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들이 역사적 기억 깨우는 수단 됐으면
[남도예술인]사진작가 이세현
국가폭력 자행된 공간·장소 독창적 시각 재해석
5·18 항쟁 등 주목…‘묻힌 서사’ 공감 위해 노력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가볼 것"…경산서 개인전도
국가폭력 자행된 공간·장소 독창적 시각 재해석
5·18 항쟁 등 주목…‘묻힌 서사’ 공감 위해 노력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가볼 것"…경산서 개인전도
입력 : 2023. 09. 14(목) 18:18

그의 작업들은 철저하게 역사의식에 기반돼 이뤄진다. 근현대 공간이나 스토리로부터 아직은 묻혀진 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서사들을 끄집어내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정을 지속한다. 그는 이미 광주·전남이나 제주 등지에서 국가폭력이 자행된 대표적 공간과 장소를 찾아 자신만의 독창적 시각에 의한 해석을 곁들여 작품을 형상화한다.
그의 예술가로서의 시선은 오늘날 우리들 안팎의 아픔으로 더욱 더 노골화돼 자리를 잡은 상처들에서부터 그 상처들의 이면에 가리워진 얼룩들을 호출해낸다. 그는 최근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에 서린 아픔을 목도했다. 광주전남지역의 5·18항쟁에 대한 인식 격차보다 대구·경북이 바라보는 코발트 광산에 서린 아픔에 대한 인식 격차는 놀라울 정도로 컸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물론 예술 작품으로 형상화해 전시를 통해 선보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 전시(2022년 10월9∼31일)인 ‘한지 하우스 프로젝트2’ 참여 작가로 신작을 출품해 미술계 안팎 주목을 받기도 했다. 주인공은 전남 곡성 출생 젊은 사진작가 이세현씨다. 그의 작업실이 있는 월산동 동신대 한방병원 뒤 아래 쪽 골목 근처에서 헤매고 있는 필자를 위해 기꺼이 골목으로 마중을 나와줬다. 카카오내비가 앞 골목에 데려다준 덕분이다.
양옥 가정집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은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마주할 수 있다. 아래층에는 아내와 자녀가 쓰고 있고, 위층은 자신이 작업실로 쓰고 있는 듯했다. 반듯하게 잘 정돈된 책장 앞에 앉아 그와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대화를 하는 내내 전업 작가로서 꿋꿋하게 현실의 파고를 헤쳐나가는 그의 의기가 느껴져 지금보다 더 강인한 작가정신을 발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이 작가와의 인연은 짧지 않지만 그를 심층 취재해보지는 못했다. 차일피일 미뤄진 덕분이다. ‘언젠가는 꼭 한번 해야지’라고 하는 마음가짐은 이미 오래 전에 든 생각이었다. 드디어 그의 예술세계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그는 최근 경산 대안공간 ‘보물섬’ 초대전인 개인전(7.26∼ 8.19)을 성황리에 마쳤다. 이 전시는 코발트광산의 비극적 사건에 대해 그가 새로운 인식을 가져간 계기가 됐다. 코발트광산은 수평굴과 수직굴로 이뤄졌는데, 이중 수직굴은 3000여명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광주 5·18항쟁 역시 진상 규명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지만 코발트 광산은 역사적 진실에 가닿기 위한 험로가 바로 눈앞에 놓여진듯한 인상을 받았다. 작가는 수직굴을 드나들며 볼 수 있었던 유골을 보면서 ‘몰라서 기억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자신의 작업이 쓸모있는 작업이 되기를 간절하게 희망했다.
비단 이처럼 극단적 비극의 공간에만 집착하거나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업 촉수는 일상을 기억하다보니 사건이 됐고, 역사가 된 것이라는 인식을 너무 잘 간파하고 있다. 하나의 기억이 매개체가 됐으면 하는 게 그의 작업 포인트다.
이같은 작업 포인트를 정립하기까지 충북 영동 노근리 사건을 비롯해 제주4·3이나 여순10·19, 광주5·18항쟁 등 장소들을 누벼가며 자신만의 작업 방향 토대를 다진 셈이다. 그냥 어느날 갑자기 나온 작업 방향은 아닌 것이다. 그 나름대로 발품을 팔아 터득했다고 보면 된다.
“민감한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아무래도 광주 기반의 작업을 하다보니 다른 지역의 공간이나 사건에 대해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광주를 베이스로 해 펼쳐나가는 제 작업에 대한 오해 격차가 줄어드는 이유는 5·18항쟁 때문으로 보고 있죠. 저는 광주에서 성장하고 여전히 머물며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시위 및 데모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유년기 한때 늘 최루탄 냄새를 벗어날 수 없었어요. 시내에서 대립들을 많이 하는 것을 접하며 성장한 것이 여러 오해를 달래준다고 할 수 있겠죠.”

