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떠오른 안의사동양평화론
위인백 사)한국인권교육원 이사장
입력 : 2023. 02. 13(월) 18:20

[광남시론] 우리는 해마다 2월을 맞이하면서 2월은 왜 다른 달에 비해 적을까 마치 아픈 손가락마냥 사회적 약자를 보듯 왠지 안타까운 마음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달력의 시원에 의하면,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구의 공전주기를 1년으로 하고 홀수 달은 31일, 짝수 달은 30일로 정했으나 절대 권력자인 아우구스투스왕의 욕심으로 2월의 29일에서 자신이 태어난 8월에다 1일을 보태버리자 28일이 됐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2월은 입춘 우수의 봄을 기다리는 설렘을 품게 하는 달이면서 우리에겐 슬픈 역사가 있다. 구한말 밀려오는 서구세력으로 백척간두에 선 조국을 지키고자 동양평화론을 주창하며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 2월 14일이니 순국선열에 대한 추념의 마음과 함께 안의사동양평화론을 연구·발전시켜 부국강병과 세계평화의 길을 모색했으면 한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를 저격한 직후 러시아 검찰관의 예비심문에서 대한의용병 참모중장, 나이 31세로 자신을 밝히면서 거사 동기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토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지 안중근 개인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일제의 불법적인 재판과정에서도 논리 정연한 진술과 당당한 태도에 재판장과 검찰관들도 탄복했다는 것이며, 관선변호사 미즈노도 안의사의 답변태도에 감복해 ‘그 범죄의 동기는 오해에서 나왔다고 할지라도 이토를 죽이지 않으면 한국은 독립할 수 없다는 조국에 대한 참된 정성에서 나온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변론했다.
이처럼 안중근 의사는 조국의 독립을 넘어 동양평화와 평화로운 세상을 꿈꿨던 정치·사상가이며, 대한민국이 자주독립국으로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안목을 가졌던 위대한 선각자이고, 살신성인으로 나라를 지켜내고자 했던 애국지사이다.
죽음을 앞둔 며칠 전 안정근 안공근 두 아우에게 ‘내가 죽거든 시체는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반장하지 말라...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라고 유언했으나 우리는 안타깝게도 아직도 안의사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시지 못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안의사동양평화론은 옥중에서 탈고를 보장받고 항소까지 포기했으나 교활한 일제의 배신으로 탈고를 못한 채 순국했다. 재판과정에서의 진술 등으로 미뤄볼 때 당시 물밀 듯이 밀려오는 러시아를 비롯한 서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나 작금 최강의 미국을 비롯한 외세에 맞서야할 국제정세로 미뤄보더라도 안의사동양평화론은 그때는 물론 지금도 우리나라가 추구해야할 부국강병과 대외정책의 혜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왜 일제 강점기를 맞이했으며, 지금도 열강들 틈에서 인접한 국가들과 끊임없이 대치하며 국가안위를 걱정해야 하는가. 그 이유의 첫째는 우리의 분열도 문제지만, 일본에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부터 세계최강국과 동맹을 맺고 동북아를 지배하려 했으며 지금도 변함이 없다. 중국 또한 이제 세계패권 국가를 넘보고 있지 않는가.
우리나라는 국토를 넓혀나가기도 어렵고, 지정학적으로 열강들 틈에 끼어 예나 지금이나 항시 국가안위가 염려되기 때문에 안보문제나 대외정책만큼은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미완의 안의사동양평화론을 연구하고, 더 나아가 세계평화의 명분과 당위성을 정립해서 세계인권선언처럼 세계평화선언을 국제연합의 결의로 세계만방에 공표하여 모두가 파멸하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선도해야 할 것이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순국선열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풍찬노숙하면서 목숨 바쳐 싸워온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 남북분단과 전쟁을 바랐겠는가. 분열과 대립으로 이전투구 하라고 독립운동을 했겠는가. 오늘날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치 조선시대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거덜내버렸던 작태가 연상됨을 지울 수가 없다.
