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작업과 끝 작업이 같은 화가 될 겁니다"
[남도예술인]서양화가 이순행
디자인 전공 후 다시 미술학과 입학 학업 마쳐
2019년 늦깎이 개인전…‘팝아트적 회화’ 구현
한때 추상 작업…제6회 개인전 30일까지 진행
디자인 전공 후 다시 미술학과 입학 학업 마쳐
2019년 늦깎이 개인전…‘팝아트적 회화’ 구현
한때 추상 작업…제6회 개인전 30일까지 진행
입력 : 2023. 07. 20(목) 18:27

예술의거리 작업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순행 작가
작가들을 만나다 보면 오랜 인연에 비해 너무 아는 게 피상적이어서 다소 민망할 때가 있다. 이번 남도예술인에서 만나볼 작가는 베트남 등 해외에 가면서 함께 했으면서도 심층적으로 조명한 적이 없었다. 조명할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당한 시기를 포착하지 못해 차일피일 미뤄진 탓이다. 더욱이 어떤 모임에 가도 앞으로 나서서 뭔가를 하는 성향이 아닌 관계로 더더욱 깊이있는 교류가 이뤄지지 못한 듯하다. 그러다 한 화가가 번득였다. 그의 미술적 스토리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지, 심층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잡게 됐다. 주인공은 미술 때문에 고뇌와 열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넘나들다 근래들어 왕성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순행 화가(서양화)가 그다. 제법 햇볕이 따가운 6월 중순, 광주 동구 예술의거리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작가의 작업실이 입주해 있는 건물은 5층 중 3개 층에 시각예술가들이 입주해 있어 마치 예술빌리지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건물 2층에는 정철 조형연구소가, 4층에는 강남구 화가가, 5층에는 이순행 작가가 입주해 활동을 펼치고 있어서다. 이 작가와 강 작가는 광주전업미술가협회 회원들로 친분이 두터워 보였다. 이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나선 날 역시 이 작가는 강 작가의 작업실에 있었다. 이웃 사촌처럼 지내는 듯했다.
전날 전화했을 때 작업실이 지저분하다며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다소 묻어났지만 막상 방문했을 때는 작업실이 잘 정돈되고 깔끔했다. 그래서 ‘작업실이 깨끗한데 뭐가 지저분하냐’ 했더니 방문하기 전에 조금 치웠다고 귀띔했다.
안쪽 코너에 앉아서 생각도 하고, 잠시 쉬면서 커피도 한 잔 할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탁자를 덮은 탁자보가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색감이어서 더욱 차분한 마음으로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작업실은 2017년부터 입주해 현재까지 6년째 그의 창작산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날 인터뷰를 통해 그의 회화적 삶을 십분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유년기부터 미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결국 대학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디자인 공부를 했지만 그의 욕구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정통 회화를 전공하지 않고는 미술판에서의 입지 뿐만 아니라 회화 작업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 나가는 것 역시 어려울 거라는 판단을 했다.
더욱이 회화공부를 기초부터 전문 영역까지 다지고 싶은 마음에 타지역 대학을 나온 뒤 뒤늦게 2014년 늦깎이로 대학 미술학과에 재입학해 학구열을 불태웠다. 아예 호남대 미술학과에 입학해 1학년부터 착실하게 공부를 하며 2018년 끝마쳤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뒤 더 높은 이상을 실현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 1989년부터 1990년까지 2년 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남쪽으로 두 시간여 떨어진 뻬루지아로 유학을 다녀왔다.
“순수미술을 시작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 갔다 오신 분이 ‘거기 가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해 가게 됐죠. 유학가서 느낀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국내보다는 자유로움이 무엇인지를 배웠다고 생각해요. 그때 생각했던 자유로움을 화폭에 투영하기 위해 노력해왔죠.”
