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원천 섬진강서 '책내음'에 반하다
[문화공간 탐구] 섬진강책사랑방
1978년 부산 시작…김종훈·박선희 부부 운영
전남 구례읍 소재 2020년 11월 재오픈 45년째
모텔 개조 15만권 보유…독서클럽·강연 활발
1978년 부산 시작…김종훈·박선희 부부 운영
전남 구례읍 소재 2020년 11월 재오픈 45년째
모텔 개조 15만권 보유…독서클럽·강연 활발
입력 : 2023. 03. 15(수) 18:18

전남 구례군 구례읍 섬진강로 소재 섬진강책사랑방. 1층부터 3층까지 건물 전체를 헌책방으로 쓰고 있다.

내부 전경
구례구역 건너편 섬진강변을 따라 걷는 길, 간판이 눈에 띄었다. 문인들 사이 섬진강은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기에 헌책방에 들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45년이라는 기간 운영됐다는 점에, 이윽고 1층부터 3층까지 건물 전체를 쓰는 헌책방의 규모에 놀란 ‘섬진강책사랑방’이 그곳이다.
전남 구례군 구례읍 섬진강로에 소재한 이곳은 지역 간서치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책이나 단종된 도서 등을 구하고 싶으면 이곳의 문을 두드려보라 할 정도로 입소문이 나 있다.
적색 벽돌로 지어진 이곳 ‘섬진강’이라 쓰인 대문을 지나면 켜켜이 자리 잡은 손때묻은 책들이 맞아준다. 원서와 전문서적, 교양서적은 물론이고 언제 발간됐는지 가늠하기 힘든 고서 등 1층부터 3층까지 책이 빼곡하다. 책이 차지하지 않은 자리를 찾는 게 빠를 정도로 실로 방대한 양의 책이 쌓여 있다. 공간마다 잠시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해놨다. 1층에서 운영 중인 북카페 ‘선’에서 주문한 음료를 받아 2층이나 3층으로 올라가서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책을 읽으면 없던 감성도 돋아난다.
이처럼 매력이 넘치는 이곳은 김종훈, 박선희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스물여섯 살이던 1978년부터 서점 주인을 했다고 한다. 부산 보수동에 터를 잡고 ‘대우서점’을 40여 년간 운영했지만, 보수동 책방 골목이 유명세를 떨치게 되면서 임차료가 차츰 오르자 2020년 3월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됐다. 사실 전라도가 고향이라는 김 대표는 딱히 섬진강과는 인연이 없었다. 서점사업이 사양길에 접어드는 데다 책방을 운영하면 할수록 책은 점점 늘어나고 공간은 부족해 이사갈 곳을 찾던 중 이곳을 낙점하게 됐다. 모텔 건물을 개조해 그해 11월 문을 열면서 누구나 와서 공상할 수 있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2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섬진강

섬진강책사랑방에 들어서면 1층 북카페 ‘선’에서 음료를 주문할 수 있다.
구례 사랑방을 표방하는 만큼 수시로 독서회원을 모집하는 한편, 문인들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북토크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6개월간 매달 2회씩 연 북토크를 통해 여러 문인들이 문학 팬들을 만났다. 올해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사실 중고서점이라고 해서 방문해보면 최신작들이 대부분이거나 교양서적에 치우진 곳이 많고, 북토크 역시 이미 인기있는 작가를 초청하거나 신작을 낸 작가를 중심으로 열리는 경우가 허다해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곳은 기간, 장르를 불문한 ‘찐 중고책’이 즐비해 반가웠다. 지역 문인이 중심이 되는 북토크와 다양한 주제가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공간 곳곳을 이리 저리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마음에 드는 책이 한 가득이다. 보물찾기가 따로 없다. ‘이런 책도 나왔구나’ 싶은 숨은 책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종훈 대표

섬진강책사랑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또 3층 복도에서는 책방 개업을 준비하던 같은 해 8월, 섬진강 수해를 겪었던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전을 만날 수 있다. 책방으로 밀려 들어온 섬진강 물과 이로 인해 수십 년째 간직해왔으나 젖어버린 책들, 흙탕물을 뒤집어쓴 건물 내부 등을 세세히 볼 수 있다.
몇 시간 동안 고르고 고른 책을 구입하겠다고 하자 김 대표는 “이 책은 어디서 찾았냐. 참 잘 골랐다”면서 가격을 매겼다. 오래된 책일수록 구하기 힘들어 비싸다고 했다. 광주에서 이곳까지 특별히 들렀으니 이점을 감안해 “팍! 깎아 준다”니 인심이 후하다. 구하기 힘든 서적들을 기분 좋은 가격에 사서 들고 나오니 발걸음이 가볍다. 섬진강책사랑방만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다.
구례를 찾을 때마다 들러봄직한 곳이 아닐 수 없다. 밝을 때 건물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데, 어느새 어둑해졌다.
붉은 노을을 품은 섬진강이 ‘잘가라’는 인사를 건넸다. 섬진강책사랑방이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머물러 자주 들락거릴 수 있기를 바란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