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음악을 시켜도 될까요?
백홍승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입력 : 2023. 02. 16(목) 18:49
백홍승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문화산책] 우리 사회에는 음악가가 있고 음악애호가가 있다. 음악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은 음악대학이다. 그곳에서 배출된 프로 음악가들의 연주활동을 즐기고 감동받는 이들을 음악애호가라고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프로 음악가가 많은 사회보다 음악애호가가 많은 사회가 훨씬 행복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을 때 고통은 시작된다.

최근 ‘임윤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아이들은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끊임없이 낭보를 전해오고 있으며 전 세계를 무대로 한국 솔리스트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하지만 지금 한국 젊은이들의 세계 유명 콩쿠르에서의 활약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예전에 상당기간 경제적으로 세계를 재패했던 일본은 국가적으로 풍요했고 사회적으로 문화 예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던 때가 있었다. 일본의 경우 대략 1970년대부터 수 십 년간 전 세계 음악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약진했었다. 학부모들은 극성스러웠고 학생들은 죽기 살기로 연습했다. 클래식 스타를 꿈꾸며 그렇게도 수많은 학생들이 도전했으니 당연히 입상 확률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수의 아이들이 치열하게 준비하고 경쟁하고 있으니 당연히 입상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제 이 시절이 지나간 후에는 아마도 우리는 중국의 아이들이 세계 유명 콩쿠르를 석권하고 있다는 뉴스를 빈번하게 접하게 될 것이다. 거대한 중국의 클래식음악 교육 시장(市場)은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부모들의 열성적인 교육열이 클래식 음악 교육으로 옮아가면서 걷잡을 수 없이 불붙어가고 있다.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학생 수만 약 5000만명이다.

요즘 주변에는 아이가 음악을 전공하고 싶어 하고 소질도 있어 보인다는데 시켜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 많다는 부모들이 있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의 장래 일에 깊이 개입할 일은 아닌 것 같고 다만 그 학부형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한국에서 자녀에게 음악을 공부시키는 학부형들의 희망이 유독 솔리스트 쪽에 치우치는 현상은 상당히 비정상적이고 무모하다. 물론 세상에서 자기 자녀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소위 잘나가는 솔리스트가 된다는 것이 사실은 천재적인 소질 외에도 그 준비과정에서부터 엄청난 고통과 인내를 수반하는 지난(至難)한 길이다. 적당히 뛰어난 애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일류 솔리스트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냥 잘해서는 안 되고 아주 썩 잘해야 한다.

그러니 우선 필요한 것은 자녀에게 음악을 공부시키고 있는 학부형들의 현실 자각이다.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의 취업은 정말로 쉽지가 않다. 하지만 학부형들은 현실을 받아들인다 해도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별로 없다. 그러니 이제 음악대학이 심각성을 느끼고 발 벗고 나서야한다. 그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이라고 물만 먹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음악대학에서는 대다수 평범한 학생들의 실질적인 취업과 진로 선택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합창과 오케스트라 합주 교육 등을 포함한 다양하고 폭 넓은 음악예술 산업 관련 분야의 수업들이 좀 더 심도 있게 체계적으로 병행되기를 바란다.

음대를 나왔다고 해서 모두 연주자로 살지는 않는다.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음악 기획자나 프로듀서, 음악교사, 전문기자나 저널리스트가 될 수도 있으며 관련 문화기관에 취업하거나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에 취업할 수도 있다. 사회 문화예술기관의 지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음대 나온 애들은 음악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쓸 수가 없다고 한다. 일반적인 수준의 사무능력 등 말하자면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업무능력정도는 지니고 있어야 채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사회 진출을 앞둔 음대 학생들의 시야는 지금보다 훨씬 넓어져야 하며 그러한 성장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대학 교육이 져야할 당연한 책무다.

실로 클래식 음악교육이 본격적인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지방 쪽은 예술중학교나 예술고의 신입생 미달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전이다. 실기 지도 선생들은 넘쳐나고 과잉 공급되고 있는데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지방대학 음악학과의 경우 자체적으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것 마저 어려운 형편에 이르렀다. 졸업 후 개인레슨을 잡기조차 어려운 소위 인기 없는 악기의 전공자들의 수가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음악대학들은 어떤 식으로든 나서서 학부형들의 고민에 답해줘야 한다. 음대 교수니까 애들에게 발성을 지도하고 소나타나 콘체르토만 잘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일 뿐만 아니라 무책임하다. 음대가 예비 실업자들을 대량 양산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음악대학이라는 곳에서는 클래식 음악에의 현실적인 지향가치와 비전과 희망이 느껴져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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