그는 코로나19 이후 어려운 전업예술가의 자리를 피하지 않고 꿋꿋하게 작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한때 사진예술가와 기자 사이를 넘나들었던 듯하다. 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많은 시위현장들을 찾아 카메라 앵글에 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대통령 서거 현장이나 태안기름유출사고 현장, 강원 고성 산불 현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방문해 사진에 대한 열정을 발휘했다.
그렇다고 그는 널리 알려진 사건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일상이 사건이 되고, 역사가 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작업에 임한다. 여기에는 많은 기억과 행위가 투영돼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물론 한때 역사가 된 것만 집착하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일상적인 것들에 집중하려 한다. 이 또한 먼 훗날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자기 예술적 방향을 확실하게 정립하고 있는 그지만 유년시절에는 운동을 좋아해 체육을 생각했다고 한다. 고 3년 담임 선생님의 사진학과 추천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학 입학 전까지 그는 사진에 관한한 문외한이었다. 사진을 알지 못한 채 대학 사진학과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최광호 사진작가가 수업 중인 사진학과 3학년 대상 강연 ‘예술사진실기’를 접한 뒤 사진이 자신의 마음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사진학과를 입학한 이면에는 진짜 사진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여행을 너무 좋아해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앞뒤 재지 않고 사진학과에 들어간 것이다. 여행을 가면 사진을 실컷 찍을 수 있다는 생각이 사진학과에 진학한 이유다. 최광호 사진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사진 출발선상에 있는 존재라고 밝힌다.
대학시절 ‘파인아트’와 ‘다큐 사진’ 등 두 가지 전공을 했다. 앞서 언급했듯 기자를 해보라는 유혹이 많았지만 결국 예술가를 선택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히려 다큐 쪽 사진 공부를 해둔 것이 파인아트에 상보적 역할이 돼 한층 더 깊이를 꾀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 잘 하고 있는 걸까 제 자신에 묻곤 하죠. 중간에 유혹을 많이 받았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오늘날까지 오게 된 동력이 됐거든요. 역사적 의식을 바탕으로 예술가의 개입을 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는데 향후 새로 나올 작업들 역시 이런 흐름을 유지하고 지속해 갈 것 같습니다.”
그는 작가의 개입이 이뤄진 ‘역사적 장소의 기념 사진’이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이처럼 작가의 작은 행위 하나가 다수의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점을 사진의 매력으로 꼽았다.
이 작가는 현재까지 ‘장소적 작업’에 치중해 왔다면 앞으로 ‘형태적 작업’에 빛과 결합한 작업을 해볼 계획을 내비친 가운데 ‘지치지 않고 작업을 펼치는 작가로 남고 싶다’는 희망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변함없이 지치지 않고 작업을 하는 작가로 기억됐으면 하죠. 매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야 했듯이 제가 어느 시기에 넘어가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죠. 수면 아래보다는 보여지는 것들 중 잊혀져 가는 공간이나 계속 기억돼지는 것들의 뒤에 있는 이야기까지 호출하면 좋을 것 같아요. 누군가가 제 작품을 보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적 기억을 깨우는 수단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치지 않고 가보는 데까지 가볼까 해요.”
그의 예술가로서의 시선은 오늘날 우리들 안팎의 아픔으로 더욱 더 노골화돼 자리를 잡은 상처들에서부터 그 상처들의 이면에 가리워진 얼룩들을 호출해낸다. 그는 최근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에 서린 아픔을 목도했다. 광주전남지역의 5·18항쟁에 대한 인식 격차보다 대구·경북이 바라보는 코발트 광산에 서린 아픔에 대한 인식 격차는 놀라울 정도로 컸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물론 예술 작품으로 형상화해 전시를 통해 선보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 전시(2022년 10월9∼31일)인 ‘한지 하우스 프로젝트2’ 참여 작가로 신작을 출품해 미술계 안팎 주목을 받기도 했다. 주인공은 전남 곡성 출생 젊은 사진작가 이세현씨다. 그의 작업실이 있는 월산동 동신대 한방병원 뒤 아래 쪽 골목 근처에서 헤매고 있는 필자를 위해 기꺼이 골목으로 마중을 나와줬다. 카카오내비가 앞 골목에 데려다준 덕분이다.
양옥 가정집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은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마주할 수 있다. 아래층에는 아내와 자녀가 쓰고 있고, 위층은 자신이 작업실로 쓰고 있는 듯했다. 반듯하게 잘 정돈된 책장 앞에 앉아 그와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대화를 하는 내내 전업 작가로서 꿋꿋하게 현실의 파고를 헤쳐나가는 그의 의기가 느껴져 지금보다 더 강인한 작가정신을 발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이 작가와의 인연은 짧지 않지만 그를 심층 취재해보지는 못했다. 차일피일 미뤄진 덕분이다. ‘언젠가는 꼭 한번 해야지’라고 하는 마음가짐은 이미 오래 전에 든 생각이었다. 드디어 그의 예술세계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518 Square’

