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걸어온 22년…전통 이어가고 싶어요"
[남도예술인]서고운 가야금병창 연주자
시 무형문화재 제18호 가야금병창 전수장학생
8월18일 첫 번째 발표회 ‘적벽가·수궁가’ 선봬
진도군립민속예술단 단원...진도국악고 출강도
시 무형문화재 제18호 가야금병창 전수장학생
8월18일 첫 번째 발표회 ‘적벽가·수궁가’ 선봬
진도군립민속예술단 단원...진도국악고 출강도
입력 : 2022. 10. 20(목) 18:13

서고운씨는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언제나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처럼 꾸준히 배움의 길을 걷고 싶다”고 밝혔다.
예술인에게 발표회는 의미가 크다.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 오랜 시간 갈고 닦아온 실력을 보이는 무대에는 그동안의 길었던 인내와 남몰래 삼켰을 눈물, 고난의 시간이 녹아있다. 그중에서도 첫번째 발표회는 평생 기억될 순간이다. 설렘과 부담을 안고 앞으로의 예술 인생에 향한 돛을 펼치는 것과도 같은 일이라서다.
“가야금병창에 대해 제가 여태까지 알고 있었던 부분은 너무나 적었다는 걸 이번 발표회가 끝나고 깨달았습니다. 소리의 정도라든지 어떻게 표현해야 생각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된 귀중한 시간이었죠.”
지난 8월18일 빛고을국악전수관에서 발표회 ‘적벽가·수궁가’를 선보인 서고운 가야금병창은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서씨는 자신의 첫 발표회가 남들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고 말했다. 언젠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마음속에 품고 지냈으나 어째서인지 계속 미루게 됐다. 첫번째라는 것이 늘 그렇듯 보이지 않는 부담감과 스스로에게 좀 더 만족할만한 모습으로 발표회를 올리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이번 무대에서 ‘박귀희제 수궁가’에 문명자 명창이 30분가량을 편곡한 ‘탑상을 탕탕’, ‘여보나리’, ‘한 곳을 바래보니’ 3곡을 더해 선보였다. ‘적벽가’는 화용도로 도망가던 조조가 길가에 장승을 장비로 오인하고 놀라서 목장승을 잡아다 놓고 화풀이 하는 대목까지를 들려줬다.
두 달여간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정신적인 지지가 돼준 것은 스승인 문명자 명창(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8호 가야금병창)이었다. 서씨는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결코 발표회를 올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늘 발표회의 중요성을 강조해오셨어요. 입이 닳도록 ‘발표회만이 너에게 남는 것이고, 나중에 재산이 될 거다’라고 얘기 해주셨는데 그걸 이제 깨달은 거죠. 공연이 끝나자마자 선생님 말씀이 백번 옳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명자(가야금병창), 양승희(가야금), 이난초(판소리), 지순자(가야금) 명인을 사사한 서고운씨는 2년 전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8호 가야금병창 전수장학생으로 발탁, 오태석-박귀희-안숙선-문명자로 이어지는 계보를 이수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전남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를 수료, 2019년부터 현재까지 진도군립민속예술단 기악부 상임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씻김 굿’, ‘가시래기’ 등 전라남도 문화재가 많은 진도에서 우리 민속 음악을 연주하며 그 아름다움을 전승하고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상설공연에서 그의 가야금 연주를 만날 수 있다. 지난해부터는 진도국악고등학교에 출강하며 전공수업에서 가야금병창을 가르친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배움을 얻고 있다.
그는 2014년 ‘향사 가야금병창 전국대회’에서 향사대상(국회의장상)을 수상하며 처음으로 큰 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에게 문명자 명창이 권유한 대회였다. 예선에서는 심청가 ‘올라간다 대목’을, 본선에서는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불렀다.
“경험 삼아 배우기 위해 나간 대회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타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 이후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됐죠.”
서씨는 8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처음 가야금을 만났다. 취미로 시작한 가야금이 그에게 남다른 의미가 된 것은 문명자 명창의 가르침덕분이었다.
