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있는 어디든 무대…장소 중요치 않죠"
[남도예술인]테너 장호영
시립합창단 단원 역임…이탈리아 A.I.D.M 아카데미아 졸업
UN 산하 기구 주최 ‘국제 음악회’ 초청연주 및 미국 순회공연
2022년 첫 독창회 선봬…시문학파기념관 인문학강사 활동도
입력 : 2023. 03. 16(목) 18:11
테너 장호영씨는 “어느 무대든 매 순간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는 것은 예술인으로서 기본자세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흔히들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무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관객이 없는 곳도 최선을 다해야 할 무대라고 말한다. 노래 부르는 순간 자기 자신을 만족시켜야 할 첫번째 관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테너 장호영씨가 성악가로서 음악과 무대를 대하는 신념이다. 광주지역을 기반으로 오페라 가수이자 인문학 강연자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지난 2월 초 대인동의 복합예술공간 예술이 빽그라운드에서 후배 성악가인 테너 류건우씨와 ‘듀오 콘서트’를 선보였다. 공연은 노래와 해설이 곁들여진 렉쳐 콘서트 형식으로 열렸다. 아내인 소프라노 윤혜진씨가 사회를, 피아니스트 천현주씨가 반주를 맡아 호응이 무척 좋았다고 한다.

“입장료가 3만원이라 광주에서는 공연비로 적지 않은 금액이었죠. 직접 예약을 하고 오신 마니아층이 대부분이었어요. 무대에 설 때마다 여전히 긴장을 하는데 특히 이번처럼 객석과 가까이서 노래할 때는 더욱 그렇죠. 공연 후에 완성도 높은 렉쳐 콘서트였다는 피드백을 받아 뿌듯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주말 아침에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클래식 방송을, 저녁에는 가곡 뮤직비디오 방송을 즐겨보곤 했다. 그러던 중 다니던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합창의 기쁨을 처음 느꼈다. 노래할 때 온몸으로 느껴지는 전율이 마냥 좋았다.

그런 그의 성악인생에서 가장 큰 공부가 돼준 것은 고급레슨도, 수업도 아닌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음악답게 듣는 것’ 말이다.

“처음엔 마치 국어 문법이나 수학 공식을 공부하듯이 음악을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음악도 나를 손님처럼 대하니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죠. 예술가로서 깊이 고뇌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공감대를 느끼고서야 진정으로 음악을 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조선대 사범대 음악과에 입학한 그는 졸업하자마자 광주시립합창단에 들어갔다. 성악가로서 오랜 꿈은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 가보는 것이었다. 그는 합창단에 들어간 지 3년 여가 지났을 쯤 안정된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이탈리아 행을 택했다.

예술이 빽그라운드에서 열린 ‘듀오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모습
오페라 ‘조선 브로맨스’에서 기대승 역을 맡아 연기하는 모습
유학생활 초기는 꽤 순조로웠다. 1년 여만에 운 좋게 콩쿠르에서 입상을 하고 크고 작은 오페라 오디션에도 합격했다. 그는 A.I.D.M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하면서 여러 축제 무대에 섰다. 로마 산 루카(SAN LUCA) 극장에서 ‘리골레토’(Rigoletto)의 만토바공작 역으로 성공적인 데뷔무대를 치렀다. 하지만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순간도 잠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갑자기 몸이 급격히 안 좋아져서 노래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어요. 계속 헛구역질이 나와 기도가 막혀 소리를 낼 수 없었죠. 병원에 가도 정확한 병명이나 치료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를 쉬다가 결국 한국에 돌아왔죠.”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신의 뜻을 생각하며 현실을 묵묵히 견뎌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출국하려는 때에 마침 아카데미아 교수님으로부터 제자발표회에서 노래할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여전히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늘 그래왔듯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 무대는 그의 삶에서 손에 꼽을 만한 멋진 기억으로 남았다.

