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이여,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 질문해 보라
강경호 시인·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입력 : 2023. 09. 03(일) 11:13

강경호 시인·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문화산책]지난 주말에 ‘전국 계간문예지 편집자회의’ 참석차 제주에 다녀왔다. 1999년에 발족하여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회원사들은 각 지역을 대표하는 문예지들이다. 그동안 지역문학을 활성화하고 지역문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 개진해왔다. 이른바 중앙으로 지칭되는 서울 중심의 문단 권력이 어느 정도 지역으로 분산된 듯한 효과를 얻었다고 생각되나, 서울을 중심으로 여기는 한국문학의 중앙집권화 현상은 여전히 견고하다.
30여 년 동안 모든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문예지를 발간하는 일은 어지간한 사명감 없이는 엄두를 못 내는 일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펴내는 문예지이기 때문에 문예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역성을 선명하게 담아내거나 타 문예지와의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 끊임없이 다양한 주제를 설정하고 대담이나 담론을 통해 참신한 내용을 발굴해 왔지만,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모든 편집자의 고충이다.
최근 필자가 관심을 두는 분야는 문학과 타 장르간의 융복합 문제이다. 문학과 다른 장르 간에는 친연성도 있지만 독자성도 있으므로 인접 장르 간의 통섭은 상호 교호하면서 새로운 예술을 낳을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은 예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예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살기 좋은 세상,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세상, 불화가 없는 세상,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세상,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일조할 것으로 믿는다.
‘전국 계간문예지 편집자회의’에서 몇 가지 논의가 있었다. 그중에 하고 싶은 말은 지극히 편협하고 불편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을 왜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기도 하다.
서울 중심의 문학권력을 우리는 ‘거대한 공룡’이라고 한다. 문학권력은 문학작품 수준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출판시장에서도 지방을 블랙홀처럼 모두 빨아들이는 고약한 힘이기도 하다. ‘거대한 공룡’의 가장 큰 문제는 거대 자본의 폭력성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방화시대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여러 차례 답을 구해왔다. 지역에도 훌륭한 문예지와 출판사가 있지만 서울(중앙)이 최고라는 작가들의 인식이 지역 문예지와 출판사를 위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문예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문인으로 낳아주고 발표지면을 제공하여 양육해 줘도 그것을 배반하고 서울을 해바라기하는 문인들이 있어 마음 아프고 불편하다. 지역 문인들이 지역문예지와 출판사를 성장시켜야 지역문예지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서울이라는 막연한 허명을 좇아가는 정신이야말로 문인의 자격이 없다는 증명이다.
이번 제주 행사에서 서울의 모 잡지사 발행인이 ‘좋은 출판사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 운운하였다가 타 회원사의 지탄을 받았다. 문인이 근본적으로 훌륭한 글을 써야 스스로 빛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좋은 출판사, 안 좋은 출판사의 기준보다도 얼마나 훌륭한 작가인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도 좋은 출판사의 기준이 모호한 현실에서 자신을 낳아주고 성장시켜준 지역을 외면하고 서울만을 바라보는 문인의 정신은 작품성보다도 서울이라는 이름에 기댄 부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지금까지 내 쏟은 말들은 작품집 출간에 관한 이야기다. 열악한 지역출판사를 위해 지역 출신 문인들이 지역출판사에서 출간할 때 지역문학이 더욱 성장할 수 있다.
서울의 모 문예지와 출판사도 이번 회의에서 도마에 올랐다. 여러 개의 문학상을 남발하여 결과적으로는 조삼모사식으로 문인들을 홀려 출판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문인들에게 모두 상을 만들어주는 행태가 횡행함은 몇몇 지방 출판사도 마찬가지이다. 온갖 이름으로 상을 주며, 문학의 본질을 살펴보기보다는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세를 과시하는 기묘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이번 차제에 지역 상생 차원에서라도 광주·전남에서 받은 창작지원금은 우리 지역에서 소비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문학은 인간에게 정서적 풍요로움과 함께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언어예술이다.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온갖 악취를 풍기며 시정잡배들보다 못한 자본과 허명을 꿈꾸는 자가 있다면 이제 얼굴에 쓴 문인의 탈을 벗으시길 권한다.
