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古代) 비류백제가 세운 나라 일본, 그 시사점
(사)광주한백통일재단 상임대표 박찬용, 정치학 박사
입력 : 2023. 03. 20(월) 17:53
[광남시론] 지난 16일, 12년만에 개최된 한·일정상회딤을 계기로 새로운 한일관계가 시작될 것 같다. 그런데 고대 한·일교류 역사를 보면 일본은 전적으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무리들에 의해 창조되었음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등에서 역사강의를 하고 있는 세계적인 역사학자 에드워드 슐츠(Edward schultz)교수는 한국역사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그는 역사란 진실만을 알리는 학문이어야 하며 다른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되어서는 안되며 돈과 권력앞에 낙엽처럼 쉽게 휘둘리는 어용지식인들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하버드대에 퍼붓은 일본의 사사카와 재단의 재팬머니(Japan money)는 실로 엄청나지만 슐츠교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객관적 역사에 대한 지식인의 고결함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는 “과거 일본은 한반도 삼국시대의 세력다툼에서 밀려난 나라인 (비류)백제계 주민들이 바다를 건너와 세웠던 나라이다. 일본이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일본왕실은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왕실이 나온다. 일본인들에게 한국은 늘 열등감과 동경심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스승같은 존재였으며 일본과 달리 한국인들은 결코 무력으로 지배될 수 없는 민족이었다. 일본은 과거부터 무사들에 의해 강압적으로 통치되었다. 한국은 수천년동안 일본보다 훨씬앞선 나라였다. 한국은 제대로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일본이 한국을 역전시킨 기회가 찾아온 것은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해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킨 사건 부터이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식민지가 될뻔했다. 일본은 강제개항으로 인한 서양선진문물을 받아들였고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앞서가게 되었다.” 현재까지 일본은 그들이 만든 일제식민사관을 주입시키고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역사를 왜곡날조해서 홍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정상적인 국가라면 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한편, 식민사학의 전통에 따라 철저히 불신해 오던 삼국사기 초기의 기록이 슐츠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우리 고대사에 고구려, 백제, 신라외에 또 하나의 왕국이 있었다. 그것은 백제 시조 온조의 형이었던 비류가 세운 백제였다. BC18년 건국한 비류백제는 광개토대왕에게 토벌된 AD396년까지 무려 413년간 존속한 고대초기 왕국이었다. 이런 비류백제가 역사속에서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비류백제가 멸망하고 80년이 지나서 온조백제도 고구려의 침공을 받고 공주로 도읍을 옮긴다. 이후 온조백제는 비류의 옛도읍이던 공주를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영토인 것처럼 역사를 개서했다는 것이다.

AD396년 광개토대왕이 비류백제를 토벌했을 때 공주성을 탈출한 비류계의 왕족일행은 일본열도로 쫓겨가서 망명정권을 세웠다. 일본 사학계에서 최초의 천황으로 밝혀진 응신천황의 즉위원년은 AD390년, 여기에 응신과 동일인물로 지목되어온 제1대 신무천황의 즉위전 7년을 더하면 비류백제가 멸망한 다음해(AD397)가 된다. 이는 응신이 비류백제의 마지막 왕으로 AD390년에 즉위한 후 AD396년에 일본으로 망명하여 다음해인 AD397년 최초의 일본천황이 되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일본 사학계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으로 속일본기에 나오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2002년 아키히토가 일본 왕실의 뿌리를 언급하면서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직접 언급했다. 일본인들이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는 일왕 역시 한국의 서울을 수도로 삼았던 고대 백제 왕실에서 갈라져 나온 방계가문의 후손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비류백제가 일본을 건설한 이후 고려시대의 국제관계와 오늘날을 비교해보면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고려는 외국에서 들어온 문화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인뒤 토착적인 요소와 잘 버무려서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유교와 불교를 함께 수용하고,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전통을 같이 융합한 고려특유의 문화다원주의를 창출했다. 1127년 송나라가 금나라의 공격을 받고 황제가 납치되자 고려에 협공을 요청했다. 당시 송은 오래 우방이었지만 고려는 철저한 정세분석을 거쳐 협공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송나라는 이로부터 50년뒤 원나라에 무너졌다. 만약 고려가 도덕적 명분론을 앞세워 송나라를 도왔다면 실속없이 국력만 낭비하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최근 급변하는 동북아정세와 관련하여 한국은 일본의 초기 문명 건설자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며 고려시대의 현실주의 외교를 배워야 한다. 필자의 판단으로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치하는 최근의 동북아 정세는 열등감에 빠져있는 일본을 간파하고 고려시대의 국제관계를 알아야 현재 대한민국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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