1991년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뒤 결혼을 하고 주부로 살다가 2005년이 돼서야 다시 붓을 잡을 수 있었다. 이제 휴식은 없으려나 했지만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작업에 대한 회의감 등 여러가지가 심적으로 좋지 않아 3년 여 간 붓을 놓았다. 그러다 2014년이 돼 본격적으로 다시 화가의 자리로 돌아왔다. 부침을 여러차례 거듭한 것이다. 이런 그의 회화는 제3기로 분류된다. 제1기 때는 2005부터 2009년까지로 벽이나 창, 거친 작업, 녹슨 철문, 후미진 구석의 자국 등에 주목했으며, 제2기 때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로 추상작업을 펼쳤다. 제2기의 작업들은 거의 붓을 사용하지 않은 대신, 롤러나 나이프로 문지르고 두들기며, 긁고 유화 물감에 기름을 섞어 뿌리는가 하면, 테이프 작업도 진행했다. 여기서 테이프 작업은 색을 바른 후 테이프를 느낌대로 붙이고, 그 위에 물감을 뿌리며 다시 테이프를 뜯어내 어떤 효과를 노렸는데 이때 행해진 추상작업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는 설명이다.
이외에 제3기 때는 2016년 말부터 현재까지로, 캔버스에 붕대같은 것을 실처럼 풀어 아교로 붙여 그 위에 물감을 뿌려서 시도한 것이 해바라기 작업의 시작이었다. 작업의 투박함이 그대로 묻어나 좋았다는 반응이다. 그리고 나서 2019년 말부터는 팝아트적인 회화로 변화를 시도한다.
“해바라기를 소재로 하다가 튤립과 선인장으로 확대됐는데 이 소재의 작업은 현재 진행형으로 보면 됩니다. 이것들을 팝아트적으로 표현을 하는 겁니다. 해바라기나 튤립, 선인장 그 자체가 좋아 다른 어떤 부가적인 것들을 등장시키지 않고 있죠. 이제는 제 작업이 거의 평면에 가깝다고 보면 돼요.”
작가의 첫 개인전은 동료들에 비해 한참 지각한 2019년이 돼서야 양림미술관에서 열릴 수 있었다. 이때 작가는 해바라기 작품을 비롯해 50여 점을 선보였으며, 올해 제6회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전시는 지난 1일 개막, 오는 30일까지 화순군립요양병원 내 서암갤러리에서 진행된다.
“공간을 선택한 이유는 가서 봤는데 요양병원이다 보니까 전시장으로 흡족하지 않았지만 거기 앉아서 생각을 해봤죠. 아프신 분들이 있으니 이분들에게 화사한 색을 보여주면 괜찮겠는 거예요. 그래서 서암으로 결정했어요. 처음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르신들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공간이 협소해도 열어보자고 마음 먹었죠. 해바라기와 튤립, 선인장을 배분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코로나 이후 회화적 메시지에 대한 언급을 잊지 않았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굉장히 우울한 시기여서 개인적으로 색이 주는 희망과 황홀감에 집중했다. 그래서 색감을 통한 희망을 얻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작가는 당분간 개인전을 열기 보다는 작업에 집중하며 보낼 생각이다. 전시를 위한 작업 보다는 열심히 창작에 임할 각오다. 작업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으로 확신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로 평가받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에 ‘한결같은 작가’라고 답하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제가 듣고 싶은 말은 처음과 끝이 똑같은 사람이요. 처음 작업과 끝 작업이 똑같은 화가 말이죠. 변하지 않은 작가와 초심을 잃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전날 전화했을 때 작업실이 지저분하다며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다소 묻어났지만 막상 방문했을 때는 작업실이 잘 정돈되고 깔끔했다. 그래서 ‘작업실이 깨끗한데 뭐가 지저분하냐’ 했더니 방문하기 전에 조금 치웠다고 귀띔했다.
