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인구, 관계인구, 복수주소제
강성휘 전남도사회서비스원 원장
입력 : 2023. 09. 18(월) 20:54
[광남시론] 인구 문제로 지방소멸에 이어 국가소멸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지방소멸이 현실로 인식되면서 정부는 물론이고 각 지자체들도 너나없이 인구감소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관심과 투입에 비해 효과는 신통치 않다.



○일본의 관계인구



지방 인구감소 위기를 우리나라보다 먼저 겪은 일본은 지방 상생 정책의 일환으로 2018년부터 관계인구 정책을 도입했다. 관계인구는 ‘일상생활권과 통근권 이외의 특정 지역과 계속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관계를 맺고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현재 일본은 74개 지역에 관계인구 관련 정책 패키지를 지원하고 있다. 패키지는 △관계인구 창출·확대를 위한 환경정비 △아이들의 농산어촌체험 지원 △고등학생 지역유학 추진 △산업인재 교류 촉진 △지방거주 본격적 추진 등이다. 일본의 연구에 의하면 인구의 15%는 거주지뿐 아니라 다른 지역과 다양한 형태로 관계를 맺고 그 지역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관계인구’ 정책의 효과다.



○독일의 복수주소제



지난 3월 23일 열린 영·호남 시·도지사 협력회의에서는 4도(都) 3촌(村)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 과제로 독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복수주소제’ 도입의 필요성을 담은 공동성명서를 채택했다. 복수주소제는 생활인구와 유사한 개념으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체류하는 사람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수도권에 거주하는 주민이 고향이나 은퇴 후 살고 싶은 지역을 복수 주소지로 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독일의 복수주소제는 주 거주지와 부 거주지로 구분된다. 법률적으로 주 거주지는 거주자가 주로 사용하는 주택이고, 부 거주지는 독일 내 추가적인 주택을 의미한다. 두 개의 주소를 신고한 사람은 두 지역의 지방세를 납부하는 대신 양 지역을 이동할 때 발생하는 교통비 등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독일의 복수주소제와 관련 조세제도는 현실적인 인구변화를 반영하면서 지자체의 세수확보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새로운 인구개념 ‘생활인구’



우리나라도 올해 처음으로 ‘인구감소지역 지원특별법’을 통해 인구문제 대응에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했다. 생활인구는 기존 주민등록 주소 인구뿐 아니라 통근·통학·관광 등을 위해 지역에서 체류하면서 지역의 실질적인 활력을 높이는 사람까지를 지역의 인구로 보는 새로운 개념이다. 정주인구에 더해 월 1회, 하루 3시간 이상 체류하는 사람과 외국인으로 구성된다. 이어 지난 8월 3일 행정안전부가 인구감소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 마련을 위해 생활인구 시범산정 대상지역 7개 시·군을 선정해 발표했는데 전남 영암군도 포함되었다.



영암 대불산단의 경우 인접 목포와 무안지역 통근자가 많아 생활인구 연구 결과를 산단 내 노동자 복합문화센터 확충, 노동자 임대주택 확대, 입주기업 지원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도내 주말 비숙박 관광객이 많은 지역은 생활인구의 성별·연령대 분석을 통해 맞춤형 관광·숙박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관광객 체류시간 연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생활인구와 관련된 프로그램으로 전남에서 운영 중인 ‘전남농산어촌유학’이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초·중학생이 일정 기간 농촌으로 전학을 가 도시 생활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생태학습 등의 교육을 체험하는 내용이다. 이 밖에도 제주도 구좌읍에서 운영 중인 일과 휴가를 동시에 하는 ‘지역 워케이션’ 프로그램, 경기도의 ‘학일마을 살아보기’, 목포시의 ‘한 달 살기’ 등이 생활인구와 관련된 프로그램들도 꾸준히 시도되어 왔다.



○제로섬 게임에서 공동성장형 인구정책으로



현재 우리나라 각 지자체들에서 시행하고 있는 출산장려금이나 전입지원금 시책은 정주인구 유출을 막는 기능이 있지만 동시에 타 지역 정주인구를 빼앗는 특징도 있다. 지자체간 경쟁을 부추기는 시책인 셈이다. 전체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정주인구를 늘리려는 노력은 다른 지역 인구를 뺏는 제로섬 게임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관계인구와 독일의 복수주소제는 다른 지역과 소모적인 경쟁을 지양하고 함께 인구를 늘릴 수 있는 의미 있는 대안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생활인구도 같은 맥락이다.

전남과 같은 초고령 지역은 생활인구 개념이 도시계획에서 더 요긴할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들은 지금까지 정주인구 증가를 전제로 도시계획을 짜왔다. 주로 시가화 구역을 확장하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 신·구도심 불균형은 더 심화되었고, 과잉 계획들이 도시를 흔들어왔다. 인구증가라는 기본 전제가 무너진 시대에 생활인구를 반영한 진일보한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인구에 맞춰 개인과 기업이 유연하게 생존전략을 구사하듯 국토와 도시도 인구변화에 맞춰 적절한 재구조화 전략이 필요하다. 단순 정주인구에서 생활인구와 같은 새로운 인구개념을 잘 정립해 정책에 담는다면 함께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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