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인생 전부…"무대 위 사는 게 꿈"
[남도예술인] 소프라노 신은선
11월 독창회 ‘렉쳐콘서트: 작곡가 시리즈 1’ 선봬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 석사 등…음악 견문 넓혀
청아한 음색과 고음 매력…광주예고 후학 양성도
11월 독창회 ‘렉쳐콘서트: 작곡가 시리즈 1’ 선봬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 석사 등…음악 견문 넓혀
청아한 음색과 고음 매력…광주예고 후학 양성도
입력 : 2022. 12. 15(목) 16:59

소프라노 신은선씨는 “앞으로 다양한 기획공연과 오페라 무대를 선보여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소프라노 신은선씨는 지금껏 쉬지 않고 무대에 서왔다. 첫 아이 임신 39주차 만삭의 몸을 하고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무대에 나설 수 있던 것은 노래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기에 가능했다.
신씨에게 올해는 특히 분주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3월 ‘한국 소극장 오페라 축제 20회 기념 갈라콘서트’, 4월 ‘마술피리’, 6월 ‘춘향전’, 8월 ‘카르멘’, 9월 콘서트오페라 ‘사랑의 묘약’ 등 거의 매달 무대에 서왔으며 지난 11월8일에는 독창회 ‘렉쳐콘서트: 작곡가 시리즈 1’을 선보였다. 2020년에 이은 두번째 독창회였다.
“독창회는 오페라 공연과 다르게 모든 시간을 혼자 준비하고 1시간 이상 무대를 이끌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죠. 첫번째 독창회가 끝난 후에 다신 안하겠다 다짐까지 했어요. 시간이 지나니 힘들었던 걸 다 잊고 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이번 독창회는 광주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올리게 됐다.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그는 남들과 차별화되는 점을 고민했다. 보통 독창회는 고전, 낭만 등 시대별 또는 이태리어, 독일어, 영어 등 언어별로 선보이는 게 일반적이나 이와 다르게 한 작곡가의 다양한 곡을 보여줄 수 있는 ‘작곡가 시리즈’를 새롭게 기획했다.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는 오라토리오부터 가곡, 오페라 등 여러 레퍼토리를 가진 모차르트를 선정했다.
“이번 발표회를 계기로 오페라든 독창회든 매년 다양한 무대를 준비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는 동료와 함께 두 작곡가의 곡을 선보이는 듀오 콘서트를 해볼까 하죠.”
신씨가 성악을 만나게 된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던 그는 어린이 노래대회나 교회 행사, 예술제 등에 나가 노래를 부르곤 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편에 속했던 그는 자신이 노래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그저 주변 사람들이 무대에 나서기를 자주 권유했다.
그는 그렇게 노래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다. 수피아여중에 입학해 합창단 활동을 하고 학교 대표로 노래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음악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의 추천에서였다. 막연하게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생각하고 있던 그에게 선생님은 음악적 재능을 살려 예고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다. 취미로만 생각했던 음악을 전공한다는 것에 부모님의 반대가 걱정됐던 어린 제자의 마음을 헤아린 은사는 그의 어머니를 직접 학교로 모셔와 설득시켰다. 그렇게 마감 2~3일을 남겨놓고 광주예고 음악과에 원서를 넣게 되면서 성악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시간이 흘러 대학 진학을 앞둔 그는 거창한 꿈보다는 현실과 집안의 형편을 먼저 생각했다. 숙명여대에 입시 원서를 넣고 떨어지면 광주에서 공부를 이어가기로 마음먹었지만, 당시 5명 모집에 500여 명이 지원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단번에 합격 소식을 듣게 됐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욕심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고, 대단한 꿈을 꾸거나 큰 목표를 세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계속 음악을 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이 컸어요. 여러 형편을 생각했을 때 광주에서 공부를 하는 게 낫겠다 여기고 혹시 하는 마음에 한 곳에 원서를 넣었는데 바로 대학에 붙은 거예요.”
