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신드롬’이 일어나도록 최선 다할 생각"
[남도예술인]서양화가 임희정
뒤늦게 개인전 열고 詩 필사 등 꾸준하게 작업
한복 옷고름서 ‘희로애락’ 반추·전통미학 유추
‘길’ 모티브 추구…아트페어 출품 5·6회 전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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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 04. 20(목) 18:15

서양화가 임희정

서양화가 임희정
인터뷰를 다니다 보면 절망스런 일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화가지만 문인 못지 않게 자기 깊이를 위해 책 읽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화가들을 만날 때 더 큰 관심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도리인 듯하다. 광주 예술판에서 화가들을 ‘작가’로 호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화가들이야말로 작가로 불러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문학 분야 종사자들을 ‘지을 작’으로 인해 작가로 불리워 왔으나 얼마 전부터 화가들도 당당히 작가라고 호칭한다.
우연한 기회에 열심히 사느라 한때 붓을 놓다시피했지만 시집들을 읽으며 좋은 시를 선별해 그것을 캔버스에 풀어놓은 작가가 있다. 그가 말하지 않았기에 알 수 없었거나, 필자의 아둔함이 늦게 알아봤거나 하는 따위였을 것이다. 비교적 그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 불과 2∼3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나주시(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동에 거주하며 뒤늦게 창작욕을 발산하고 있는 서양화가 임희정씨다. 그는 1996년 전남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1999년까지 4년 여를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결혼과 양육 등으로 인해 본격적 활동을 꽤 오랫동안 접어야 했다. 대신 시간 나는 대로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단체전에 가끔 출품하는 것이 활동의 전부였다. 그러다 붓을 잡기로 다시 마음을 다진 것이 2019년이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2021년에서야 첫 전시를 열 수 있었으니까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문단의 늦깎이 등단처럼 그 역시 늦깎이로 전시 데뷔를 하고 프로작가로서 출발을 알렸다.
“그림을 해야겠다 생각했던 게 애들이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다소 여유가 생겨날 때부터였어요. 어느 날 학교 동문전에 갔다가 자극이 와서 바로 뒤풀이 자리에서 그림을 다시 해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후 ‘국제남부현대미술제’에 선배가 작품을 낼 것을 제안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때가 2019년이었어요. 거의 20년 만에 활동을 하는 것이었죠.”
그림을 다시 하겠다 선언한 이후 동료 선후배와 지도교수 등이 정보를 주고 끌어당겨 줘서 급하게 정신없이 나갔다는 전언이다. 개인전 역시 이런 와중에 갑자기 잡혔다고 밝힌다. 첫 개인전도 얼떨결에 열게 돼 자신의 스타일보다는 구상과 추상을 섞어 해보고 싶은 것을 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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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그가 필사한 ‘나무에 깃들여’는 ‘나무들은/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깃든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는!’으로 돼 있다. 나무들은 태어난 그대로가 ‘집 한 채’라고 노래하고 있다. 절제와 압축이 빚어낸 명시 중 하나다. 시가 그려내는 사유들을 쫓아 이미지를 추출하고 막혀버린 작업의 돌파구를 찾아냈던 것으로 이해됐다. 그림이 막히면 이웃 장르인 시를 통해 풀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의 전기를 마련해 두번째 전시를 열었던 듯 싶다.
“그림을 그려놓고 시가 생각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시를 필사하며 그림이 생각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두 삶의 궤적이죠. 시 해독은 독서회를 하는 주위 언니들과 소통을 했습니다. 독서회 할만 하더군요.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을 주변에 두는 것도 행복하다는 믿음입니다. 난시나 노안에 근시까지 겹쳐 책을 오랫동안 읽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늦게 봇물터진 그의 창작 의욕은 제대로 불 붙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작가의 말대로 다른 동료들보다 늦게 출발한 만큼 두배로 더 열심히 작업을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읽혀졌다.
작가로부터 초·중·고 시절 미술을 유추하기 위해 들어본 이야기를 근거로 접근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속담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처럼 될성 부른 나무였던 듯 여겨졌다. 초등시절에는 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베꼈는데 그들보다 더 잘 베꼈고, 중학교 때는 숙제를 해가면 선생님께서 객관적 시선으로 봐도 잘 그렸다고 칭찬해줬다고 한다. 그러다 그가 미술에 눈을 뜨게 된 때는 중3 시절로 보인다. 대학생 언니, 오빠들로부터 1대 1로 미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잡고서다. 당시 고3 입시생들보다 더 잘 그렸다는 칭찬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고2 봄 때 입시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디자인이 하고 싶어 갔으나 색감을 익히라고 수채화부터 그림을 시켰다는 설명이다. 수채화에 정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서양화에 진입했다. 미술학원을 다닐 무렵 정체성을 겪기도 했으나 성격이 긍정적이어서 잘 극복하고 무사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 1, 2학년 때는 집안 사정이 어려운데다 사춘기가 늦게 와 학교생활을 소홀히 했다. 1학년 때부터 졸업반 때까지 미술학원 입시미술 지도는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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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들어 작가는 ‘한복’ 모티브에서 ‘길’ 모티브로 이동 중이다. 다음 전시에는 길을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일 뜻을 내비쳤다.
“‘한복’ 모티브는 대학 때 스승님(원로 김종일 전 전남대 교수)을 찾아뵙고 화이트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했더니 화이트 작업은 너무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한복을 한번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복 옷고름에서 모티브가 유추됐죠. 옷고름이 꼬이고 접힌 게 우리네 인생과 같은 길이겠구나 느껴졌어요. 인생의 희로애락을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전통 미학을 나타낼 수도 있었죠. 덕분에 오방색도 많이 등장하구요.”
옷고름의 선은 마치 기호 같기도 하고, 나선형으로 길 같다는 등 반응이 있다는 점을 전했다. 최근에 자신의 작품에 기대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많아 즐겁다는 작가는 초청하려는 갤러리도 생겨나고 있다고 귀띔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나’라는 물음에 ‘스탕달 신드롬’으로 답을 대신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뛰어난 예술 작품을 접했을 때, 그 충격과 감흥으로 인해 일어나는 정신적·육체적 이상(異常) 반응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하잖아요. 제가 제 그림 앞에서 ‘스탕달 신드롬’이 일어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어느 순간 제 그림이 크게 보이고 확대돼 보였습니다. 앞으로 근성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제가 그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까 그것에 책임을 져야죠. 글로벌 작가가 되기를 꿈꾸고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할 겁니다.”
임 작가는 6월 대구아트페어나 12월 서울아트페어에 출품하는 한편, 오는 9월 송정작은미술관에서 5회 개인전을, 10월 나주미술관에서 6회 개인전을 각각 예정하고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