국가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국정을 책임진 위정자들과 학계는 역사를 바로보고 미완의 안의사동양평화론을 연구·발전시켜 국가안위가 우선인 부국강병으로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통일의 길로 매진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의 대외정책은 무엇보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될 전쟁 없는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국가안보는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은 피할 수 없는 이웃나라이므로 역사를 교훈삼고, 건국이후 직간접적인 전쟁을 이어오고 있는 미국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주국방을 이룩할 때까지 인내하며 갈등과 경쟁을 접고 평화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어찌됐건 2월은 입춘 우수의 봄을 기다리는 설렘을 품게 하는 달이면서 우리에겐 슬픈 역사가 있다. 구한말 밀려오는 서구세력으로 백척간두에 선 조국을 지키고자 동양평화론을 주창하며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 2월 14일이니 순국선열에 대한 추념의 마음과 함께 안의사동양평화론을 연구·발전시켜 부국강병과 세계평화의 길을 모색했으면 한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를 저격한 직후 러시아 검찰관의 예비심문에서 대한의용병 참모중장, 나이 31세로 자신을 밝히면서 거사 동기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토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지 안중근 개인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일제의 불법적인 재판과정에서도 논리 정연한 진술과 당당한 태도에 재판장과 검찰관들도 탄복했다는 것이며, 관선변호사 미즈노도 안의사의 답변태도에 감복해 ‘그 범죄의 동기는 오해에서 나왔다고 할지라도 이토를 죽이지 않으면 한국은 독립할 수 없다는 조국에 대한 참된 정성에서 나온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변론했다.
이처럼 안중근 의사는 조국의 독립을 넘어 동양평화와 평화로운 세상을 꿈꿨던 정치·사상가이며, 대한민국이 자주독립국으로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안목을 가졌던 위대한 선각자이고, 살신성인으로 나라를 지켜내고자 했던 애국지사이다.
죽음을 앞둔 며칠 전 안정근 안공근 두 아우에게 ‘내가 죽거든 시체는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반장하지 말라...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라고 유언했으나 우리는 안타깝게도 아직도 안의사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시지 못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안의사동양평화론은 옥중에서 탈고를 보장받고 항소까지 포기했으나 교활한 일제의 배신으로 탈고를 못한 채 순국했다. 재판과정에서의 진술 등으로 미뤄볼 때 당시 물밀 듯이 밀려오는 러시아를 비롯한 서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나 작금 최강의 미국을 비롯한 외세에 맞서야할 국제정세로 미뤄보더라도 안의사동양평화론은 그때는 물론 지금도 우리나라가 추구해야할 부국강병과 대외정책의 혜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왜 일제 강점기를 맞이했으며, 지금도 열강들 틈에서 인접한 국가들과 끊임없이 대치하며 국가안위를 걱정해야 하는가. 그 이유의 첫째는 우리의 분열도 문제지만, 일본에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부터 세계최강국과 동맹을 맺고 동북아를 지배하려 했으며 지금도 변함이 없다. 중국 또한 이제 세계패권 국가를 넘보고 있지 않는가.
우리나라는 국토를 넓혀나가기도 어렵고, 지정학적으로 열강들 틈에 끼어 예나 지금이나 항시 국가안위가 염려되기 때문에 안보문제나 대외정책만큼은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미완의 안의사동양평화론을 연구하고, 더 나아가 세계평화의 명분과 당위성을 정립해서 세계인권선언처럼 세계평화선언을 국제연합의 결의로 세계만방에 공표하여 모두가 파멸하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선도해야 할 것이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순국선열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풍찬노숙하면서 목숨 바쳐 싸워온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 남북분단과 전쟁을 바랐겠는가. 분열과 대립으로 이전투구 하라고 독립운동을 했겠는가. 오늘날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치 조선시대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거덜내버렸던 작태가 연상됨을 지울 수가 없다.
국가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국정을 책임진 위정자들과 학계는 역사를 바로보고 미완의 안의사동양평화론을 연구·발전시켜 국가안위가 우선인 부국강병으로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통일의 길로 매진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의 대외정책은 무엇보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될 전쟁 없는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국가안보는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은 피할 수 없는 이웃나라이므로 역사를 교훈삼고, 건국이후 직간접적인 전쟁을 이어오고 있는 미국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주국방을 이룩할 때까지 인내하며 갈등과 경쟁을 접고 평화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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