그렇게 대학에 진학해 4년간의 음악 공부를 마친 그는 졸업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성악과를 나와도 다른 직장을 갖는 사람들이 더 많은 현실. 고민하다 다른 길을 찾아가는 동기들이 많았고 그 역시 같은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계속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더 넓은 곳으로 나가 배우기 위해 유학을 고민하던 그는 먼저 무비자로 3개월 체류가 가능한 독일로 떠나 어학원에서 공부하며 해외 생활을 경험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학에 대한 확신이 생긴 그는 체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준비를 마치고 2009년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에 입학했다.
이국만리 먼 땅에서의 유학 생활이 힘들었을 법도 하지만 그에겐 모든 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담임 교수로 만난 토마스 토마슈케씨는 고국을 떠나 온 제자에게 아낌없는 가르침을 줬다.
“교수님은 학생의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는 타입이셨어요. 그 학생만의 것을 바꾸거나 건드리지 않고 가꿔나갈 수 있도록 교육하셨죠.”
토마스 교수는 신씨에게 페이를 받고 연주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줬다. 덕분에 그는 체코 등 유럽 여러 도시 무대에서 노래하는 경험을 했다. 독일 가곡 수업을 통해 대가 올라프 베어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와 함께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올라프 교수가 신씨를 눈여겨보고 함께 무대에 설 학생으로 뽑으면서다.
“독일 가곡의 대가 올라프 베어 교수님과 무대를 준비하면서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고생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그분과 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영광이기 때문에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당시 혼자 한국인이었는데 노래뿐 아니라 발음도 신경 써야 하니 쉽지 않았죠. 선생님은 늘 호랑이 같고 무서운 분이셨거든요.”
배움에 끝이 없다는 말처럼 독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그는 졸업 후 이탈리아 밀라노로 떠나 도니제티 아카데미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수료, 전문 연주자로서 음악적 견문을 넓혔다.
그렇게 유학생활을 마치고 2013년 귀국한 그는 고민에 빠졌다.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지만 막상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당시를 인생에서 가장 불안했던 시기라고 그는 회상했다.
“돌아오고 보니 나란 존재를 알려야 하는 게 새로운 숙제였어요. 광주에는 무대가 많지 않으니 서울에서 열리는 오디션을 찾아보면서 지냈죠.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내가 설 수 있는 무대가 있을까’,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많았어요.”

인터넷에 뜬 솔리스트 오디션 공지를 보고 서울로 올라가 오디션을 본 그는 귀국 후 첫 무대로 서울 폭스 캄머오페라단의 ‘사랑의 묘약’에 서게 됐다. 다음해인 2014년부터는 고등학교 은사인 김기준 광주오페라단 단장의 제안으로 광주오페라단 정기공연 오페라 ‘라보엠’의 무제타 역을 맡는 등 여러 무대에 활발하게 서는 한편, 광주예고에 출강하며 교육자로서 활동하게 됐다.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듣고 맑고 청아한 목소리라고 평한다. 화려한 고음과 매력적인 음색을 가져 어디에나 잘 어울리고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게 그만의 장점이다. 그는 오디션이 뜨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편이다.
“시립오페라단 공연은 상임단원처럼 자주 참여하는 편이죠. 목소리, 성격 등 저와 맞는 역할이다 싶으면 고민 없이 오디션을 봅니다. 아직도 해보고 싶은 역할이 많아요. 좀 더 나이가 들어 목소리가 풍성해진다면 마술피리의 타미나 역을 해보고 싶네요.”
그에게 지금껏 잊을 수 없는 무대가 있다면 지난해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시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박하사탕’이다.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서울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더욱 뜻깊고 뭉클했다. 당시 주역은 아니었지만 작품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곡 ‘그렇지요’를 불러 임팩트 있는 무대를 선사했다.
