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진짜 빌런은 누구일까?
강혜경 문학박사·문화기획자
입력 : 2023. 08. 24(목) 18:29
강혜경 문학박사·문화기획자
[문화산책]최근에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한국형 재난물이다. 영화는 지진으로 인해 현대 도시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극한의 상황에 홀로 무너지지 않은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재난 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그 기반에는 다양한 현대 사회의 이슈를 담고 있다. 우선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를 메타포로 삼아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부동산 문제와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전체주의로 작품의 얼개를 구축하였다. 여기에 지역 이기주의, 난민 문제, 정치 현실을 더해 다양한 층위의 서사를 덧입혔다. 재난과 인류 멸망이라는 아포칼립스 장르를 넘어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와 현상을 다루는 점이 이 작품의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아파트가 현대 도시 문명의 상징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오프닝 시퀀스와 함께, 원인 불명의 대규모 지진으로 건물과 도시들이 도미노처럼 파괴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 아파트’로 이웃 주민들이 모여들게 되는데, 부유층 아파트로 상징되는 ‘드림팰리스’ 주민들과 ‘드림팰리스’ 주민들의 이기심으로 그동안 상처받아온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뚜렷한 대립 관계를 직조함으로써 갈등의 뿌리를 부동산 문제로 직결시킨다.

이질적인 두 집단은 갈등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급기야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은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드림팰리스’ 주민 등 이웃들을 내쫓기로 결정한다.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도구인 주민 투표를 통해서 말이다.

재난 상황 속에서 발생한 주민들 간의 갈등 문제는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계층 간의 갈등 문제를 투사하고 있으며,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지역 이기주의와도 맞닿아 있다.

또한 작품은 ‘주민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주민 대표의 권한이 점차 강화되는 모습을 그려내며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상반된 이념을 미묘하게 뒤섞어 표현해 낸다. 주민 대표의 권한 강화는 정치적인 구조의 변화와 권력의 이동을 시사하며, 작품은 이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의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복잡한 주제를 투영하고 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잠깐 등장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은 권력의 붕괴를 묘사한다. 위기 상황에서 지도적 역량을 효과적으로 발휘하지 못하고,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퇴출당한다. 이 장면은 권위적이고 무능한 한국의 정치 현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현대 문명이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완벽해 보이는 삶의 터전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와 함께 작품 속 인물들의 생존투쟁은 모든 것이 파괴된 디스토피아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들의 본능과 욕망을 다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포칼립스물은 현대 영화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이다. 대다수의 작품은 디스토피아적 상황에서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인류가 수 세기를 거쳐 구축해온 인류애와 윤리의식이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들이다. 자원과 식량이 부족하고 생존의 기로에 직면할 때,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이 두드러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아포칼립스물은 인류의 본성과 도덕적 모순을 탐구하며, 우리가 미래에 직면할지도 모를 현실적인 위기와 대면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미지의 길을 제시한다. 이러한 작품들의 대체로 우리의 인간성과 도덕적 선택에 대한 영감을 제시하며, 한편으로는 경고의 메시지와 깨달음을 선사한다. 이는 현대 문명이 구축한 사회 구조와 문화를 비판하면서도, 비극적 상황에서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음을 전달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우리의 삶과 사회에서 마주하게 되는 복잡한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현대인의 고민과 갈등을 다각도로 제시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영화의 끝은 애매모호하다. 영화관을 나오며 ‘그래서 진짜 빌런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만약 내가 ‘황궁 아파트’ 주민 대표였다면, 혹은 주민 대표의 숨겨진 비밀을 눈치채버린 상황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끊임없이 되감기를 해보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등장인물 중 진짜 ‘영웅’이 누구인지, 또 진짜 ‘빌런’이 누구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현실 사회를 투영하는 반증일 것이다.

감독 엄태화는 영화의 결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답을 찾는다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 옳고 그름, 선과 악, 정의와 불의 같은 개념으로 나눌 수 없는 것들, 그러니까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회색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권선징악보다는 인과응보의 세계라고 할 수도 있겠다. 회색빛 콘크리트로 가득 채워진 세계에서 하얀 쌀밥의 온기가 전해주는 정도의 희망을 남기고 싶었다.”(cine21.com)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사뭇 궁금한 여름밤이다.
광남일보 기자 @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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