“초등학교 앞에 가야금 교습소가 있었거든요. 거기서 1년 정도 배우다가 9살이 되던 해 어머니와 평소 친분이 있으신 광주시 무형문화재 악기장 이준수 선생님이 문 선생님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전수 장학생이 되기까지 특출한 재능으로 또래에 비해 늘 앞서왔을 것 같지만 어릴 적부터 목이 약하고 고음이 쉽게 나오지 않아 힘들었다고. 2~3시간 목을 써도 목이 멀쩡한 동기들에 비해 튼튼하지 못한 것 같아 레슨 도중 울기도 많이 울었다. 좌절하고 지쳐있는 제자에게 스승은 든든한 버팀목으로 힘을 불어넣어줬다.
“문 선생님은 항상 단점을 보기 보단 제가 가진 장점을 키우면 된다고 말씀해주세요. 제게 목구성이 좋다고 해주시거든요. 목이 안 나온다고 병창을 못하는 건 아니니 가지고 있는 좋은 색깔을 더욱 부각시키면 된다며 북돋아주셨죠.”
서씨는 인생의 절반이 훌쩍 넘는 시간을 가야금병창과 함께해왔다.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중학교 시절 광주예술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하며 가야금병창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은 늘 그런 그를 자랑스러워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매일 학원에서 레슨을 받고 따로 개인연습을 하는 시간 동안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준 어머니가 있었다.
“대학생 때까지도 모든 대회에 따라오셔서 대기실에서 제 연습을 봐주시고 조언도 해주셨어요. 긴 시간동안 저를 믿고 응원해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죠. 덕분에 이 길이 제가 갈 길이라는 믿음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는 아울러 예술적인 가르침 뿐 아니라 인생의 스승으로 지금껏 저를 보살피고 이끌어준 문명자 명창을 향한 존경심과 감사함을 언급했다. 문 명창은 그에게 참다운 예인이 되려면 인성을 갖추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늘 강조했다.
“어린 나이에 선생님을 만났다 보니 큰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따라왔습니다. 국악에서는 음악뿐 아니라 예의범절과 인성을 중요시하게 생각하거든요. 그런 부분을 많이 배웠죠.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앞으로 이렇게 국악을 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없어서는 안 될, 제가 정말 많이 의지하는 존재죠.”
그는 가야금병창을 선보이는 ‘예술단별밭가얏고’ 단원으로도 활동한다. 예술단별밭가얏고는 문명자 명창이 전통문화예술의 계승 및 보급을 위해 만든 가야금연주단체로 문 명창과 그의 제자들이 다 함께 무대를 만든다. 판소리 눈대목을 서로 대화하듯이 주고받는 입체창 형식과 서양의 오페라식으로 무대화시킨 창극 형식이 특징이다. 올해는 11월에 공연을 앞두고 있다.
끝으로 그는 언제나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처럼 꾸준히 배움의 길을 걷고 싶다고 밝혔다.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는 가야금병창 주자로 인식되고 싶습니다.”
“가야금병창에 대해 제가 여태까지 알고 있었던 부분은 너무나 적었다는 걸 이번 발표회가 끝나고 깨달았습니다. 소리의 정도라든지 어떻게 표현해야 생각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된 귀중한 시간이었죠.”
지난 8월18일 빛고을국악전수관에서 발표회 ‘적벽가·수궁가’를 선보인 서고운 가야금병창은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서씨는 자신의 첫 발표회가 남들에 비해 늦은 편이었다고 말했다. 언젠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마음속에 품고 지냈으나 어째서인지 계속 미루게 됐다. 첫번째라는 것이 늘 그렇듯 보이지 않는 부담감과 스스로에게 좀 더 만족할만한 모습으로 발표회를 올리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이번 무대에서 ‘박귀희제 수궁가’에 문명자 명창이 30분가량을 편곡한 ‘탑상을 탕탕’, ‘여보나리’, ‘한 곳을 바래보니’ 3곡을 더해 선보였다. ‘적벽가’는 화용도로 도망가던 조조가 길가에 장승을 장비로 오인하고 놀라서 목장승을 잡아다 놓고 화풀이 하는 대목까지를 들려줬다.

발표회를 마치고 문명자 명창과 포즈를 취한 서고운씨.