알뜨르비행장(제주 서귀포 소재)
비단 이처럼 극단적 비극의 공간에만 집착하거나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업 촉수는 일상을 기억하다보니 사건이 됐고, 역사가 된 것이라는 인식을 너무 잘 간파하고 있다. 하나의 기억이 매개체가 됐으면 하는 게 그의 작업 포인트다.
이같은 작업 포인트를 정립하기까지 충북 영동 노근리 사건을 비롯해 제주4·3이나 여순10·19, 광주5·18항쟁 등 장소들을 누벼가며 자신만의 작업 방향 토대를 다진 셈이다. 그냥 어느날 갑자기 나온 작업 방향은 아닌 것이다. 그 나름대로 발품을 팔아 터득했다고 보면 된다.
“민감한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아무래도 광주 기반의 작업을 하다보니 다른 지역의 공간이나 사건에 대해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광주를 베이스로 해 펼쳐나가는 제 작업에 대한 오해 격차가 줄어드는 이유는 5·18항쟁 때문으로 보고 있죠. 저는 광주에서 성장하고 여전히 머물며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시위 및 데모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유년기 한때 늘 최루탄 냄새를 벗어날 수 없었어요. 시내에서 대립들을 많이 하는 것을 접하며 성장한 것이 여러 오해를 달래준다고 할 수 있겠죠.”

광주 옛국군통합병원

노근리 물가에서(충북 영동)
그렇다고 그는 널리 알려진 사건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일상이 사건이 되고, 역사가 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작업에 임한다. 여기에는 많은 기억과 행위가 투영돼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물론 한때 역사가 된 것만 집착하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일상적인 것들에 집중하려 한다. 이 또한 먼 훗날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자기 예술적 방향을 확실하게 정립하고 있는 그지만 유년시절에는 운동을 좋아해 체육을 생각했다고 한다. 고 3년 담임 선생님의 사진학과 추천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학 입학 전까지 그는 사진에 관한한 문외한이었다. 사진을 알지 못한 채 대학 사진학과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우연히 최광호 사진작가가 수업 중인 사진학과 3학년 대상 강연 ‘예술사진실기’를 접한 뒤 사진이 자신의 마음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사진학과를 입학한 이면에는 진짜 사진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여행을 너무 좋아해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앞뒤 재지 않고 사진학과에 들어간 것이다. 여행을 가면 사진을 실컷 찍을 수 있다는 생각이 사진학과에 진학한 이유다. 최광호 사진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사진 출발선상에 있는 존재라고 밝힌다.

사진작가 이세현씨는 “변함없이 지치지 않고 작업을 하는 작가로 기억됐으면 한다. 누군가가 제 작품을 보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적 기억을 깨우는 수단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 잘 하고 있는 걸까 제 자신에 묻곤 하죠. 중간에 유혹을 많이 받았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오늘날까지 오게 된 동력이 됐거든요. 역사적 의식을 바탕으로 예술가의 개입을 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는데 향후 새로 나올 작업들 역시 이런 흐름을 유지하고 지속해 갈 것 같습니다.”
그는 작가의 개입이 이뤄진 ‘역사적 장소의 기념 사진’이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이처럼 작가의 작은 행위 하나가 다수의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점을 사진의 매력으로 꼽았다.
이 작가는 현재까지 ‘장소적 작업’에 치중해 왔다면 앞으로 ‘형태적 작업’에 빛과 결합한 작업을 해볼 계획을 내비친 가운데 ‘지치지 않고 작업을 펼치는 작가로 남고 싶다’는 희망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변함없이 지치지 않고 작업을 하는 작가로 기억됐으면 하죠. 매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야 했듯이 제가 어느 시기에 넘어가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죠. 수면 아래보다는 보여지는 것들 중 잊혀져 가는 공간이나 계속 기억돼지는 것들의 뒤에 있는 이야기까지 호출하면 좋을 것 같아요. 누군가가 제 작품을 보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적 기억을 깨우는 수단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치지 않고 가보는 데까지 가볼까 해요.”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