“광주사람들에게 이런 아픔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었죠. 정말 행복하고 감동적인 공연이어서 저도 눈물을 흘렸어요. 특히 코로나19 시기에 1명이라도 감염자가 나오면 바로 공연이 취소되는 상황이었는데 단 한명도 확진되지 않았죠. 모두에게 정말 간절한 무대였는데 성사돼 뿌듯했어요. 광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신씨는 벨칸토 성악 아카데미, 더클래식 아우름 등에서의 단체 활동 및 오페라 공연, 광주예고에 출강하며 후학을 양성중이다. 그는 계획하고 있는 작곡가 시리즈 음악회가 계속될 수 있도록 이어나가는 동시에 오페라 무대에도 꾸준히 서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래를 안하고 산다면 죽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노래는 제 인생의 전부예요. 기획한 공연과 오페라 무대를 통해 안주하지 않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대로 무대 위에 사는 게 제 유일한 꿈이죠.”
신씨에게 올해는 특히 분주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3월 ‘한국 소극장 오페라 축제 20회 기념 갈라콘서트’, 4월 ‘마술피리’, 6월 ‘춘향전’, 8월 ‘카르멘’, 9월 콘서트오페라 ‘사랑의 묘약’ 등 거의 매달 무대에 서왔으며 지난 11월8일에는 독창회 ‘렉쳐콘서트: 작곡가 시리즈 1’을 선보였다. 2020년에 이은 두번째 독창회였다.
“독창회는 오페라 공연과 다르게 모든 시간을 혼자 준비하고 1시간 이상 무대를 이끌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죠. 첫번째 독창회가 끝난 후에 다신 안하겠다 다짐까지 했어요. 시간이 지나니 힘들었던 걸 다 잊고 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이번 독창회는 광주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올리게 됐다.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그는 남들과 차별화되는 점을 고민했다. 보통 독창회는 고전, 낭만 등 시대별 또는 이태리어, 독일어, 영어 등 언어별로 선보이는 게 일반적이나 이와 다르게 한 작곡가의 다양한 곡을 보여줄 수 있는 ‘작곡가 시리즈’를 새롭게 기획했다.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는 오라토리오부터 가곡, 오페라 등 여러 레퍼토리를 가진 모차르트를 선정했다.
“이번 발표회를 계기로 오페라든 독창회든 매년 다양한 무대를 준비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는 동료와 함께 두 작곡가의 곡을 선보이는 듀오 콘서트를 해볼까 하죠.”
신씨가 성악을 만나게 된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던 그는 어린이 노래대회나 교회 행사, 예술제 등에 나가 노래를 부르곤 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편에 속했던 그는 자신이 노래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그저 주변 사람들이 무대에 나서기를 자주 권유했다.
그는 그렇게 노래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다. 수피아여중에 입학해 합창단 활동을 하고 학교 대표로 노래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음악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의 추천에서였다. 막연하게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생각하고 있던 그에게 선생님은 음악적 재능을 살려 예고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다. 취미로만 생각했던 음악을 전공한다는 것에 부모님의 반대가 걱정됐던 어린 제자의 마음을 헤아린 은사는 그의 어머니를 직접 학교로 모셔와 설득시켰다. 그렇게 마감 2~3일을 남겨놓고 광주예고 음악과에 원서를 넣게 되면서 성악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시간이 흘러 대학 진학을 앞둔 그는 거창한 꿈보다는 현실과 집안의 형편을 먼저 생각했다. 숙명여대에 입시 원서를 넣고 떨어지면 광주에서 공부를 이어가기로 마음먹었지만, 당시 5명 모집에 500여 명이 지원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단번에 합격 소식을 듣게 됐다.

제47회 광주시립오페라단 정기공연 ‘춘향전’에서 춘향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는 신은선씨.

광주시립오페라단 ‘춘향전’
그렇게 대학에 진학해 4년간의 음악 공부를 마친 그는 졸업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성악과를 나와도 다른 직장을 갖는 사람들이 더 많은 현실. 고민하다 다른 길을 찾아가는 동기들이 많았고 그 역시 같은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계속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더 넓은 곳으로 나가 배우기 위해 유학을 고민하던 그는 먼저 무비자로 3개월 체류가 가능한 독일로 떠나 어학원에서 공부하며 해외 생활을 경험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학에 대한 확신이 생긴 그는 체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준비를 마치고 2009년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에 입학했다.