서울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자신의 빈곤을 감추고자 하는 문인이 있다면 이제 글을 그만 쓰시라고 진심으로 권면한다.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을 구해본다.
30여 년 동안 모든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문예지를 발간하는 일은 어지간한 사명감 없이는 엄두를 못 내는 일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펴내는 문예지이기 때문에 문예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역성을 선명하게 담아내거나 타 문예지와의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 끊임없이 다양한 주제를 설정하고 대담이나 담론을 통해 참신한 내용을 발굴해 왔지만,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모든 편집자의 고충이다.
최근 필자가 관심을 두는 분야는 문학과 타 장르간의 융복합 문제이다. 문학과 다른 장르 간에는 친연성도 있지만 독자성도 있으므로 인접 장르 간의 통섭은 상호 교호하면서 새로운 예술을 낳을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은 예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예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살기 좋은 세상,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세상, 불화가 없는 세상,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세상,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일조할 것으로 믿는다.
‘전국 계간문예지 편집자회의’에서 몇 가지 논의가 있었다. 그중에 하고 싶은 말은 지극히 편협하고 불편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을 왜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기도 하다.
서울 중심의 문학권력을 우리는 ‘거대한 공룡’이라고 한다. 문학권력은 문학작품 수준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출판시장에서도 지방을 블랙홀처럼 모두 빨아들이는 고약한 힘이기도 하다. ‘거대한 공룡’의 가장 큰 문제는 거대 자본의 폭력성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방화시대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여러 차례 답을 구해왔다. 지역에도 훌륭한 문예지와 출판사가 있지만 서울(중앙)이 최고라는 작가들의 인식이 지역 문예지와 출판사를 위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문예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문인으로 낳아주고 발표지면을 제공하여 양육해 줘도 그것을 배반하고 서울을 해바라기하는 문인들이 있어 마음 아프고 불편하다. 지역 문인들이 지역문예지와 출판사를 성장시켜야 지역문예지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서울이라는 막연한 허명을 좇아가는 정신이야말로 문인의 자격이 없다는 증명이다.
이번 제주 행사에서 서울의 모 잡지사 발행인이 ‘좋은 출판사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 운운하였다가 타 회원사의 지탄을 받았다. 문인이 근본적으로 훌륭한 글을 써야 스스로 빛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좋은 출판사, 안 좋은 출판사의 기준보다도 얼마나 훌륭한 작가인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도 좋은 출판사의 기준이 모호한 현실에서 자신을 낳아주고 성장시켜준 지역을 외면하고 서울만을 바라보는 문인의 정신은 작품성보다도 서울이라는 이름에 기댄 부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지금까지 내 쏟은 말들은 작품집 출간에 관한 이야기다. 열악한 지역출판사를 위해 지역 출신 문인들이 지역출판사에서 출간할 때 지역문학이 더욱 성장할 수 있다.
서울의 모 문예지와 출판사도 이번 회의에서 도마에 올랐다. 여러 개의 문학상을 남발하여 결과적으로는 조삼모사식으로 문인들을 홀려 출판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문인들에게 모두 상을 만들어주는 행태가 횡행함은 몇몇 지방 출판사도 마찬가지이다. 온갖 이름으로 상을 주며, 문학의 본질을 살펴보기보다는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세를 과시하는 기묘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이번 차제에 지역 상생 차원에서라도 광주·전남에서 받은 창작지원금은 우리 지역에서 소비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문학은 인간에게 정서적 풍요로움과 함께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언어예술이다.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온갖 악취를 풍기며 시정잡배들보다 못한 자본과 허명을 꿈꾸는 자가 있다면 이제 얼굴에 쓴 문인의 탈을 벗으시길 권한다.
서울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자신의 빈곤을 감추고자 하는 문인이 있다면 이제 글을 그만 쓰시라고 진심으로 권면한다.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을 구해본다.
광남일보 기자 @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