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역사 속 디아스포라 정추의 삶 조명
亞문화전당 특별전 22일부터 문화정보원 박물관
출생부터 타계까지 망라…친필악보·공연 영상 등
입력 : 2023. 03. 21(화) 17:24
“내 마음은 언제나 조국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 망명을 선택한 음악인류학자이자 작곡가인 정추(1923~2013) 선생의 말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조국에 대한 애정을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펼쳐진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전당장 이강현)이 정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선보일 특별전 ‘나의 음악, 나의 조국’이 그것으로, 22일부터 5월28일까지 문화정보원 내 아시아문화박물관 기획전시실1에서 선보인다.

광주에서 태어난 정추는 한국에서는 월북했다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우상화에 반대했다는 까닭으로 잊힌 음악가였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서는 존경받는 작곡가이자 고려인 가요 채록으로 한민족의 음악을 지키고자 했던 민족음악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인생을 통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중앙아시아 고려인 강제이주 등 굵직한 한국 근현대사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을 전망이다.

작곡 습작부터 하나의 악보가 완성되는 과정, 이후 출판된 악보와 연주된 음악을 한자리에서 조망이 가능한 데다 음원 및 실제 공연 영상, 작고 이후 그를 그리워하며 열린 추모음악회, 추모음반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그의 딸들이 말하는 아버지 정추의 모습도 살필 수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정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나의 음악, 나의 조국’을 22일부터 5월28일까지 문화정보원 내 아시아문화박물관 기획전시실1에서 선보인다. 사진은 생전 정추 선생.
피아노를 치고 있는 학창시절 모습
전시는 지난 2013년 그가 작고한 이후 기증받은 기록물을 중심으로 총 3부로 이뤄진다. 일제강점기 광주에서 태어나 일본과 러시아를 거쳐 카자흐스탄에 이르기까지 일생 대부분을 이방인으로 살아온 정추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1부 ‘1923~1946 예술가 집안에서 성장하다’에서는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정추의 유년시절과 가족들을 소개한다. 이 세션에서는 그가 광주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나 베를린의 슈테른 콘서바토리를 다닌 외삼촌 정석호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게 된 과정과 외할아버지가 세운 양파정에서 기생권번의 노래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과정 등이 다뤄진다. 이후 광주고보에서 일본인 배속 장교 배척사건으로 퇴학을 당한 뒤 양정고에서 한국어 수업을 받으면서 음악을 지속, 이를 매개로 애국과 독립의 꿈을 키운 그의 어린 시절을 만날 수 있을 예정이다. 또 영화감독인 형 정준채와 동요작곡가인 동생 정정근 등 가족구성원을 통해 예술가 집안의 면모도 들여다볼 수 있다.

이어 2부 ‘1946~1958 음악의 길로 나아가다’에서는 월북 이후 러시아 유학시기를 다룬다. 1946년 형을 따라 월북해 평양 국립영화촬영소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면서 평양 노어대학에서 러시아를 공부하고 국비장학생으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작곡 이론을 공부한 과정, 악보 출판으로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의 삶을 조망할 수 있다. 이 시기 그는 알렉산드로프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한국적 선율을 연구, 한민족의 정서가 서린 ‘조국’을 발표한 가운데 그가 작곡한 육필악보와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 예정이다.

친필악보
3부 ‘1959~2013 음악인류학자로 열정을 불태우다’에서는 지난 1958년 소비에트 연방으로 망명한 이후 90세의 나이로 타계하기까지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 가요를 채록하며 음악인류학자로 활동하던 그의 음악인생 전반을 조명한다. 특히 그가 고려인 집단농장(kolkhoz)을 방문해 음악을 직접 녹음하고 악보를 만들어 기록하는 등 총 고려인가요 1068곡의 가사와 500곡 가량의 악보 채보 결과를 소개한다. 1990년대 이후 정치상황이 변화하면서 한국과 교류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아울러 그가 1984년, 1990년 각각 받은 카자흐스탄 공훈근로베테랑 메달, 카자흐스탄 공훈문화인칭호 뿐만 아니라 1996년 해외동포 기록문화상, 2002년 국민훈장 동백장 등 수상내역도 살펴볼 수 있도록 준비된다.

전시 마지막에는 악보를 필사하는 등 음악가 정추를 따라 체험해보는 공간도 마련된다.

이강현 전당장은 “이번 특별전은 조국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광주 출신 디아스포라 음악가의 일생과 노력에 초점을 맞춰 구성했다”면서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전당 콘텐츠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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