안쪽 코너에 앉아서 생각도 하고, 잠시 쉬면서 커피도 한 잔 할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탁자를 덮은 탁자보가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색감이어서 더욱 차분한 마음으로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작업실은 2017년부터 입주해 현재까지 6년째 그의 창작산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선인장’

‘튤립’
더욱이 회화공부를 기초부터 전문 영역까지 다지고 싶은 마음에 타지역 대학을 나온 뒤 뒤늦게 2014년 늦깎이로 대학 미술학과에 재입학해 학구열을 불태웠다. 아예 호남대 미술학과에 입학해 1학년부터 착실하게 공부를 하며 2018년 끝마쳤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뒤 더 높은 이상을 실현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 1989년부터 1990년까지 2년 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남쪽으로 두 시간여 떨어진 뻬루지아로 유학을 다녀왔다.
“순수미술을 시작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 갔다 오신 분이 ‘거기 가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해 가게 됐죠. 유학가서 느낀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국내보다는 자유로움이 무엇인지를 배웠다고 생각해요. 그때 생각했던 자유로움을 화폭에 투영하기 위해 노력해왔죠.”
1991년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뒤 결혼을 하고 주부로 살다가 2005년이 돼서야 다시 붓을 잡을 수 있었다. 이제 휴식은 없으려나 했지만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작업에 대한 회의감 등 여러가지가 심적으로 좋지 않아 3년 여 간 붓을 놓았다. 그러다 2014년이 돼 본격적으로 다시 화가의 자리로 돌아왔다. 부침을 여러차례 거듭한 것이다. 이런 그의 회화는 제3기로 분류된다. 제1기 때는 2005부터 2009년까지로 벽이나 창, 거친 작업, 녹슨 철문, 후미진 구석의 자국 등에 주목했으며, 제2기 때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로 추상작업을 펼쳤다. 제2기의 작업들은 거의 붓을 사용하지 않은 대신, 롤러나 나이프로 문지르고 두들기며, 긁고 유화 물감에 기름을 섞어 뿌리는가 하면, 테이프 작업도 진행했다. 여기서 테이프 작업은 색을 바른 후 테이프를 느낌대로 붙이고, 그 위에 물감을 뿌리며 다시 테이프를 뜯어내 어떤 효과를 노렸는데 이때 행해진 추상작업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는 설명이다.

‘해바라기’
“해바라기를 소재로 하다가 튤립과 선인장으로 확대됐는데 이 소재의 작업은 현재 진행형으로 보면 됩니다. 이것들을 팝아트적으로 표현을 하는 겁니다. 해바라기나 튤립, 선인장 그 자체가 좋아 다른 어떤 부가적인 것들을 등장시키지 않고 있죠. 이제는 제 작업이 거의 평면에 가깝다고 보면 돼요.”
작가의 첫 개인전은 동료들에 비해 한참 지각한 2019년이 돼서야 양림미술관에서 열릴 수 있었다. 이때 작가는 해바라기 작품을 비롯해 50여 점을 선보였으며, 올해 제6회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전시는 지난 1일 개막, 오는 30일까지 화순군립요양병원 내 서암갤러리에서 진행된다.
“공간을 선택한 이유는 가서 봤는데 요양병원이다 보니까 전시장으로 흡족하지 않았지만 거기 앉아서 생각을 해봤죠. 아프신 분들이 있으니 이분들에게 화사한 색을 보여주면 괜찮겠는 거예요. 그래서 서암으로 결정했어요. 처음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르신들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공간이 협소해도 열어보자고 마음 먹었죠. 해바라기와 튤립, 선인장을 배분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코로나 이후 회화적 메시지에 대한 언급을 잊지 않았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굉장히 우울한 시기여서 개인적으로 색이 주는 희망과 황홀감에 집중했다. 그래서 색감을 통한 희망을 얻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작가는 당분간 개인전을 열기 보다는 작업에 집중하며 보낼 생각이다. 전시를 위한 작업 보다는 열심히 창작에 임할 각오다. 작업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으로 확신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로 평가받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에 ‘한결같은 작가’라고 답하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제가 듣고 싶은 말은 처음과 끝이 똑같은 사람이요. 처음 작업과 끝 작업이 똑같은 화가 말이죠. 변하지 않은 작가와 초심을 잃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