이국만리 먼 땅에서의 유학 생활이 힘들었을 법도 하지만 그에겐 모든 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담임 교수로 만난 토마스 토마슈케씨는 고국을 떠나 온 제자에게 아낌없는 가르침을 줬다.
“교수님은 학생의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는 타입이셨어요. 그 학생만의 것을 바꾸거나 건드리지 않고 가꿔나갈 수 있도록 교육하셨죠.”
토마스 교수는 신씨에게 페이를 받고 연주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줬다. 덕분에 그는 체코 등 유럽 여러 도시 무대에서 노래하는 경험을 했다. 독일 가곡 수업을 통해 대가 올라프 베어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와 함께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올라프 교수가 신씨를 눈여겨보고 함께 무대에 설 학생으로 뽑으면서다.
“독일 가곡의 대가 올라프 베어 교수님과 무대를 준비하면서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고생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그분과 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영광이기 때문에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당시 혼자 한국인이었는데 노래뿐 아니라 발음도 신경 써야 하니 쉽지 않았죠. 선생님은 늘 호랑이 같고 무서운 분이셨거든요.”
배움에 끝이 없다는 말처럼 독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그는 졸업 후 이탈리아 밀라노로 떠나 도니제티 아카데미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수료, 전문 연주자로서 음악적 견문을 넓혔다.
그렇게 유학생활을 마치고 2013년 귀국한 그는 고민에 빠졌다.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지만 막상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당시를 인생에서 가장 불안했던 시기라고 그는 회상했다.
“돌아오고 보니 나란 존재를 알려야 하는 게 새로운 숙제였어요. 광주에는 무대가 많지 않으니 서울에서 열리는 오디션을 찾아보면서 지냈죠.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내가 설 수 있는 무대가 있을까’,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많았어요.”

광주오페라단의 오페라 갈라콘서트

‘렉쳐콘서트: 작곡가 시리즈 1’ 무대 모습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듣고 맑고 청아한 목소리라고 평한다. 화려한 고음과 매력적인 음색을 가져 어디에나 잘 어울리고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게 그만의 장점이다. 그는 오디션이 뜨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편이다.
“시립오페라단 공연은 상임단원처럼 자주 참여하는 편이죠. 목소리, 성격 등 저와 맞는 역할이다 싶으면 고민 없이 오디션을 봅니다. 아직도 해보고 싶은 역할이 많아요. 좀 더 나이가 들어 목소리가 풍성해진다면 마술피리의 타미나 역을 해보고 싶네요.”
그에게 지금껏 잊을 수 없는 무대가 있다면 지난해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시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박하사탕’이다.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서울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더욱 뜻깊고 뭉클했다. 당시 주역은 아니었지만 작품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곡 ‘그렇지요’를 불러 임팩트 있는 무대를 선사했다.
“광주사람들에게 이런 아픔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었죠. 정말 행복하고 감동적인 공연이어서 저도 눈물을 흘렸어요. 특히 코로나19 시기에 1명이라도 감염자가 나오면 바로 공연이 취소되는 상황이었는데 단 한명도 확진되지 않았죠. 모두에게 정말 간절한 무대였는데 성사돼 뿌듯했어요. 광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신씨는 벨칸토 성악 아카데미, 더클래식 아우름 등에서의 단체 활동 및 오페라 공연, 광주예고에 출강하며 후학을 양성중이다. 그는 계획하고 있는 작곡가 시리즈 음악회가 계속될 수 있도록 이어나가는 동시에 오페라 무대에도 꾸준히 서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래를 안하고 산다면 죽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노래는 제 인생의 전부예요. 기획한 공연과 오페라 무대를 통해 안주하지 않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대로 무대 위에 사는 게 제 유일한 꿈이죠.”
김민빈 기자 alsqlsdl94@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