“선생님은 늘 발표회의 중요성을 강조해오셨어요. 입이 닳도록 ‘발표회만이 너에게 남는 것이고, 나중에 재산이 될 거다’라고 얘기 해주셨는데 그걸 이제 깨달은 거죠. 공연이 끝나자마자 선생님 말씀이 백번 옳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명자(가야금병창), 양승희(가야금), 이난초(판소리), 지순자(가야금) 명인을 사사한 서고운씨는 2년 전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8호 가야금병창 전수장학생으로 발탁, 오태석-박귀희-안숙선-문명자로 이어지는 계보를 이수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전남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를 수료, 2019년부터 현재까지 진도군립민속예술단 기악부 상임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씻김 굿’, ‘가시래기’ 등 전라남도 문화재가 많은 진도에서 우리 민속 음악을 연주하며 그 아름다움을 전승하고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상설공연에서 그의 가야금 연주를 만날 수 있다. 지난해부터는 진도국악고등학교에 출강하며 전공수업에서 가야금병창을 가르친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배움을 얻고 있다.
그는 2014년 ‘향사 가야금병창 전국대회’에서 향사대상(국회의장상)을 수상하며 처음으로 큰 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에게 문명자 명창이 권유한 대회였다. 예선에서는 심청가 ‘올라간다 대목’을, 본선에서는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불렀다.
“경험 삼아 배우기 위해 나간 대회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타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 이후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됐죠.”

첫번째 발표회 ‘적벽가·수궁가’에서 가야금병창을 하는 모습.
“초등학교 앞에 가야금 교습소가 있었거든요. 거기서 1년 정도 배우다가 9살이 되던 해 어머니와 평소 친분이 있으신 광주시 무형문화재 악기장 이준수 선생님이 문 선생님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전수 장학생이 되기까지 특출한 재능으로 또래에 비해 늘 앞서왔을 것 같지만 어릴 적부터 목이 약하고 고음이 쉽게 나오지 않아 힘들었다고. 2~3시간 목을 써도 목이 멀쩡한 동기들에 비해 튼튼하지 못한 것 같아 레슨 도중 울기도 많이 울었다. 좌절하고 지쳐있는 제자에게 스승은 든든한 버팀목으로 힘을 불어넣어줬다.
“문 선생님은 항상 단점을 보기 보단 제가 가진 장점을 키우면 된다고 말씀해주세요. 제게 목구성이 좋다고 해주시거든요. 목이 안 나온다고 병창을 못하는 건 아니니 가지고 있는 좋은 색깔을 더욱 부각시키면 된다며 북돋아주셨죠.”
서씨는 인생의 절반이 훌쩍 넘는 시간을 가야금병창과 함께해왔다.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중학교 시절 광주예술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하며 가야금병창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은 늘 그런 그를 자랑스러워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매일 학원에서 레슨을 받고 따로 개인연습을 하는 시간 동안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준 어머니가 있었다.
“대학생 때까지도 모든 대회에 따라오셔서 대기실에서 제 연습을 봐주시고 조언도 해주셨어요. 긴 시간동안 저를 믿고 응원해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죠. 덕분에 이 길이 제가 갈 길이라는 믿음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서고운씨가 참여한 진도군립민속예술단 서울 초청공연.

서씨가 스승인 문명자 명창에게 가르침을 받는 모습.
“어린 나이에 선생님을 만났다 보니 큰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따라왔습니다. 국악에서는 음악뿐 아니라 예의범절과 인성을 중요시하게 생각하거든요. 그런 부분을 많이 배웠죠.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앞으로 이렇게 국악을 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없어서는 안 될, 제가 정말 많이 의지하는 존재죠.”
그는 가야금병창을 선보이는 ‘예술단별밭가얏고’ 단원으로도 활동한다. 예술단별밭가얏고는 문명자 명창이 전통문화예술의 계승 및 보급을 위해 만든 가야금연주단체로 문 명창과 그의 제자들이 다 함께 무대를 만든다. 판소리 눈대목을 서로 대화하듯이 주고받는 입체창 형식과 서양의 오페라식으로 무대화시킨 창극 형식이 특징이다. 올해는 11월에 공연을 앞두고 있다.
끝으로 그는 언제나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처럼 꾸준히 배움의 길을 걷고 싶다고 밝혔다.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는 가야금병창 주자로 인식되고 싶습니다.”
김민빈 기자 alsqlsdl94@gwangnam.co.kr