그는 꿈의 도시 로마에서 음악공부는 물론 아내를 만나고 첫째 아이도 얻었다. 아내와 함께 국제연합(UN) 산하 국제금융기구(IFAD) 가 주최한 인도 Sillon ‘국제회의기념 음악회’에서 초청연주, 같은 곳에서 주최한 미국 순회공연 등 세계 여러 무대에서 활약했다. 그는 아내를 만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언급했다.

“가진 것 없던 시절 저를 믿고 만나준 아내에게 참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아내는 최고의 동력자이자 동반자죠. 둘 다 출퇴근이 일정한 직업이 아니다보니 24시간 붙어있을 때가 많아요. 함께 노래와 강의를 하고 제자도 양성하면서 재밌게 살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성악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돌아봤다. 고 만리오 로끼(Manlio Rocchi) 선생님 앞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불렀던 때, 노래가 끝나자 자신을 꼭 안아주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에서 제자를 향한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느꼈다. 그는 그때부터 ‘노래 연습도 하나의 공연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누구도 감동시키지 못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 것이다.

“저를 첫번째 감상자라고 생각하고 연습조차 부담감을 갖고 임하려고 합니다. 매 순간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는 것은 예술인으로서 기본자세라고 생각해요.”

그는 아내와 전남 강진의 시문학파기념관에서 처음 인문학 강연에 선 순간을 기억한다. 귀국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김선기 전 기념관 관장이 ‘영랑감성학교’ 강의를 의뢰했다. 공연만 해온 터라 강의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지만 우선 도전하자는 마음으로 임했고,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다.

그와 아내가 주목하는 인문학 강의 주제는 ‘가족’이다. 가족조차도 방이 나눠져 있고 분리돼 가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가족관계 회복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아이들이 강의가 끝나갈 때쯤이면 마스크가 젖을 정도로 펑펑 우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아이들의 모습에 더욱 책임감을 가져야 하죠. 학생들에게 현실을 자각하기보다는 꿈을 크게 가지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오페라 ‘꼬지판뚜떼’의 페란도 역을 맡아 열연하는 모습
그는 이처럼 강연에 서는 한편 사단법인 빛소리오페라단 가수로 활동하며 다양한 무대를 선보여왔다. ‘마술피리’의 타미노왕자, ‘꼬지판뚜떼’의 페란도,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조선 브로맨스’의 기대승 역 등이다. 지난해 11월에는 광주디엠홀에서 생애 첫 독창회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주여 자비를’, ‘상냥한 요정 말린코니아’, ‘무정한 마음’ 등 12곡을 들려줬다.

“정신 없이 살다보니 저 자신한테 투자할 시간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듀오콘서트는 여러 번 했는데 혼자 서는 무대는 처음이었죠. 디엠홀의 최덕식 박미애 교수님이 후원금을 지원해주시고 공간도 무료 대여해주시면서 자리를 만들어주셨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는 노래하는 후배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면서도 성장할 수 있는 무대가 부족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실수를 통해서 성장해나갈 수 있는데 실수할 자리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벽이 높은 안타까운 현실에는 예술인들의 책임도 있다고 언급했다.

“졸업하고도 무대 한번 못서본 친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예술인들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클래식 문화가 무대 위에 군림하려던 느낌이었죠. 관객을 대접하고 섬기는 문화가 아니라 ‘내가 이런 예술을 한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시간 속에서 성악은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설 무대도 줄어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그는 어느 무대를 가든 더욱 열심히 노래하려 한다. 클래식이 재밌다는 인식을 한명에게라도 심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렵게 느끼지 않고 일상에서 쉽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예술이 클래식이길 꿈꾼다.

“전에 양동시장에서 노래한 적이 있어요. 시장 아주머니께서 고맙다면서 음악회에 가고 싶어도 가게를 지켜야해 갈 수가 없다고 하셨죠.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무대를 했는데 그분에게는 훌륭한 음악회였던 거예요. 공연을 관람하고 싶어도 못 오는 문화소외계층 분들이 많습니다. 접근하기 어려운 철옹성 같은 음악회가 아닌, 지나가다가 음악이 흘러나오면 가슴과 귀에 담을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김민빈 기자 alsqlsdl94@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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