에서의 풍경이다. 몇 차례 방문한 대원사는 진입로(관문)가 아름다운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너무 장식이 많이 돼 있어 약간 거슬린다는 반응도 없지는 않다. 이날 대원사를 방문해 가을을 잘 느끼고 왔다는 넋두리를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필자는 사찰을 방문할 때 진입로가 아름다운 사찰을 선호한다. 일전에 다녀온 부안 내소사도 그랬다. 진입로에서 시끄러운 자아를 다스릴 수 있었다. 특히 차를 버리고 거닐며 뜨거워진 자아를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어 더 좋다. 그런 사찰 중 한 곳이 대원사다.

대원사는 천봉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일찌기 필자는 현장 대원사 회주스님을 익히 잘 알고 있던 터라 더 정겨운 마음을 가지고 경내에 들어섰다. 이날 경내에 든 것은 사찰 인사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실감과 허망감이 그곳으로 이끌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대원사는 진입로가 압도적 아름다움을 보이는 곳이라 극락전에 이르기 전 이미 감동에 취할 수 밖에 없다. 아예 ‘이 근방에 창작실 하나 내어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내에 들어서기 전 ‘우리는 한 꽃’이라는 명패가 붙은 일종의 출입문과 아담하게 조성된 진입로를 밟고 연지에 도달하면 어떤 이상향에 도달한 듯 착각에 빠져든다. 지금 풍경은.

방문하던 날, 먼지 묻은 가을을 씻기고 있었던 것일까. 연지에는 노란 이파리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듯 했다. 태안지장보살이나 수관정, 어린왕자선문학관, 티벳박물관, 김지장 성보박물관 등 독특한 시설이 많아 논할거리가 많지만 필자는 진입로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문화든 첫 관문이 중요하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영역이 첫 관문을 찾지 못하고 삐거덕거리는 형국이다. 세상의 이치가 이곳에서 만난 궁극의 아름다운 관문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산사는 세상과는 별개로 아늑하고 고요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첫 관문을 찾지 못하고 시끄럽다. 편하지가 않다. 날마다 쏟아지는 뉴스를 따로 챙겨 보기가 겁이 날 정도다.

그래서 잠시 피안에 들고 싶었던 마음이 앞섰던 모양이다. 극락전에서 향초 하나 꽂고 진심을 다해 삼배를 올렸다. 아버지의 극락왕생과 가족의 안녕, 그리고 시끄러운 세상의 평안한 고요를 간절하게 기원했다. 필자 역시 잘 찾지 못하고 흐트러진 삶의 관문을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나 곰곰하게 생각해본다.

가을이 깊어간다. 불쑥 겨울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기 전 산사로 삶의 관문을 찾기 위해 사색여행을 한번 떠나보기를 권한다. 적어도 세속의 일상을 깨울 수 있을 것이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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